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꽤 큰 변화를 가져오고 그 속에서 나는.
이번 주말에는 비와 돌풍 예보가 있었다. 날씨예보를 보고 이제 벚나무가 꽃을 내던지는 시간구나 생각했다. 다음 계절이 너무 금방 도래한다. 기간이 너무 짧다. 모든 꽃망울이 빠짐없이 다 꽃으로 폈을까, 못 핀 꽃은 없을까. 겨울 눈은 꽃이 대체하고 꽃은 또 비가 대신하고 비를 녹음이, 다음은 낙엽이 그리고 다시 눈이. 동네는, 도시는 항상 변해야 하고 채워진 상태를 유지한다. 마치 변하지 않거나 비워져 있는 상태가 태업인 것 마냥. 도시가 그러하니 그 속의 자연도 사람도 응당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날씨는 선언문이다.
퇴사와 많은 변화를 나란히 두고 지켜본다. 일반적인 경로를 이탈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질서주의자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더 복잡한 변화에 자발적으로 뛰어 들었으니까. 또독또독. 예정대로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빗소리가 아주 세차다. 한 생명력을 배제하기 위해선 더 강한 생명력이 있어야 하는걸까. 창 밖을 보니 벚꽃잎이 아직 매달려 있다. 만약 비가 오고 무더위가 찾아온 날에도 벚꽃이 계속 만개해있다면.
되려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 동네는 벚나무가 하천을 따라 수 킬로 미터 이어져 있다. 그 시작점은 지하철역으로, 역을 빠져 나오자마자 하늘을 빼곡하게 메운 벚꽃을 볼 수 있다. 설국의 첫문장처럼, 어떤 이미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하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품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계절을 보낸다. 봄에 가까워 질수록 기억은 빵처럼 점점 더 부풀어 오른다. 고소한 냄새를 쫓아 사람들은 다시 이 곳에 도착한다. 벚꽃이 만개한 동네에는 동네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 낯선 동네로 기꺼이 발길을 향하는 사람들. 낯선 동네엔 내 고향 동네도 있다. 익숙했지만 이제는 낯설어진 동네. 그 곳에도 긴 길을 따라 벚나무가 도열해있다. 이 맘 때 방문하면 절경을 볼 수 있다.
난 이 사실을 몇 해 전에 알았다. 돌풍 예보가 있었던 날, 점심을 먹고 잠시 걸을까 싶어서 엄마에게 천변 가는 길을 물었다. 오분여 정도 걸어 도착한 그곳엔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처럼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시선이 흐릿해지고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휘날렸다. 바람이 내 부피를 깎아냈고 마침내 피부와 근육이 모두 해체되어 함께 흩뿌려지는 것 같았다. 처음 가본 길에서 처음 겪은 경험, 이 기억을 품고 다시 이 낯선 동네를 찾곤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명물이었고 여전히 지역 축제가 열려 가장 활기를 띄는 곳이다. 엄마 말로는, 그 길은 원래 있었지만 엄마가 나를 데려간 적이 없어서 몰랐을 거라고 하셨다.
어린 시절의 내가 세상을 발견하는 방식은 ‘엄마의 손’이었다. 엄마가 쥐어준 돈을 가지고 슈퍼로 심부름을 다녀오거나 엄마와 가방을 나눠 메고 외할머니 댁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식으로. 낯설지만 안전하게. 서울의 지하철을 타는 법도 엄마에게 배웠다. 대학 수시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처음 지하철을 타게 됐다. 가방은 내가 전부 들었고 엄마는 표를 끊고 게이트를 통과하는 법을 시범을 보이셨었다. 그 때 지하철은 하루에 서너 차례만 오는 시골버스와 다르게 수시로 오고 멀미도 안 나서 참 좋다고 생각했었다. 여전히 지도앱에서 경로를 검색하면 ‘지하철’로 가는 법을 가장 먼저 살펴본다.
