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처 없이 걷거나 산책하는 건 좋아하지만, 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은 아슬하 게 들어오는 지하철이나, 횡단보도의 깜빡이는 초록불에서는 오히려 걸음을 늦추는 편이다.
‘다음번에 가지 뭐.'
그런 내가 러닝을, 그것도 러닝크루에서 뛰게 될 줄이야.
자발적 집순이인 나지만, 코로나 때문에 좋아하는 여행까지 가지 못하게 되니 점점 갑갑함이 늘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집-회사만 반복하는 것이 너무나도 지겨워져서, 취미 플랫폼과 커뮤니티들을 찾아보았 다. 트레바리, 문토, 던바이어스.... 며칠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여러 플랫폼을 돌아다니니, 인스타그램 광고에 타겟팅이 되었는지 생전 처음 듣는 모임들이 광고로 뜨기 시작했다. 일주일 정도 되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려보던 나는, 한 구절에 이끌려 러닝크루에 등록하게 되었다.
‘런린이들의 슬로 러닝천국’
러닝크루 자체를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 러닝크루는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비싼 운동화와 여러 기어들과 함께 무섭게 뛰는 대단한 모임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그래서 동네 산책이 나 좋아하는 나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슬로 러닝천국’ 정도면 나 같은 ‘런린이’도 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한 문구였다. 희미하게 두근거리기 시작 하는 마음과 함께 바로 회비를 내고 가입을 하려 했는데 팝업창에 안내문구가 떴다.
‘이미 마감된 모임입니다.’
이미 내 머릿속은 예쁜 운동화를 신고 한강을 힘차게 뛰어다니고 있는 나를 상상하고 있었는데..?
부랴부랴 1:1 상담에 러닝크루에 꼭 참여하고 싶 은데 혹시 여석이 생길 경우 안내를 받을 수 있을지 문의를 남겼다. 다행히 3일만에 자리가 났고, 문의를 받은 스탭분이 종종거리는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지금 세 자리가 비었다고 바로 연락을 주셔서 무사히 크루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기다리는 며칠동안은 오랜만의 설렘이 사라지는 기분에 작은 마음고생을 했다.
그렇게 작년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6개월정도를 러닝크루에서 뛰었다. 첫 러닝 때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거의 사경을 헤매다시피 했는데, 점차 늘어가는 달리기 실력이 느껴지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카톡하는 친구도 생기고, 그 친구와 함께 걷뛰조(풀로 안뛰고 걸었다 뛰었다하는 조)에서 탈출해 1km를 7분 안에 뛰는 700조로, 1km를 6분 30초 안에 뛰는 630조로 옮기며 점점 달리기 실력을 늘려갔다. 보통의 러닝크루는 지역을 기반으로 모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내가 가 입한 곳은 여의나루, 잠실한강공원, 공덕 산책길, 경복궁 성곽, 남산까지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뛰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 많아 예쁜 사진을 남기고 기분 좋게 뛰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물론 풍경은 뛰기 직전까지만 즐길 수 있었고, 뛸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크루에서 만난 사람들은 비오는 날 더 신이 나 러닝의 묘미는 ‘우중런’이라고 말할 정도로 러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리더와 페이스 메이커들 은 함께하는 이들에게 기분좋은 활력을 불어넣는 에너지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들 곁에 있으니 낯을 가리는 나도 어느새 함께 소리내어 웃고, 호 흡을 맞추어 뛰고 있었다. 땀흘리며 운동하는 것 은 정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는 처음 겪는 형태의 즐거움이었다.
크루에서 달리며 러닝에서 지켜야 할 룰이 있다는 것도 배웠다. 러닝을 할 때는 다른 행인들을 피해서 뛰어야 하고, 만약 길을 양보 받았다면 꼭 감사표시를 한다. 가장 앞서 뛰는 페이스메이커를 절대 앞지르지 말아야 하며, 옆사람과 줄을 맞춰 뛰어야하고, 출발, 정지, 발조심 등 페이스메이커가 보내는 여러 신호를 주위 기울여 보고 뒷사람들에게 전하며 뛴다. 나와 우리의 취미를 안전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는 일 없도록 리더는 이 지점을 여러 번 강조해서 말했다.
러닝은 내 삶의 여러가지를 바꾸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도 안먹고 잠에 들 정도로 체력이 좋지 않았던 내가 퇴근 후에도 눈을 빛내며 뛰러 나갔고, 약속 없이 집에서 나가지 않던 내가 날이 예쁘면 집밖으로 나와 동네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러닝하기 좋은 길을 찾아 돌아다니다보니 맛있는 빵집은 어디 있는지, 노을은 어디에서 봐야 막힘없이 볼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독립 후 처음으로 ‘나의 동네’라는 애착이 생겼다. 러닝에서 얻은 작은 성취감들은 코로나 블루를 경쾌하게 보낼 힘을 길러주었다. 물론 페이스를 조절하지 못해 갑자기 머리가 핑 돌거나 눈앞이 까매지기도 했고 근육통에 걸려서 며칠 걸음걸이가 우스워지지도 했지만, 그런 날은 산책을 하거나 잠시 쉬며 예쁘게 저무는 노을 사진을 찍고 다시 달렸다.
동네에 발이 익으니, 색다른 곳에서도 러닝을 하고 싶어졌다. 그 때 여행지에서도 러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여행은 가지 못했지만, 강릉에 있는 본가에 가면 경포호 한 바퀴를 뛰고 오곤 했다. 그렇게 작년 여름부터 올해까지 러닝은 내게 ‘취미’라고 할만큼 애정어린 존재가 되었다. 전문적인 러너가 되거나, 마라톤을 완주하는 등의 장황한 목표도 없기에 평생 ‘런린이’ 신세일 테지만, 다치지 않고 지금처럼 오래 뛰거나 걸으면서 풍경을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