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얼굴의 비결은 비혼일지도?

아파트의 다정한 경비할아버지와의 추억

by 김씰리


마흔을 향해 가고 있지만 운 좋게도 이렇다 할 결혼 압박을 받아본 적이 없다. 결혼-출산-이혼 트리플크라운 유경험자인 부모님들은 모두 '네가 언젠가 원하면 그때 가라. 갔다가 와도 좋다.' 라 하였다. 프리랜서인 나에겐 언제 국수 먹여줄 것이냐 들들 볶는 꼰대부장 같은 존재도 없다. 내가 일하는 필드에는 비혼이나 돌싱이 부지기수이기에 그런 질문을 주고받는 것이 때로는 더 어색하다.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여자가 얼른 시집가서 아이를 낳아야지!!' 라 외친 이는 바로

나의 작업실 아파트의 경비할아버지이다.


그는 우리 아파트의 맥가이버로서 늘 공구박스를 들고 다니며 전구를 갈거나 무언가를 고치고 있다. 한 번은 우리집 현관 전구가 나가서 드라이버를 빌리러 갔는데 직접 달아주시겠다고 하여 당황했다. 그는 사람을 아주 빤히 쳐다보는 습관이 있다. 흔치 않은, 무해한 눈빛을 간직한 노인이(라고 나는 느낀)다. 결국 그는 사다리까지 가져와 이것은 우리 아파트에서 쓰는 '특별한' 전구라는 귀여운 선심을 쓰며 손수 전구를 갈아주고 가셨다. 그 전구는 각 층 복도를 24시간 밝히는 것이어서 아무리 스위치를 올렸다 내려도 꺼지지 않았다. 정확히 어떤 알고리즘인지 모르겠으나 그 전구는 내 집 현관에서는 센서등 역할을 하지 못한 채 48시간 가량 꺼지지 않고 나의 수면을 방해하다가 영원히 꺼졌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나 친할아버지가 없던 나는 그의 그 다정한 오지랖을 좋아한다.


어느날엔 마감을 하다가 꼬르륵 소리와 함께 '짜파게티' 네 글자만이 머릿속에 가득차서 마감을 위해 써야 할 다른 글자들이 몽땅 짜파게티에 묻혀버렸다. 입고 있던 치마잠옷에 외투만 대충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채 뛰쳐나가 편의점에서 짜파게티 1개를 사서 소중히 품에 들고 돌아왔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경비할아버지와 만났다. 오랜만의 조우였다. 해맑게 꾸벅 인사하니 그는 그날도 특유의 무해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이어서 내 품의 짜파게티를 잠시 빤히 보더니 말을 걸었다.

"애들 맥이려나 보는구만~?"

애...들? 이라 함은 혹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의 자녀들...?!

"아뇽. 제가 먹을 껀데요?"

"응? 아직 애가 없어?"

"녜. 애도 없고 남편도 없어요."

우리집 현관까지 들어와 전구를 갈아주셨지만 그는 매일 다른 집들에도 그런 호의들을 베풀 것이므로 그의 기억에 남아있을 리 없었다. 할아버지에겐 오직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눈앞에 보이는, 파자마 슬리퍼 떡진머리 몰골로 오후에 집에 있는 나는, 영락없이 가사육아에 매진 중인 가정주부였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호..??" 놀라며 한번더 나를 훑어보더니 "왜 아직 결혼을 안했어?"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물어보셨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와 함께 올라타며 대답했다.

"저는 결혼 생각이 없어서여."

"허어...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안한다고 하더니만은.. 그래도 애를 낳아야 나라가 사는데."

"제가 사는 게 더 중요해서 헤헿"

"요즘은 애 낳으면 나라에서 돈도 많이 준다는데!"

"요즘은 애 키우는 데 그거보다 돈이 훨씬 더 많이 든다던데여??"

타이밍 좋게 우리집 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폴짝 내리며 꾸벅 인사하자, 체념한 미소의 할아버지 위로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릉~ 닫혔다.


드라마나 예능에서만 보던 결혼 출산 참견을 실제로 당하다니. 삼십대 후반에 이 클리셰를 처음으로 직접 접한 나는 너무나 흥미롭고 신이 났다. 하지만 이내 한편으론 침울해졌다. 내가 운이 좋았을 뿐, 내 주변의 다른 여성들은 매일 숨 쉬듯 이 빻은 질문들을 견디며 살아온 것이구나.


공무원인 내 친구는 몹시 엘리트라서 야근이 잦았다. 20대 후반의 어느 날에도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다른 남자 선배 역시 본인의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퇴근하며 그 사무실 앞을 지나가던 어느 직급 높은 어르신이 그 광경을 보더니, 남자 선배를 향해 단호히 '그만 퇴근하라'라고 명령했단다.

나중에 알게 된 이유인즉슨, 미혼인 남녀 직원 단둘이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있으면 괜한 소문이 돈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근 10년 전 일이라 요즘의 분위기는 어떨지 모르겠다.) 내 친구는 늬들이 시킨 일을 늦게까지 했을 뿐인데 그딴 소리나 듣는 게 열이 받았다. 내 더러워서 결혼하고 만다!! 라는 심정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서른을 코앞에 두고 결혼했다.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으로 결정한 결혼은 아니었고 아들을 낳은 뒤에도 복직해서 엘리트 공무원으로서 여전히 잘 산다. 하지만 그 에피소드는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결혼 생각이라곤 해본 적 없이 바람처럼 살던 한 언니는 운명의 짝을 만나 결혼했다. 언니의 남편은 늘 고요하고 한결같아 그녀의 사나운 파도같은 마음에 닻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부다.

두 사람은 결혼하자마자 사방에서 출산의 압력을 받았다. 압력은 한귀듣 한귀흘하며 살다가 자연스레 아들이 생겼다. 외동아들은 외로우니 어서 둘째를 낳으라는 압력이 이어졌다. 고단한 육아 속에 역시 한귀듣 한귀흘하며 살다가 둘째가 생겼다. 아들 둘을 낳으니 이번에는 딸... 까지 이어져 언니는 귀를 막았다.

그녀는 '엄마 놀아줘' 라고 구슬프게 울며 양 다리에 매달리는 아들들을 겨우 달랜 뒤, 엄마가 된 뒤에도 여전히 꿈을 먹고 사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글을 쓰러 작업실로 향한다. 이렇게 쓰고 나니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늘 생각한다. 왜 다들 타인의 상태에 눈을 밝히고 참견의 개소리를 뱉지 않고는 견디질 못하는 걸까.

그럴 시간에 왜 스스로의 상태를 돌아보고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걸까.


최근에 또 다시 오랜만에 경비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아침루틴으로 집 근처 흡연공간에서 담배를 두 대 때리고 귀환하는 길이었다. 역시 파자마에 슬리퍼 차림이었지만 그날은 씻은 상태였던 것 같다. 꾸벅! 인사를 하니 할아버지는 역시나 무해한 눈으로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얼굴이 차암 맑네."


나는 더욱 맑아보이게 활짝 웃으며 "감사합니당~!" 하곤 돌아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제 얼굴이 맑은 비결은 맨날 먹던 맥주를 끊은 것과... 자유로운 비혼이기 때문 아닐까여?


이렇게 비혼으로서 겨우겨우 맑은 얼굴을 건사하며 살아가는 나이기에, 결혼-육아-일까지 하면서 얼굴까지 맑은 인생 선배님들을 몹시 존경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좋아하는 걸 말할 때 찬물 끼얹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