그리고 서울에 대한 두려움도 지하철이 조금은 상쇄해주었다. 하루에 똑같은 사람을 여러 차례 마주치게 되는, 이미 작은데 그 마저도 더 응축되고 있는 ‘시내’가 있는 시골과 달리 서울은 우주 상수가 있어 자꾸 팽창하는 도시이지 않나. 미묘한 긴장감을 자꾸 유발하는 이 도시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도와줄 이 없는 밤길을 정처없이 헤매게 될 스스로에 대한 미래완료형 연민에 눌려있었다. 자꾸만 변하는 서울이 무서웠다. 물리적인 넓이만큼 낯선 것도 많았다. 낯선 게 당연하지만, 그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이 사람과 돈, 일자리 무엇이든 흡수하는 서울이 정작 맞이할 준비는 안되어있다는 사실이 이 도시를 더 멀리하게 만들었었다. 학교 가는 시간만 빼고는 집에만 머물렀다. 수많은 것들과 어울릴 자신이 없었다. 집에만 있다면 서울 사는 대학생이 되어버린 나에게만 적응하면 됐기 때문이다. 내 세상은 집이었다.
‘세상은 문 밖에 있다’라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광고 카피를 봤을 때, 통찰력에 대한 감탄보다 대학생 시절의 기억이 앞섰다. 생활인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집을 나섰다. 집에서 한번 환승하면 되는 곳에 있는 과외 학생, 집에서 다섯개의 역 이동 후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던 호프집 알바, 대외활동 모임을 위해 집에서 두번 환승 후 도착한 강남역 11번 출구. 문을 나서야 하는 내게 지하철은 거리를 재는 단위이기도 했지만, 바깥에 머물더라도 언제든 집으로 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엄마의 손이기도 했다. 지하철역에 집요하게 붙어있으려고 했다. 밀착. 밀착 마크, 밀착 경호. 떨어지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 빈틈없이 붙어있으려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 서울은 평생을 다 써도 다 가볼 수 없을 면적, 막상 간다고 해서 들어가볼 수 없는 위계가 있는 망망한 곳이었다. 반면 지하철 역은 마음만 먹으면 다 가볼 수 있으니까 1호선의 모든 역을 다 내려본 선배도 있었으니까. 고정돼있으니까. 노선도만 꼭 쥐고 있다면 그래서 지하철만 탈 수 있다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차를 타고 지하철이 닿지 않는 곳을 다니기도 하고 한강의 다리 순서도 저절로 외우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사를 하고 직장을 옮길 때마다 근처에 무슨 역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 한다. 외출을 할 때도 마찬가지. 지하철을 애용하며 긴 세월을 살았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역이 더 많다. 낯선 동네들. 고향의 천변 같은 곳. 그 곳들의 벚꽃도 여전히 잘 매달려 있을까.
변하지 않는 것들만 있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농촌 동네에 새집이 늘어나고 흙길이 포장될 수록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고목나무처럼. 변하는 것들 사이에 있다 보니 연속적인 무엇을 발견하게 된 것일지도. 꽃이 나뭇가지에 못 마냥 박히는 4월에 대설 특보라니, 정말 많은 것이 변한다. 그 변화를 많이 관찰하고 겪는다. 직장을 따라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 노선이 바뀌고 조용하거나 시끄러운 동료가 바뀐다. 성취와 지루함이, 실패와 만족이 교차하면서 나를 오간다. 퇴사를 앞둔 밤엔 기대와 불안감이 낮까지, 다음 달의 낮까지 이어진다. 이 시간을 잘 견디는 것이 사회인의 윤리일 수도 있는데, 확실한 건 이런 시간을 견디는 내성이 반복과 숙련에서 오지 않는다. 사실 너무 일상적인 이 사실을 견딘다고 정의해버리는 건 너무 애석한 생각같다.
그냥 연속적인 무엇이 생각난 것이다. 가보지 않은 어느 곳에서도 꽃이 있고 지하철이 다닌다는 사실. 그런 변하지 않는다는 상태와 시간의 멈춤이 주는 무거운 안전감이, 내 몸 속 어디쯤에 중심추로 자리해 덜 흔들리게 해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