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출신의 서울살이
내게 서울은 블랙홀 같았다. 나는 유학생이자 고학생이었다. 요즘도 고학생이란 말을 쓰는지 모르겠어서 설명을 보태면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충당하기 위해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학생이란 의미다. 직장인이 되니 본업이 돈벌이이고 벌이의 규모도 커져서 다소간 살 만해지긴 한 건 사실이나, 좌우지간 나를 먹히고 입히는 일은 상당히 어려우니 과제만 바뀌었을 뿐 고학생이나 마찬가지로 바쁜 처지는 여전하다.
아르바이트, 공부(일)을 하다 보면 고향에는 몇 달에 한번 꼴로 겨우 내려가게 된다. <삼포 가는 길>에서 다루는 고향 만큼은 아니지만 애틋함이 있기 때문에 톨게이트를 지나는 순간 자연히 무장해제 되고, 게다가 서울에서와 달리 식사를 차리는 일과 빨래가 없는 간결한 일상을 보내게 되니 해방감도 있다. 다만 몸이 가벼운 만큼 시간도 빠르게 흐르는 건지 금방 다시 떠날 시간이 된다. 고향을 떠나기 싫어 뭉그적대다 미룰 만큼 미뤄서 오후 늦게 버스를 타면 깊은 바다 속에 잠긴 듯한 밤이 되어 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에 진입하려면 올림픽 대교를 꼭 건너게 되는데, 그 때마다 생각했다. 주변의 빛과 질량을 강제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내가 원해서 서울에 자리를 잡은 듯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지 않을까.
존재를 안 지는 1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가사의한 블랙홀처럼, 서울에 산 기간이 서울에 살지 않은 기간과 비슷해져 가는 이 시점에도 서울은 계속 낯설었고 그래서 그게 너무 어려웠다. 별은 없이 하늘만 있는 밤이 처음이었고 노을이 차는 거리를 보는 날이 특별한 하루가 되는 이 곳은, 사계절을 몇 번 돌고 통장에 찍히는 월급 숫자가 수차례 바뀌었지만 여전히 어렵다. 낯설지 않은 것은 한강에 놓여진 다리 이름들, 지하철 역 순서 뿐.
작가 르 클레지오는 서울이 “상상력이 풍부해 이야기가 많이 탄생하는 도시”라고 했지만, 글쎄.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 아닐까 한다. 하한선이 있는 학력, 어차피 팍팍한데 자꾸만 많고 적음을 평가 받는 연봉, 벌통 같은 아파트로 수렴되는 이야기들은 단편이 아니라 <헝거 게임>과 같은 시리즈물이라 서울에 거주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삐끗하면 사건의 지평선을 넘게 된다. 노래만큼 달콤하지 않다.
빨려 들지 않기 위해서 견디다 보니 성한 손톱 하나 없지만 이 곳 서울은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흡입력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죽고 싶었던 순간들만 모아서 다시 살고 싶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비관과 낙관이 뗄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서울의 한가운데서 이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된 계기를 획득한 것도 순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포에서 성수동까지 한강을 따라 이십칠킬로를 달린 어느 주말이었다. 그 날은 설탕이 잔뜩 묻은 도넛 같은 햇살이 자꾸 확장해 금방이라도 온 지구에 봄이 가득 찰 것 같았다. 어떤 방해와 횡포 없이 매끄럽게 뻗은 길을 달리니 서울이 다르게 보였다. 다리를 지나칠 때마다 이름을 곱씹어 보고, 바깥 풍경을 보고 ‘여기는 어느 지하철 역이겠군’ 짐작해보며 놀듯이 뛰었다. 노란 햇빛을 받은 아파트는 꿀을 잔뜩 머금은 것 같았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잠시 착란에 빠지기도 했다.
삶을 꾸려나가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이 서울이니, 잘 사는 법 내지 효율적으로 사는 법을 터득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기능적인 인간을 자연스레 페르소나로 삼게 된다. 나 역시 그 중에 한 명이었을 터다. 잘 사는 법은 정답이 없는 것이라 변수를 당연하게 여기고 적응하기 위해 기름칠하고 손 보면서 계속 작동해야 한다. 나는 어림잡아 지지 않는 여기에 지쳤던 게 아닐까. 뭐 하나 당연한 것 없는 서울.
서울에 대한 나의 감상이 달리기의 효능이라면 그것도 맞는 말이고, 봄이라서 기분이 설렁인 것이라 해도 그것도 맞는 말이다. 내 다리와 호흡을 컨트롤해 목표 지점까지 달렸으니 성취감과 러너스 하이를 기대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꽃을 금방 내던지는 벚나무라도 까칠한 겨울을 잘 견딘 자에겐 당연히 기대되는 법이다. 그건 바뀌지 않는 것들이다. 유장한 우주의 시간에서 블랙홀이 뱉어낸 자원들로 생명을 유지하는 질서도 있는 법이고, 그건 바뀌지 않는 섭리다.
그렇다. 그렇게 당연한 것들 바뀌지 않는 것들이 나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