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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아내

천천히 사는 법을 배운 지 1년

by 김씨네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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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을 분명히 기억한다.

우리 부부는 엄청 크게 싸웠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크게 싸운 것은 생생히 기억난다.


그때의 어두운 감정과 괴로움도 여전히 나의 뇌리 속에서 느껴진다.

내가 무언가 잘못했기에 싸움은 일어났다.

아내에 대한 이해 부족 또는 여자를 잘 몰라서 혹은 나의 이기적인 어떠함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는 집을 나갔다.

사실 갈 데도 없는데..


장모님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친구도 없는 이곳에서..

나도 화난 감정을 추스르고, 아내를 찾기 위해 문밖을 나섰다.


보로속이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롯데리아 정도의 레스토랑이 하나 있다.

우린 주로 거기서 차와 식사를 했었다.

그나마 가장 최신식의 우리 정서를 채워줄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예상한 대로 그곳에 있었다.

무언가 큰 슬픔에 잠긴 채로...


내가 이곳에서 잘했던 거 한 가지는,

힘들고 지칠 때,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

일단 모든 걸 제쳐두고 떠나는 것이었다.


아내를 어렵게 설득해 차에 태우기까지는 성공했다.

그리고 무작정 달려서 도착한 곳이 이곳..


아직까지 아내는 입을 열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그러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도 그 속을 끄집어내고 싶었지만, 이럴 땐 기다리는 것이 제일 좋다.


어린 아들을 위해서 수영장 비슷한 것을 만들어줬다.

뭔가 일을 하니 나도 에너지가 솟는다.

그런데 누군가의 선물인지,

아들 손에 다 부러진 장난감 껍데기가 하나 쥐어져 있다.

이곳에 이런 게 있을 리가 없는데..

어디선가 흘러 흘러 아들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 같은 차림으로

마냥 신나게 노는 아이를 보니 아내도 조금 마음이 풀리는 듯하다.


기억하기로는,

아내는 이곳 생활을 다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서로 기억은 잘 못하지만

가장 크게 다투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짧은 여행을 떠났고..

그 여행이 우리의 관계를 다시 회복해주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건 분명하다.


무엇인가 삶이 엉키고 복잡한 문제가 해결이 잘 되지 않을 때,

다 내려놓고 어딘가로 떠나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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