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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Dec 08. 2021

아내와 다퉜다.

 일반적인 싸움에는 두 진영이 있다. 그 진영을 이룬 기초는 어떠한 가치관에 기반하고 있다. 그 가치관이란 것은 또 시대와 상황, 그리고 어떤 교육과 배경에 따라서 다양해진다. 그런데 싸움이 치열해지면 결국엔 서로 다른 가치관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기가 꽤나 힘들어진다. 그러다가 결국 전쟁을 하거나 휴전을 하거나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그게 나의 업을 책임지는 회사일 수도, 나의 삶의 큰 부분인 가족일 수도, 오랫동안 큰 인연을 쌓아온 친구일 수도, 어떤 사회적인 클럽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시간이 지나다 보면 서로 다른 가치관이 "팡"하고 부딪히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부딪친 가치관은 서로의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가 쌓이고 쌓여서 도저히 수술이 불가능한 지점에 이를 수도 있고, 어느 정도 봉합해놓고 살아갈 수도 있고, 때로는 기적적으로 완전히 상처가 치유가 되어서 그저 영광의 흉터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흔치 않지만...)


 동물이나 사람이나 관계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순 없다. 우리의 삶은 서로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코 나 스스로 혼자 존재할 순 없다. 설사 그렇게 느끼거나 믿더라도 분명히 나의 존재를 바쳐주는 수많은 관계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들은 이전보다 발전된 시대에 사는 것 같지만 꽤나 정서적으로, 혹은 내적으로 굉장히 후퇴된 시대에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다들 알고 있지만 이제는 개인 스스로나 어떤 작은 집단이 거대한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안타까움을 뒤로 여긴 채 말이다.


 그렇다. 나는 아내와 다투었다. 그리고 아내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다툰 어떠한 이유를 찾는다. 그리고 아내의 상처를 보기보단 그 상처가 있었던 어떠한 배경이나 가치관들을 수정하고 싶어 한다. 바꿀 수 없는 걸 바꾸려니 갈등에서의 어떤 타협점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작게 베인 상처가 점점 넓어지고 깊어질 뿐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내가 그동안 받은 다양한 영향들이 나의 가치관을 형성했고, 그 가치관은 때로는 나의 아내와의 관계를 더 깊은 심층에서 유지해주고 지탱해준다는 어떠한 생각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내와의 관계보다 그 관계를 유지하고 지탱해주는 그 가치관이 더 중요한 거다. 아니 가치관이 그러하기에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상은 오히려 그 더 심층에 있는 가치관 때문에, 그 가치관이 관계를 유지시켜준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관계를 망쳐버리고 오히려 망쳐버린 관계로 인해서 나의 가치관과의 싸움의 자리에 오게 되었다.


 아내와의 갈등과 싸움은 내 가치관의 근본이 무엇인지 의문하게 만들었고, 그 의문이 나와 나의 가치관과의 대면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싸움을 일으켰고 마음에 상처를 준 가치관을 조금씩 들여다보니 이게 허상인 게 많다. 분명하지 않고 굉장히 자기중심적이며 공허한 메시지에 아주 짙은 안개로 덮여서 무엇하나 제대로 발견할 수도 볼 수도 없는 굉장히 모호한 상태에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형태가 있거나 분명한 게 있어야 싸워서 깨 부스든지 바꾸든지 할 텐데..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저 새벽 일찍 자욱한 안개와 칡흙 같은 어둠 속에서 길도 잘 보이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헤매고 있는 조금은 초라하고 안타까워 보이는 나 자신이 있는 것 아닌가?


 아내와 싸우거나 다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의 가치관과의 싸움이었던 것이었다. 그게 분명히 보이지 않아서 그저 내 주장을 계속 반복하고 설득하려 하고 나 자신을 감추면서 보호하려고 이 말 저말 같다붙이면서 상처에 조금 더 깊은 상처를 주면서 점점 관계만 멀어지는 어리석고 쓸데없는 의미 없는 가치와의 싸움이 그 안에 있던 것이었다.


 결국 모든 싸움의 근원에는 그 근원 안에 있는 중요하지 않은걸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과의 싸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그만큼 가치가 있다면 치열하게 지켜내고 붙들어야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그저 사라지는 안개처럼, 곧 밝아올 밝은 태양을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잘 모를 땐, 사람들의 반응이 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꼰대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 그럼 늙어서 홀로 외롭게 죽어갈지도 모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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