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유를 꿈꾸며 산다. 그렇지만 자유롭게 사는 이는 주변에 찾기 힘들다. 자유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데 그 대가를 치르는데 지쳤거나 그 대가를 계산하지 못해서이다. 자유 이면에는 고통과 고뇌가 반드시 동반되는데 그것을 외면해서 자유로운 삶은 그저 꿈에만 그려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가장 자유롭게 사는 삶을 실천하는 이들은 글쓰는이들이다. 그들은 삶에서 이뤄내지 못하는 것들을 글을 통해서 풀어낸다.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하고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일들을 글 속에서는 이루어낸다. 그런데 현실과 이상 그 어디쯤에 이 글쓰기가 있다는 것이다.
분명 글 쓰는 이는 그들이 상상하고 존재하는 어떤 것을 글로 풀어낸다. 그건 분명 존재하는 현실이다. 그 현실이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우리의 실물 세계일 수도 있고 그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런 세계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현실과 가상 그 중간의 어느 지점일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분명 그들이 쓴 글은 무엇인가를 그려냈고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육체는 죽어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이들을 우리는 그들의 글을 통해서 만난다. 글 속에서 그들이 느꼈던 감정과 생각 그 모든 것들을 조금은 다른 시대 다른 세계관에서 살면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또 그 이후 세대의 사람들에게 현재의 누군가의 글은 그렇게 자취와 함께 영혼의 숨을 여전히 거두지 않고 살아서 메시지와 감정들을 전달해 준다.
분명 인간은 시, 공간의 제약 속에 머무르고 있지만 인간이 남긴 글은 시, 공간을 넘어서 존재한다. 존재의 이유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이야기했던 데카르트는 인간에 대한 정의를 생각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즉 인간의 생각은 그가 죽더라도 무언가 남길 수 있으므로 동물들보다 위대하고 그런 생각은 한 인간이 죽더라도 계속 살아 있음을 다른 측면으로 증명하기도 한다.
글을 왜 써야 하는가?
나는 글을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의 글은 살아있고, 내가 생명을 마치더라도 그 글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존재한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가?
죽음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죽음을 넘어서는 일이기에 상당히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건,
그가 유명했건 유명하지 않았건,
그런 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살아왔던 인생에 대해서 그가 직접 쓴 글.
그리고 그 글에 담긴 그의 철학과 그의 따뜻한 인생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의 차가운 점과 그의 나쁜 면도 볼 수 있다면..
그 글은 아마도 계속 살아서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는 죽더라도 그의 글이 살아있기에 영혼은 아마도 글 속에서 계속 숨 쉬고 싶을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건,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 그것보다 더 깊은 욕망이 있다.
죽기 싫어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글쓰기에서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나는 죽더라도
나는 늙더라도
나의 젊음과 나의 인생이 담긴 글은 살아서 숨을 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