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쓰지 말고 정신력으로 버티지 말고 몸이 알아서 굴러가도록 만들기
어제는 놀다가 새벽 2시 반쯤 잠들었다. 그래도 오늘도 7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갔다. 7시 알람과 7시 1분 알람 사이에 정말 108번뇌가 몰아쳤다. 정말 나 자신에게서 두 가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요일인데 하루쯤은 하는 목소리와 이것도 못지키는 한심한 녀석이냐는 목소리가. 다행히 후자가 이겼다. 돌아와서 영어도 바로 했고 지금 글 쓰려고 앉은 시간은 10시 25분이다. 평소와 같은 페이스다.
아침에 결국 일어나서 멀뚱멀뚱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신력이 아니라 몸으로 한 거다. 정말 정신은 거의 잠에 굴복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신기하게 몸이 일어나졌다. 그리고 몸이 알아서 움직여서 준비하고 짐을 싸서 출발했다. 출발할 때까지 유일하게 했던 생각은 ‘검은색 양말 신고 싶은데 너무 이상하진 않겠지’ 였다.
운동 가서야 말할 것도 없이 그냥 몸이 멀뚱멀뚱 움직였다. 잠을 안자서 확실히 퍼포먼스가 안나온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들었다. 그러고 돌아와서는 씻고 바로 스픽 앱을 켰다. 분명 7시 0분과 1분 사이에는 ‘그럼 운동은 가겠지만 다녀와서는 유튜브 좀 보고 쉬자’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스픽이 끝나고도 평소처럼 10분 쉬고 몸이 저절로 컴퓨터 앞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이 어젯밤에 보던 유튜브 창을 지우고 북마크바에 있는 글쓰기 아카이브 바로가기를 눌렀다.
문득 지난 날들이 생각났다. 정신력으로 버틴 날들이 많았다. 몸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뛰어들어서 정신으로 버텼다. 회사 일이며 어려운 대화며 이런저런 모임이며 모두 그랬다. 항상 기를 쓰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쉽게 지쳤다. 당시에는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번아웃이 왔다. 그래서인지 내 삶은 중간중간 끊어진 그래프같은 모양이다. 달리다가 중간에 아예 멈춰서 쉬는 시간들이 종종 있었다.
이제는 보다 지속 가능한 방식을 찾은 것 같다. 앞으로는 아래와 같이 해보려고 한다:
머리로 무슨 일을 할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한번 정하면 쭉 갈거니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한다
정신력으로 초반을 버틴다. 몸이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을 벌어준다
몸이 알아서 굴러가는 시기를 즐긴다. 쓸데없이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흐름이 한번 끊어지면 다시 살리기 힘드니 예외를 두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생각이 있다. ‘쟤들은 매일 열두시까지 하는데 왜 난 열시만 되면 뻗을까’. 그렇지만 항상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근데 내가 성적이, 성과가 더 좋잖아. 난 짧고 굵게 태우는 스타일인가봐’. 이는 불과 얼마 전 올린 글에도 썼던 내용이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합리화하고 안주하기에는 최적화할 수 있는 부분들이 보인다. 생각을 많이 했기에 더 좋고 빠른 길들로 슝슝 달려왔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쓸데없는 생각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길이든 방식이든 너무 자주 바꾸었고 그때마다 매번 정신력으로 버텼다. 몸이 자율주행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결국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점심시간쯤 되니까 잠을 안자고 달려온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마음은 평온하고 기분도 좋다. 뭔가 한단계 나아간 느낌이랄까. 물론 하다보면 또 어려운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어느 정도 주기로 셀프 피드백을 하고 변화를 줄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나도 하나의 제품으로 생각한다면 큰 방향성은 정립한 느낌이다. 남은 백수 기간 동안 나라는 제품에 대한 최적의 사용 설명서 혹은 로드맵을 완성하고 싶다. 그런 다음 마음에 드는 새 제품을 들고 세상에 다시 나가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