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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soo Mar 10. 2022

나의 업 정의하기


작년 즈음, 업을 수행하는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나는 하나의 기로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꽤 애정을 가졌던 브랜드와의 작별에서 시작 되었는데, 인턴 때부터 3년이 넘게 담당한 브랜드에서 물러나게 되자 그 브랜드를 기반으로 쌓아왔던 업에 대한 방향성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미래를 그릴 수 없게 되자 불안이 찾아왔고, 그렇게 휩쓸리다가 하루는 가만 앉아 나의 업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졸업도 하기 전에 입사한 스타트업에서 1년 6개월, 퇴사하고 광고회사에 들어가 3년 4개월. 총 5년의 사회생활을 되돌아보면 감사한 일들 투성이었다.


스타트업에서는 항상 꿈꿔왔던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원고를 쓰고, 영상을 기획하는 일을 맡았다. 때로는 이탈리아, 교토, 제주 등 여러 장소에 떨어져 디지털 노마드로 업무를 수행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스타트업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완전한 자율 아래 효율적으로, 빠르게 성과를 내기 위해 항상 고민을 했는데, 이 시간들이 지금까지도 내가 업무를 하는 태도에 대한 기반을 잡아 주었다고 믿는다.


이직하고 나서 지금까지 다닌 광고회사에서는 스타트업에 비해 비교적 규모가 있어 체계성을 기반으로 여러 브랜드를 경험할  있었다. 처음부터 누구나 이름을 말하면 바로   있는 국내, 그리고 글로벌 브랜드를 담당할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스토리텔링, 글쓰기 업무는 줄어들었으나 간접적으로 기업이 사랑받을만한 이야기를 찾아내 기획하는 업무도 꽤나 재미있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특성에 맞는 콘텐츠로 이야기를 전환하며 온라인 브랜딩 경험을 꾸려나갔던 경험. 카메라 뒤에서 기획하고, 메인으로 여러 브랜드를 담당할 기회를 얻으면서 당시에는 꽤나  챌린지를 연속적으로 는 사이 번아웃이 수차례 찾아왔으나, 연차보다 빠르게 전체 그림을 짜는 눈을 키울  있었다.


스타트업에서는 담당 업무에서 홀로 성과를 내는 경주마처럼 달렸다면, 광고 회사에서는 같은 목표를 보고 걸어가는 동료들과 때로는 회의실에서 머리를 싸매고, 야근식대로 매운 음식을 잔뜩 시키고 스트레스를 풀며 '함께' 걸어가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모든 것을 나 스스로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은만큼, 나 또한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했고. 그 덕에 감사하게도 유튜브와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세 번의 수상을 받는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점차 일의 숙련도가 쌓이면서, 이대로 이 곳에 머문다면 내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쌓이기 시작했다. 글로 혼자 마음을 풀어보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이야기도 들었지만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작년 말에 조직 개편으로 인해 팀이 바뀌고 담당 브랜드가 바뀌면서 새로운 환경이 찾아오자, 새로운 형태의 업무에서 헤매는 나를 발견했다.


'숙련은 무슨, 아직도 난 배워야 할 일 투성이구나. 자만하지 말고 더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자.'


하지만   시작된 불안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고,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불안에 흔들리기보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궁극적으로 업의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방향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과거의 길을 찬찬히 살펴야하는 . 이력서나 기술 경력서가 아닌  색을 가진 포트폴리오를 쓰는 과정을 통해 과거에 내가 해왔던 업무들을 정리해보았다.


5년간의 업무를 정리하는 일은 꽤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다. 열흘이 넘는 시간동안 포트폴리오를 다듬는 동안 업무들의 조각이 맞춰지며 큰 퍼즐 하나가 완성되었고, 포트폴리오가 마무리될 때 쯤 내가 생각하는 업의 정의도 정리될 수 있었다.


가장  부분에 적는 나의   소개는 포트폴리오수정에 수정을 치는 과정에서 점점 모호해졌지만, 전체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어느 때보다 명쾌해졌다. 그래서 나는 포트폴리오의 제일 처음을 이렇게 적었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 콘텐츠 기획자


나의 업이 어떤 형태를 띠든, 결국은 스토리를 말하는 기획자이고 싶다. 기술, 브랜드, 물건이나 서비스도 결국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것이라면, 실체는 인간성을 띠지 않고 있다고 해도 살아있는 목소리를 부여하는 역할을, 이야기가 숨겨져있다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속성들을 찾아 사랑받을 수 있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


나는 업에서의 시너지가 개인의 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고, 반대로 충실히 살아가는 나의 삶의 여러 요소가 업에도 시너지를 낸다고 믿는 사람이다. 일을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내고, 그 성과로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싶은 사람. 삶이나 업 어느 한 쪽으로 무게가 너무 기울어지면 다른 한 쪽도 충실할 수 없는 사람.


작년 3분기까지는 일과 개인적인 삶 사이에서 유연하게 균형잡는 법을 모르기도 했거니와, 요구되는 업무량이 과중되는 시기가 많아 삶을 즐길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그렇게까지 많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성향을 파악한 , 회사에서 업무를 열심히 수행하는만큼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펼칠 기회와 순간을  손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누구도  인생을 책임져주거나,  삶을 즐길 시간을 보장해주지 않으니까.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지!


그 과정에서 브런치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집과 나 사이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인스타그램도 운영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회사를 찾는 것보다 나를 원하는 회사와 좋은 연이 닿았고, 작성해둔 포트폴리오를 통해 인터뷰도 진행했다. 콘텐츠를 기획자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 마케팅의 영역까지 배울 수 있고, 관심을 가졌던 업계는 아니었지만 블루오션을 발빠르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이제서야 김이 서린 안경을 벗은 기분이었다.

세상이 조금 더 뚜렷하게 보이는 느낌.


직장인들은 누구나 사직서를 마음에 품고 산다고 했나. 조금씩 흔들리는 마음은 언제든 생길 수 있지만, 나 자신의 꼭지점을 잘 찍고 뿌리를 내린다면, 갈림길이 나왔을 때 의미없는 소음이나 타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에 기대지 않고, 나의 문장으로 글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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