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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씰리 Feb 06. 2024

남은 생은 내가 지은 이름으로 살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중년여성 내 엄마를 향한 관찰과 고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중노년 혹은 본격 노년기에 접어든 엄마가 충분히 당신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는 말들을 듣게 된다. 자녀들이 '엄마도 이젠 엄마의 삶을 좀 살아. 집에만 있지 말구. 취미생활 같은 것도 좀 가져봐. 응? 제발!' 이라 성토하면 어머니들이 못 이긴 척 이제라도 당신의 삶을 살아보기 위해 향하는 곳들은 대체로(* 내 주변 지인들의 사례는 그렇다) 셋 중 하나다. 교회, 봉사단체, 혹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봉사단체.

평생 성실함을 무기로 살아왔던 그녀들. 분명 취미로 시작했던 예배활동 봉사활동이었으나 그마저도 지나치게 성실히 하시다가 급기야 병원 신세까지 지는 사례도 꽤 많다. 그런 본인의 어머니를 얘기하다 속상하고 복장터져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린다. 나는 딴 건 몰라도 엄마가 본인의 삶을 즐기지 못할까봐 걱정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TV 속 엄마들은 보통 '엄만 하고 싶은 거 바라는 거 딱히 없어. 딸아 아들아 너네만 행복하면 돼~' 라고 하던데.

나의 엄마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엄마 심심해. 엄마 ** 하고 싶어. 너무 하고 싶어!' 다.


나의 엄마는 TV나 SNS에서 소개하는 핫플레이스에 다 가보고 싶고, 남동생이 손목에 레터링 타투를 하고 오면 본인도 쇄골에 나비 타투를 박고 싶어진다. 무릎연골이 닳아 수술을 받은 뒤 어느 정도 회복하자마자 혼자 SRT를 타고 부산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워본다. 옷수선 가게 요금이 비싸다고 느껴지자 할부로 재봉틀을 구매하고 사용법을 독학해 바지기장을 줄이고 에코백을 하루에 두세 개씩 만들어낸다. 냉장고를 바꾸라고 용돈을 주면 몇날 며칠을 코피 터지게 초저가 제품을 검색해 냉장고 한대 살 돈에 본인 돈을 조금 보태 냉장고에 소파까지 바꾼다.


20대가 되어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엄마가 뭘 배우고 싶어 하면 종종 학원을 등록해줬다. '엄마의 사교육비'는 한동안 나의 정기적 지출항목 중 하나였다. 아쿠아로빅, 사교댄스, 커피, 캘리그라피, 운전면허 등등. 근데 대부분 오래가진 못했다. 아쿠아로빅 수업 중 물에 빠진 뒤 (수영장 깊이는 엄마의 가슴팍 조금 위 정도였다) 물 공포증을 호소하며 관뒀고, 사교댄스는 '잘하는 것들끼리만 짝지어 춤추고 날 무시한다'며 한 달을 채우기 전에 관뒀고, 운전면허는 실기시험 시작 1분 만에 탈락한 뒤 본인에게 운전재능만큼은 1도 없음을 깨닫고 포기했다.


어느덧 60대가 된 그녀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남동생이 출근 전에 먹는 단백질쉐이크를 타놓고 내가 본가에 있을 경우 나의 아점상을 차려주고 오전 2-3시간 가량 본인의 재택근무 알바를 마친 뒤 집안을 깨끗이 삭 청소한다. 강아지 산책까지 다녀오면 정오에서 오후 1시쯤. 해야 할 일들을 대략 마친 그녀는 기지개를 켜며 외친다.

'아~ 오늘은 뭐하지?'

들을 때마다 정말 경이롭다.


김희애보다 더 욕심이 많았던 그녀는 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강하여 둘 다 놓치지 않았다. 이혼 후 딸아들을 키우는 가장이 되어 치열하게 돈을 벌었다. 다니던 직장이 없어지거나 짤리거나 싸우고 관두는 일이 많았는데, 대체 어떤 마법인지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다음날이면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했다. 우리가 먹을 아침밥을 차려놓은 뒤 하이힐에 가죽재킷을 입고. 그 40~50대 시절의 그녀는 주말에는 꼭 가족들과 보내거나 딸인 나를 데리고 외출했지만, 평일에는 월화수목금 전부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했었다고 최근에 고백했다. 정말 원더우먼이 따로없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촌스럽다며 싫어했다. 촌스러운 건 둘째 치고, 외할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동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가 이름 획자를 잘못 쓴 채로 등록된 이름이었으니 싫어할 법도 했다. 50대에 접어들면서 종종 본인이 직접 지은 세련되고 젊은 느낌의 가명을 쓰던 그녀는 어떤 날 남동생과 나에게 선언했다.

