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는 정류장

어느 날, 버스 정류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by 김유려

출근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버스 정류장 표식은 항상 두드러진 붉은 보도 블럭과 나란히 있었다. 그 날은 10cm 정도 이동해 있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10cm씩 이동했다. 나는 그 날 버스 정류장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의 정류장 표식은 내가 본 것과 달랐다. 정확히 붉은 보도 블럭과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에 정류장에 나가 확인해 보았다. 전날보다 더 이동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이 정류장은 내가 출근하는 날에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정류장이 움직인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나와 다른 사람들의 버스를 기다리는 위치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버스는 정류장 표식이 있는 내 앞이 아니라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원래 정류장 자리에 정차했다. 나는 그 날 처음으로 버스를 놓쳤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다 탄 뒤에도 왠지 뒤따라 타고 싶지 않았다. 결국 회사에 가지 못했다. 부장에게 전화해서 교통사고가 나서 급히 연차를 쓰겠다고 했다.


그 뒤에도 출근을 하려고 정류장에만 가면 전날보다 정류장은 10cm 이동해 있었다. 어느새 버스 대기줄은 나와는 관련이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 하지만 난 여전히 '옛날의' 정류장에 멈춘 버스를 탈 수 없었다. 새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꼰대같은 버스와 승객들.


매일 '새로운' 정류장에 멈추는 버스를 기대하고 집을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고 나면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직장에서 잘렸다.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거지같은 관료주의.


그래도 나는 출근을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버스 정류장은 인도를 벗어났다. 그 때부터 내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렸다.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도 아직 인지하지 못하는 쓰레기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같은 끈기와 적응력을 갖춘 사람이 또 있을까. 왜 아무도 몰라주는 것일까. 하다못해 이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 중 한 대만이라도. 아아 ─ 나는 승리했다, 아니 승리하고 있다. 이 빌어먹을 답답한 세상에서 나만이 변화에 완벽히 적응했다. 황홀하다. 나만이 인류에서 제일 우월한...




"여기! 사람이 치었어요! 구급차 좀 불러줘요!"

"심하게 다친 것 같아요!"

"어머, 끔찍해라...너는 보면 안 돼."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평소라면 꺾이지 않을 방향으로 관절들이 휘어진 게 느껴졌다. 아스팔트에 닿아있는 머리를 살짝 왼쪽으로 돌리니 나와 충돌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지난 몇 달간 그렇게 타고 싶어했던 바로 그 버스.


10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