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림

천천히 사는 법을 배운 지 2개월

by 김씨네가족


계획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둘째를 가지게 되었다. 아직 언어도 제대로 못하고, 무엇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둘째의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병원에서 둘째가 위험하단다.

조산기가 있어서 아내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어느 정도 위험한 상태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곳의 병원은 사실 신뢰하기가 어렵기에, 한국에 있는 의사에게 물어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무조건 누워있으라고 하고, 한국에서 급히 관련 약을 보내주신다고 하였다. 그 약을 기다라며, 그리고 조산기가 사라지길 기도하며 아내는 계속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시간을 일주일 정도 보낸 것 같다.


그 기간에 난생처음으로 집안일을 나 스스로 해야 했다. 한국에서도 집안일이 물론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특별히 나같이 집안일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남자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숙제였다.

거기다가 아내는 조산기로 위험한 상황에 있고 아직 첫째도 어려서 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최소 한국에서는 밥이라도 시켜서 먹으면 되었지만, 이곳은 그럴 수도 없고 그럴만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시켜먹는 것 아니라 해 먹는 것도 재료부터 방법 모든 것이 풀기 어려운 숙제! 그 자체였다. 여하튼 일주일의 힘든 고뇌의 시간을 이겨내면서 다시금 병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 아기의 심장이 멈췄단다.

그리고 산모가 위험하므로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였다.


더 큰 문제는 이후로 시작되었다. 이곳 병원은 일반적으로 조산의 경우 수술 시 마취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러시아식 의료가 조금 거칠다. 그래서 마취 없이 수술을 하려고 의사가 강압적으로 얘기하였다. 급히 한국의사에게 물어보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시 어렵지만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간이 좀 걸려도 좋으니 마취를 반드시 하고 수술을 하자고 얘기하였다. 의사는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그때 우리를 도와서 통역해주시는 분께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통역을 도와주셨던 분이 한국대사관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 덕에 많은 정보와 도움을 실제적으로 받게 되었다.

다행히 마취 후 수술을 하게 되었다.


한국병원과는 달리 이곳은 2차 감염이 많이 일어난다. 이후에 여러 차례 병원을 가서 검사를 하였는데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수술도 잘 끝나고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집에 왔다. 사실 이때 나의 아내는 큰 고통 속에서 아픔을 호소하게 되었다.


그것은 둘째를 잃은 아픔, 병원에서의 무서움,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갑작스러운 충격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였고, 기도도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말, 극적으로 그런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었던 아내는 기적적으로 그 고통 가운데 벗어났다.


인생에서 정말 우리 스스로 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럴 때 신은 극적으로 우리를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도와준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우리의 인생길에 항상 피할 길은 있다. 나의 아내는 둘째를 잃은 유산을 큰 트라우마로 가지진 않게 된 것 같다. 오히려 내가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 오는 아픔과 눈물이 있다.


아내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수술 대위에서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

기도밖에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한 상황..

고통과 아픔은 사람을 성숙시킨다고 했던가...

그러한 것이 우리의 성숙과 또한 그 성숙으로 남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계기로 만든 것이 신의 섭리였을까?


고통과 아픔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아픔은 참 겪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그 아픔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은 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적극적으로 겪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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