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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Dec 18. 2019

유혹 7, 갑질에 굴복하기

영원한 갑은 없다.

40대 남성은 다양한 책임감에 살아간다. 그 책임감은 대부분 을의 위치에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을은 갑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갑이 말도 안 되게 갑질 할 때는 을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40대 남성에게 책임감은 갑질에 굴복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러한 갑질에 반복적으로 굴복하면 갑은 더더욱 갑질을 갑질로 여기지 않게 된다. 


오늘 아침에 내가 그 갑의 갑질을 끊기로 작정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잠깐 설명하자면,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는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해킹을 막아주는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일을 한다. 그곳에서 세일즈, 마케팅 팀장이라는 약간은 무거운 직함을 현재 가지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고객사에서 아침에 미팅을 요청했다. 임원급의 미팅을 요청한 것 같은데, 내가 임시로 임원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최근에 임원중 한 명이 퇴사하는 바람에 내가 그 일을 맡아서 하고 있는 중이다. 임원은 아니지만 임원과 비슷한 처지인데 전혀 영향력은 없는 존재다. 어쨌건 임원이 없기에 내가 임원 대리로 그 미팅에 참여를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기존에 미팅과 사업의 이력은 전혀 알지 못했다. 나도 이 회사에 들어온지는 불과 몇 개월 안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초면부터 다짜고짜 갑질을 하는데, 나도 영업인지라 최대한 고객 대응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다.




갑 : 사업에 대한 의지가 있으신가요?

을: 네, 우리가 이 사업이 주력이기 때문에 이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건 회사를 접겠다는 의미입니다.


갑 :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서비스는 엉망이고.. 등등...

(계속 화가 난 상태로 불만을 마구 토로하는 중이다.)


계속 듣고 있긴 했지만, 어떠한 대화도 해결책에 대한 제시도 의미가 없는 듯했다. 그냥 갑질로 보였다. 그것도 완전 초면인데.. 그래서 도저히 들을 수가 없어서 한번 끊어줬다.


을 : 네 말씀하신 사실은 잘 이해했습니다. 다만 초면인데 비즈니스 대화를 이렇게 하는 건 어려움이 있네요..

(이때 갑은 정말 화난 것 같았다..)


갑 : 아니 비즈니스를... 어쩌고 저쩌고... 열 받아서 마구 토해냄....

을 : (일단 듣고 있음...)


갑 : 이러한 문제점들이 많은데 우리가 00 회사의 00 솔루션을 써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이미 이때쯤 갑은 감정적으로 최고조에 달한 것 같았다. 그냥 단순히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을에게 푸는 자리 정도로 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무엇인가 답변을 해야 했고 내 머릿속에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첫 번째는 '그래 갑질에는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감수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건 나의 답변으로 인하여 내가 회사에서 어떠한 조치를 당할 수 있다. 그리고 심할 경우 퇴사도 각오해야 한다.' 내가 생각한 답변은 솔루션을 빼자고 역으로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대안은 죄송하다고 굴복하는 거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초면이고 비즈니스로 만났는데 이렇게 무례한 것은 분명 잘못이다. 이러한 태도를 계속 용납해줬기 때문에 갑은 더욱 갑질을 하게 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내가 큰 힘은 안될지라도 이 갑질을 끊어야 겠다는 용기가 솟아 올랐다. 결국 나의 답변은 하나로 뭉쳐졌다.


을 : 그러시면, 저희 솔루션을 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때 갑은 완전 감정 컨트롤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갑 : 사장님 이메일 알려주세요. 사장님께 이 사실과 함께 메일 보내겠습니다. 

을 : 네 여기에 사장님 메일 있습니다.


(그리고 회의는 중도에 끝이 났다.)


누구의 승리일까? 갑의 승리인가 을의 승리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갑질에 순응하는 것은 내가 잘하는 게 아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잘못된 것은 잡아야 하겠다는 나의 미친놈 같은 기질이 이번에 또 발휘되었다. 


사실, 내가 한 행동과 말이 갑의 어떠함을 바꿀 수 없는 걸 안다. 그러나 그분에게 최소한 갑보다 더 갑 같은 을도 있음을 상기시켜줬다는데 의의를 둔다. 비록 세상이 나의 작은 행동에 바뀔 수 없을지라도 나는 묵묵히 나의 신념을 지키며 살고 싶다. 누군가는 정의를 외치지만 누군가는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외치기보다는 정의를 실천하고 싶다. 그 결과가 다양한 고통을 감수할지라도 나는 이길이 멋있다고 스스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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