'지금까지 ㅇㄹ(본명)이로 지겹도록 살았으니까, 남은 인생은 ㅁㅈ(새로 지은 가명)이로 살아볼래.'

그렇게 그녀는 마침내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이름까지 바꿨다.

개인적으로는 엄마의 살짝 촌스러운 본명이 더 좋았으나 감히 그녀를 말릴 수는 없었기에 나는 핸드폰 저장명을 [엄마]에서 [ㅁㅈ씨]로 바꾸고 열심히 그녀의 새 이름을 불러주는 중이다.


그녀는 50대 중후반쯤 척추가 안 좋아져 직장생활을 관뒀는데, 여가시간이 늘어나자 심심함이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오다가다 친해진 또래 중년여성들과 교류를 해보았지만 서로 도통 대화의 교집함이 없었기에 따분하기만 했다. 베프인 딸=나도 일하고 연애하느라 엄마와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 엄마의 '심심해' 공격에 시달리던 나는 그럼 중년친목 소모임 같은 데라도 나가보는 것이 어떠냐 권유했다. 영화관모임, 맥주벙개 같은 것에 한두 번 참석했다가 똥 씹은 표정으로 귀가하던 그녀는 얼마 후

본인이 직접 소모임을 개설했다.


나는 그녀가 또 인터넷 영어사전을 열심히 뒤져 건져낸 '럭셔리' 라는 엄청난 단어가 포함된 모임명을 듣고 경악했다. 하지만 나의 경악을 표출해 그녀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고 싶진 않았으므로 그냥 입을 다물고 응원과 독려만을 건넸다.


얼마 못 갈 줄 알았던 그녀의 중년 친목도모 소모임은 벌써 7주년쯤이 되었고 회원수는 100명이 넘는다. 그들에게 '리더님'으로 불리며 파티룸을 빌리고 케이터링 업체를 불러 수십 명이 참가하는 정모를 주최한다. 가입신청하는 이들의 프로필을 꼼꼼히 살피며 면밀히 물관리를 한다. 물을 흐리는 회원은 가차없이 숙청한다. 그 모임은 그쪽 세계에서 [점잖은 사람이 많고 즐거운 곳]으로 꽤 알려졌다고 한다.


사실 엄마는 그곳에서 근사한 중년남성과 연애를 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녀가 물 관리를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남자들은 괜히 들이댔다가 숙청당할까봐 그녀에게 감히 사적으로 접근하지 못한다. 엄마는 한 남자의 꽃이 되기를 포기한 대신, 외롭지만 모두가 떠받드는 여왕벌이 되기를 택했다. 가장 기쁜 일은 그 소모임 운영에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덕분에 엄마가 심심할 겨를이 한결 줄어든 것이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패션을 공부했을 거라는 그녀. 아닌 척하지만 지금도 사랑을 꿈꾸며 [키 크고 돈이 많으며 한국어가 유창한 외국인]이 이상형인 그녀. 어떤 날 딸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 '난 사실 별볼일 없는 인간인데 이상이 너무 높아. 엄만 그게 문제라니깐.' 이라고 푸념하던 그녀.


난 그녀의 그 넘치는 생명력과 향상심이 평생 놀랍다. 그녀는 내가 알고 지내는 여자 중 가장 다면적이다. 그런 여자의 딸로 자라는 것이 사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를 관찰하고 고찰하는 일은 평생 질리지 않고 매일 흥미롭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이든 엄마가 어느날 '이젠 더는 하고 싶은 게 없어' 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주 많이 슬플 것 같다.


딱히 욕심이 없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여전히 어색하고 인색한 어머니들에게, 내 엄마 ㅁㅈ씨의 열정과 욕망을 한 움큼씩 나눠드리고 싶다. 중노년여성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이렇게나 많다고 알려드리고 싶다.


오늘 오후에는 엄마가 가족 단톡방에 거실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주방에 있던 식탁이, 거실의 전면창문 앞으로 옮겨져 창밖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셋이 다같이 밥 먹는 날도 거의 없으니 엄마 혼자 창밖 풍경을 보며 식사를 즐기겠다는 것이었다. 사진을 잠시 '...' 보다가 답장을 썼다. 응 그래 잘했어.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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