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없는 퇴사를 할 용기
“다음 주에 퇴사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직장인이 아닌 삶을 살거에요”
퇴사를 앞두고 이렇게 말하는 날들이 많아진다. 매우 홀가분하다. 2015년 2월에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2025년 4월 중단한다. 여기서 중지와 중단 중 무엇을 써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중지는 잠시 멈췄지만 이내 재개할 여지를 담고 있는 용어이고 중단은 그럴 여지가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말하고 또 묻는다.
“용기 있는 선택이에요”,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났어요?”
용기. 입으로 소리내서 말하기에 부끄러운 단어 중 하나다. 우주의 적을 물리치는 선가드에게 어울리는 말이면서,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신 분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 무탈, 자족을 추구해온 소시민이 소화하기엔 선한 마음과 의지의 함량이 지나치게 높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계획 없는 퇴사’가 용기 있는 행동이라니, 새삼 내가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나?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였나, 가족들과 동해바다로 휴가를 갔었다. 그때까지 수영을 할 줄 몰라서 물에서 논 기억이 없었다. 아빠는 아들이 물 밖에서만 노는게 안쓰러웠는지 수영을 가르치겠다는 결심을 하셨다.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 가운데 암석이 있었고 맞은 편에 또 다른 암석이 하나 더 있었다. 두 암석의 거리가 10m 정도. 아빠의 방법은 하나의 암석에 나를 데려다 놓고 아빠는 맞은 편 암석으로 가서 건너오라고 독려하는 것이었다. 그 곳을 벗어나고 싶으면 아빠에게 가야만 했다. 그러니까 물과 친숙해지기, 몸을 띄우기와 같은 중간 과정은 모두 생략했다. 바닷물에 대한 이물감과 낯섦을 생존 본능으로 압도해버리는 아빠 식의 이이제이 전술이었다.
그래서 그 날의 기억은 이렇다. 어쩔 줄 몰라 내내 울어서 눈 앞이 흐릿 했었던 장면, 수영인지 발버둥인지 모르지만 세차게 팔을 휘저은 기억, 파도 포말이 얼굴에 부딪혀 부숴진 장면, 바닷물을 꿀꺽했던 느낌. 그 날 날 바다로 떠민 건 용기였을까, 무모였을까.
이런 적도 있다. 고등학교 1학년 한국지리 수업시간이었다. 누군가의 휴대폰 진동소리가 지루한 수업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그때는 휴대폰 사용은 물론 소지하는 것조차 금지하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한심하단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야? 나와라”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사를 시작했다. 수업도 잊은채. 대충 느낌만으로 함부로 수사망을 좁히셨다. 나도 포함됐다. 하지만 그는 좁힌 수사망이 무색하게 허공에 대고 독백을 시작했다. 수신자는 명확하지 않지만 상처 받는 사람이 있는 독백. “한심한 작자들”, “연애질 하려고 학교 오냐”, “부모님이 땡볕에 농사 짓고 얼마 안되는 돈 벌어서 학교 보내 놨더니 딴 짓 하냐”. 기발하지 않은가. 휴대폰 울림을 연애와 연결시키는 상상력, 사춘기 학생의 자존심을 건드는 무례함까지. 그에게 휴대폰 진동소리는 학생들을 함부로 대할 좋은 기회이니 상상력을 발휘해보라는 지령이었던 걸까. 마침 그 때의 나는 휴대폰이 없었기 때문에 떳떳했었고, 온 몸의 세포들이 화약고인 전기뱀장어이기도 했었다.
“그것들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냥 누구인지만 빨리 찾으면 되는거 아니에요?”
일단 터뜨렸고 내 얼굴도 터졌다. 그에게 뺨을 여덟 대를 맞으면서 고개가 돌아가지 않도록 빳빳하게 힘을 줬고, 엎드려 뻗쳐를 한참 하고 있었는데 휴대폰 주인인 친구가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내 행동은 사춘기의 반항이었을까, 용기 였을까.
나는 높은 곳을 매우 무서워한다. 누군가가 출렁다리에 올라간 모습만 봐도 손에 땀이 난다. 그런 나를 놀린다고 얼마면 번지 점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질문을 받는다. 얼마면 재입대 할래? 라는 질문만큼 많이 받았다. 가만히 상상해본다. 50만원이면 안 뛰고 안 받을테다. 대신 100만원이면 눈 꼭 감고 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내 용기는 100만원 짜리 인가. 우리 고양이가 저 아래 강 위에서 울고 있다면 고민 없이 뛰어 내릴 것이다.
