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치동 아이들이 부럽지가 않다.
부럽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데는 두 가지 마음이 있다. 하나는 도저히 현실적으로 그 위치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애써 스스로 포기하면서 자기가 처한 상황을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방법으로 부럽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정말 부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 나도 갈 수 있지만 그 상황이 어떤지 알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부럽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대치동 아이들이 부럽지 않은 이유는 현실적으로 그 위치에 갈 수 없는 상황도 있지만 갈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더라도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그러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사람마다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더 낫다고 할 순 없으나 나는 그냥 그렇다.
대치동에는 분명 굉장히 좋은 실력의 선생님들, 그리고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 그들의 부모님들이 많이 있는 걸 안다. 그러한 좋은 환경과 배경을 위해서 그들이 쌓아온 노력들을 헛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무엇이 정말 좋은 가치인가?라는 질문은 딱 하나의 대답이 없기 때문에 대치동에서의 삶이 그저 아이들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 아닌가?라는 단순한 측면에서 폄하할 순 없다. 대부분의 그 폄하 속에는 자신이 그 상황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마음속의 질투를 겉으로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꽤나 많다. 그래서 그런 오류를 나 스스로 범하고 싶진 않다.
대치동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당장 대치동으로 이사 가서 살 수 있지도 않기 때문에 난 대치동의 아이들과 부모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은 없다. 그래도 생각은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상황이 연출된다면 난 대치동에서 아이들을 키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별로 긍정적이진 않다. 그 정도의 여유와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차라리 가족 다 같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 좀 더 넓은 선택지의 교육환경을 선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번 푸껫 한 달 살기 여행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차원도 꽤나 컸다. 처음에는 필리핀에 한 달 정도 살면서 아이들 낮에 어학원 보내고 우리 두 부부는 좋은 시간 보낼까?라는 생각을 조금 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다 보니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바에는 그냥 한 달 실컷 놀자!라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그러다 보니 여행지도 필리핀이 아닌 태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여행의 목적은 그냥 편히 쉬면서 놀고먹자!라는 콘셉트가 가장 컸다. 도착하기 전까지 티켓과 숙소만 구했으니 이곳 정보는 전혀 없었고 이곳에 도착해서 하나 둘 알아보면서 이곳 태국 푸껫에서의 삶을 즐기고 있다. 아이들이 셋이다 보니 사실 많은 질문을 받기도 한다. 애들 셋 키우기 힘들다는데.. 그 말의 의미는 아마도 교육비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뭐 교육비도 그렇지만 막상 셋을 키우다 보니 식비가 장난이 아니다. 점점 커질수록 비용이 많이 든다. 이전과는 다르게 이곳 여행지에서의 식비도 만만치 않다. 매일 수영하고 놀다 보니 아이들의 식성이 정말 끝없이 뱃속으로 계속 들어간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여행경비ㅠ)
암튼, 계획한 대로 이곳에서는 계속 논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아이들 셋이 더 친해진 걸 느낀다. 아이들끼리도 친해지고 나와도 예전과는 다른 관계가 형성이 되는 듯하다. 우린 그렇게 한 달이라는 길면 길 수도 있지만 막상 실천해 보니 꽤나 짧은 기간 동안 서로의 추억과 관계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아무리 관계를 쌓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인 우리들의 본성 때문에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가족의 관계가 그나마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최고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부부의 관계도 있겠지만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도 서로 간의 노력이 없이는 유지하기도 힘들고 시간이 지나서 세대차이가 날 시기에는 더 어려워질 수 있는데, 그 어려워진 시기에 극복할 수 있는 자양분이 어릴 시절 부모들과의 좋았던 기억들 아닐까?
그래서 나는 대치동 아이들이 부럽지가 않다. 그러한 교육을 통해서 나중에 좋은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부와 명예까지 남들보다는 조금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부모와의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시간들을 확실히 보장되지도 않은 미래의 어떠한 삶을 위해서 온전히 빼앗긴다는 게 조금은 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저마다의 삶의 가치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난 그냥 안타깝다. 내가 저 돈과 위치라면 좀 더 아이들과 더 놀고 더 좋은 추억을 만들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난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사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친구가 잘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만의 교육방법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점검이 어려울 때도 있으나 가장 좋은 점검은 아이들의 반응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이 좋았다고 하는 말들, 가끔 너네 또래 아이들이 하루에 8시간 이상씩 방학 때 학원 다닌 다는 이야기를 하면 정말 놀래는 첫째 아이의 반응, 가끔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 아이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들, 그 모든 것들이 그래도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나름의 외적 반응들이라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