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행복한 사랑 이야기」속편
"네 마음을 청년에게 전해주었어. 하지만 그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단다."
아가씨는 심장에 뾰족하고 두꺼운 창을 관통당한 것 같은 고통을 느꼈어요. 가슴이 저리도록 아파왔어요.
갈 곳을 잃은 아가씨의 마음은 자신을 위로해 주는 뚝딱이에게 의지하게 되었어요. 뚝딱이는 너무나 행복했어요. 이제 아가씨의 진정한 사랑의 상대는 자신이니까요.
이 이야기는 <어느 행복한 사랑 이야기>의 반대편에서 시작된다.
1편 읽기: https://brunch.co.kr/@kimsh223/3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 2001)
'여자'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식탁에 앉았다.
"칙─"
캔을 따는 금속음이 힘없이 공기가 빠지는 듯했다. 마치 여자의 속마음 같았다.
여자는 동화 속의 순진한 아가씨 따위가 아니었다. 여자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명히 여자와의 대화에서 호감을 드러냈다. 그건 단순한 매너가 아니었다. 분명히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인간'의 전언은 이상했다. 수상쩍었고, 다른 경로로 들은 것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여자와 그가 진실한 사랑을 맺는 일은 이미 물거품이 되었다. 그 인간이 어떻게 떠벌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여자가 그 인간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응원의 뉘앙스를 담은 말도 건넸다. 그 인간은 여자에게 마냥 상냥했다. 여자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철저히 어울려주지.
여자는 그 인간과 정식으로 연인이 되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행복한 연인. 여느 연인들처럼 달콤한 말을 주고받고,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몸을 섞었다. 모든 장면이 완벽했고, 그 인간은 매 순간 행복해했다.
하지만 여자는 달랐다. 이 모든 순간이 소름끼치게 불쾌했고, 낯설었다.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다정하기 그지없는 연인의 생활이 몇 달쯤 이어졌다. 여전히 여자는 가끔 그와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아려왔다.
그 인간은 여자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 사랑에 목이 메어 눈 뜨고도 보지 못할 정도였다.
어느날, 여자는 그 인간에게 말을 꺼냈다. 말하기를 주저하는 척했다. 그 인간으로 인해 이뤄지지 못한 자신의 사랑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눈물이 절로 났다.
"뚝딱아, 나...그 청년을 잊지 못했어...아직도 사랑해..."
그 인간은 놀란 것 같았다. 네가 왜 놀라는 거니? 내 사랑이 그렇게 쉽게 변할 줄 알았던 거니? 결국 그 인간을 울려버렸다. 슬프게. 너무나 순진하게. 그런데도 그 인간은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정말 괜찮아.". 그리고 여자의 꼭 잡았다. 눈물이 그 손등 위로 떨어졌다. 여자는 다시 한 번 소름이 돋았다.
여자는 이제 둘도 없는 연인 놀이조차 지겨웠다. 점점 그 인간에게 소홀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처음의 그에게도 마음이 식어갔다. 모든 감정이 마른 잎처럼 바스러져 갔다. 여자는 그 인간은 내버려둔 채, 다른 멋진 남자들을 여럿 만났다. 여자가 찾던 '진실한 사랑'은 아니었다. 그저 진실 없는 사랑이었다. 그 인간에게 티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 인간과, 여자가 만나는 다른 남자들 ─ 모두 똑같이 진실 없는 사랑이었으므로.
시간이 지나자, 여자는 다시 진실한 사랑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인간이었다. 몇 번이나 헤어지려고 했지만, 그 인간은 막무가내였다. 여자는 억지로 이별을 선언했다가 혹시라도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웠다.
"뚝딱아, 네가 좋다면 내 옆자리에 있어도 괜찮아. 단, 내 진정한 사랑이 나타나면 자리를 비켜줘야 해. 그렇게 해주겠니?"
그 인간은 여자의 곁에 있으면서 여자의 연락을 받고, 여자와 길을 걷고, 여자와 식사를 하는 것들에 집착했다. 옆자리에 있어도 좋다고 하면, 그 뒤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여자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여자는 다시 진실한 사랑을 찾아 헤맸고, 더 멋진 청년을 만났다. 그 인간에게 자리를 내어달라고 했음은 물론이다. 그 때 그 인간의 반응이 어땠는지 따위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여자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멋진 청년과 결혼했다. 그리고 후회도, 미련도 없이 행복했다.
여자는 맥주 한 캔을 따던 날 복수를 맹세했다. 그리고 그 후 몇 년간 가짜 사랑을 견뎌가며 그 복수를 완성했다.
복수의 이름은 하나였다.
사랑을 훼방놓은 죄.
뚝딱이는 몰랐다.
여자는 이제, 사랑도 복수도 모두 끝냈다는 걸.
그저 맥주 한 캔만 남았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