책임감을 가지는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같이 산지 꼭 10년이 된 고양이 친구가 있다. 길 위에서 처음 만난 후 세번의 이사와 두번의 이직을 했다. 생활의 틀이 바뀔 때마다 이 친구의 루틴을 많이 고려했다. 이 친구도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맞춰서 살고 있다. 이전에는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고양이의 습성도 잘 몰랐다. 함께 살기로 한 첫 날, 길 생활에서 쌓인 피로와 묵은 때를 따뜻한 물로 조심스레 씻기고 말려주었다. 잘 준비를 하자 나의 가슴팍 위에 올라왔다. 겨울바람 안에서는 위태롭게만 보였던 작은 몸. 거기서 느껴지는 중량은 도리어 날 안심하게 했다. 다 좋았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르렁- 그르렁-. 입은 다물고 있고 눈은 의식을 잃어가는 환자처럼 자꾸만 가물거리는 상황, 너무 무서웠었다. 손을 떨면서 여자친구에게 이 긴급한 소식을 알리고 검색을 빠르게 시작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말투만 봐도 밥을 달라는 건지, 안아달라는 건지 다 안다. 강이 흙을 밀어내 육지를 만드는 것처럼 시간이 쌓는 힘은 대단하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운명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흐르는 시간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나와 내 고양이가 그런 것처럼. 그럼에도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반려동물에게 떼어 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잘 몰라서 미안하다고 지겹게 고백해야 하고, 너무 좋은 계절에 여행을 참는 노력 같은. 우리 고양이는 내 용기를 도시락 삼아 매일을 즐거운 소풍처럼 지내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용기란 말을 손에 쥐고 차츰차츰 어른이 되었고 어쩌면 놓친 적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반복해서 나에게 붙어있었다는 건 그것 자체로 어떤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믿게 된다. 비록 나의 용기는 압력밥솥의 쌀알처럼 뜨겁고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형태는 아니지만, 겨울이 끝나야 할 때 나타나 세상을 데우는 봄볕과 같다. 봄볕이라니, 에피소드에서 본 난항과 달리 너무 달콤하기만한가. 적절한 비유는 뭘까. 질문은 삶 자체를 초과하면 안되고 삶은 내러티브와는 다르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물어보면, 대출. 늘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필요할 때 어디에선가 잔뜩 ‘땡겨’받는 대출. 적절해보인다.
대출과 용기. 모두 사용에 따른 결과를 온전히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미숙해서 손해를 보는 사람이기도 했고 과감해서 가치를 얻는 사람이기도 했다. 용기 그 자체로는 어떠한 셈도 치를 수 없다. 사용할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필요해야 효용이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도 대출과 비슷하다. 필요에 따라 나의 마음가짐과 생활 양식에 팔할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미래의 나를 저당 잡히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초점은 용기를 대출 받아서 ‘획득하는 무엇’에 있다. ‘무엇’이 주는 설레임과 만족감의 규모가 용기를 대출받게 한다. 나는 영원히 수영을 할 수 있게 됐고 소중한 가족과 함께 하게 됐다. 이번 이직 없는 퇴사도 마찬가지다. “기대되는 미래”를 얻기 위해 용기를 대출 받아서 사용한다.
직장인으로 살 때는 앞날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가 없었다. 때가 되면 목표를 세우고, 디테일은 다르지만 같은 방법론을 사용하는 업무를 진행하고 연말에 성과를 평가하고, 할만 하지만 괜히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날들. 그렇게 상반기와 비슷한 하반기, 똑같은 거푸집에서 찍어낸 올해와 내년. 그래서 내가 삶에서 기대한 유일한 이벤트는 퇴직 후의 삶이었다.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닌 시간, 내가 기다린 가장 빠른 이벤트.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삶을 닫고 다른 삶을 살기로 결정을 하자, 당장 몇달 후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동안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애써 묻어뒀던 경험들로 나의 창고를 채울 꿈을 꾸고 있다. 지루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다른 경험을 모으면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고 직장인이라는 견고했던 바닥이 아니니 당연히 불안정 수도 있다. 하지만 꿈에서 떨어지면 키가 자란다고 하지 않나. 나는 그 불안을 먹고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이런 마음을 너무 꾹꾹 눌러쓴 나머지 내 표정과 기분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리하여 나에게 묻는 여러명의 사람에게 똑같이 대답한다.
“대출 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