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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Sep 22. 2020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조식이 가장 비싸지는 순간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그저 둘만의 시간을 잠깐만 가지는 것도 너무나 행복했었다. 특히나 장모님이 가끔 아이들을 맡아주고 어디 데이트를 하러 갔다 오라고 하면 그냥 그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달콤하고 행복한 느낌이 전율했다. 물론 그 데이트의 마지막은 일요일 저녁 다음날 출근을 괜히 걱정하는 마음과 상당히 흡사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씩 크고 나니 그렇게나 소중했던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많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렇게도 바쁜지 주어진 시간을 그렇게 달콤하게 보내지 못하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고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크게 감사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버릴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부부는 소박한 데이트와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최대한 시간을 찾고 그 순간들을 즐기려고 노력하는 부부다. 특히 이케아는 우리 부부에게 추억이 많은 장소인데, 아이들이 어릴 때도 많이 이용했었고 특히 외국에 살 때 그 나라에는 없는 물건들이 많아서 이케아에서 엄청 장을 본 기억이 우리 부부의 큰 추억 가운데 있다. 


그렇게 힘겹게 장을 보고 나서 만나는 이케아에서의 점심은 의외로 고급스러웠다. 가격에 비하여 나름 훌륭한 음식들과 무엇보다도 그러한 쇼핑을 위한 곳에서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의 식당을 연출할 수 있다는 이케아의 철학과 마케팅에 속아서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점심값에 지불하는 우리 부부였다.


속은 것 같지만 가성비라는 게 있으니, 그리고 일단 배가 무진장 고프니 이케아에서의 저녁, 점심은 우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에는 조금 일찍 가서 조식 메뉴를 먹어봤다.


난 괜히 겉멋만 들었는지, 호텔식 조식을 좋아하는데(신라호텔에서 주는 석식 같은 조식 말고 외국 호텔의 심플하게 나오는 조식) 이곳 이케아에서의 조식이 딱 내가 좋아하는 그 스타일이다.


무료 커피지만 웬만한 커피숍보다는 맛있는 커피와 그저 평범해 보이는 소시지이지만, 그렇다고 저렴하지 않은 맛에 조식에 빠질 수 없는 베이컨과 전통적인 메이플 시럽과 함께 어우러진 팬케이크, 이 팬케이크는 쉬워 보이지만 전통적인 팬케이크 맛을 내기가 아주 쉽지는 않은데 이케아의 팬케이크는 만족스럽다.


자본주의 시스템과 거대기업을 욕할 때도 많지만, 이런 혜택을 받을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그저 행복해하는 나를 보면서 '인간은 역시 그냥 이기적인 존재구나.'라는 생각으로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뭔가 큰 대의를 논하기 전에 내 앞에 차려진 식탁 앞에서 그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고쳐먹는다. 아마도 이런 인간의 속성을 잘 알기에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과 거대기업 위주의 세상은 이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10년 차 부부에게 데이트는 소중하다. 화려한 데이트도 중요하고 소박한 데이트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생각해주는 작은 배려가 더없이 소중해지는 시기인 듯하다. 내가 이런 조식을 좋아하는 줄 알아주는 아내와 이런 나를 위해서 아낌없이 조식을 같이 먹어줄 수 있는 그 마음이 있기에 이케아에서의 조식은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조식일 수 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유일한 조식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역시 사람은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인걸 더 좋아하는 듯하다. 그게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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