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는 왜 숟가락을 못 빨아?"

일상에서의 재미!

by 효라빠

교도소에서의 하루가 끝나갈 즈음 손목의 시계를 들여다본다. 교도소에서 하루를 보냈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건 없다. 나는 교도관이기 때문이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의 짧은바늘은 숫자 6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피곤하던 정신과 육체가 교도소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인지 서서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거기에 맞춰 핸드폰에 카톡이 온다. '드르륵~' 거리며 핸드폰이 몸을 부르르 떤다. 카톡을 열어보니 와이프다.

별 내용은 없다. 아니 별 내용이 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이 있듯 먹고살자고 보낸 카톡이라 별 내용이라고 해야겠다.

짧고 굵은 내용의 카톡이다.


"저녁에 뭐 먹지?"

"글쎄~"

"오늘은 시켜서 먹을 거니까 먹고 싶은 거 있음 말해봐?"

"나는 아무거나 좋으니까 애들 잘 먹을만한 거로 시켜"

"애들도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데"

"그럼 자기 먹고 싶은 거 시켜"

"알았어. 그럼 매운 걸로 시킨다?"

"알아서 해. 뭐 시킬 건데?"

"몰라..... 일단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주문할 테니까, 빨리 와"


나는 메뉴에 특별한 관심이 없다. 나는 미각이 없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 우리 엄마 말씀이 '너 같은 애들은 열명도 키우겠다' 할 정도로 주는 대로 잘 먹고 무던하게 잘 자랐다.

그 영향 때문 인지 성인이 돼서도 주는 대로 잘 먹는다.

아~ 한 가지 빠트린 게 있다. '매운 거만 빼고......' 아예 못 먹는 건 아니지만 매운 음식은 잘 못 먹는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매운맛을 생각하자 혀에 침이 고이고 알싸함이 느껴지는 거 같다.

그래도 꾸역꾸역 다 먹는다. 나는 아무거나 잘 먹기 때문에..... 킥킥킥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와있다.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와이프한테 물었다.


"뭐 시켰어?"

"응. 매운 애호박 돼지 찌개 시켰어! 자기 퇴근 시간에 맞춰 주문했으니 금방 올 거야. 빨리 씻어"

"매..... 매운...... 돼지 찌개?..... 무슨 맛으로 시켰어?"

"응. 자기 생각해서 약한 맛!"

'매운 돼지 찌개. 약한 맛!' 그 말을 듣자 다시금 입안에 시큼한 침이 고였다. 그러면서 심장이 '쿵' 하는 느낌도 들었다.

약한 맛인데 왜 그리 호들갑이냐 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 집은 정말 매운 집이다. 매운맛의 강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3단계다. 약한 맛, 보통맛, 매운맛.

약한 맛이 내가 느끼기엔 매운맛이고, 보통맛은 죽기 전의 맛이고, 매운맛은 죽을 맛이다.

오늘 저녁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아서 시키라는 카톡 메시지가 떠오르자 아무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딩동! 딩동! 딩동!'

매운 놈이 도착했다. 돼지 찌개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그냥 매운 놈이다. 현관에 놓여있는 하얀색 비닐봉지를 특수요원이 폭발물 옮기듯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놓는다.

아이들은 어차피 자기들이 못 먹을 줄 아니까 다른 음식으로 배를 채운 상태다.

매듭으로 묶어있는 비닐봉지를 열었다. 역시 열자마자 코끝에 매운 고추의 향이 알싸하게 느껴진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특공대의 폭발물 제거 대원이 된 기분이다. 이 매운 놈은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다. 몇 분후면 내 입에서 폭발을 할 것이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그래. 한번 부딪쳐 보자!' 음식을 먹기 전 다짐부터 한다.


"아씨~ 배고파 죽겠는데 뭘 그리 꾸물거려!"

"엉~ 그래 그래......"


와이프의 한마디에 깜짝 놀래 서둘러 음식 포장을 열었다. 와이프는 매운 걸 좋아한다. 배도 고프고 빨리 먹어야 하는데 혼자 진지한 표정으로 비닐포장을 잡고 심각해져 있어서 짜증이 났나 보다.

'아휴~ 괜히 한 대 맞을 뻔했네.....' 꾸물거린다고 한소리 들었지만 거기서 끝난 거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것도 잠시 매운 애호박 돼지 찌개의 냄새가 나의 뇌리를 자극한다.

배 속의 위장이란 놈은 매운맛을 모르는지 계속 밥 달라고 '꼬르륵~ 꼬르륵~' 칭얼거린다.

내 마음도 몰라주는 위장이 왠지 괘씸하게 느껴진다. '그래. 너도 한번 당해봐라~' 금방 넣어줄게. 복수의 마음으로 매운 애호박 돼지 찌개를 뜨거운 흰쌀밥 위에 한 숟갈 떠 올렸다.

뜨거운 밥에 매운 돼지 찌개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냥 폭발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숟가락으로 흰쌀밥과 잘 섞이게 살살 오솔오솔 비빈다. 비주얼은 아주 맛있어 보인다.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오물.....' 배가 고팠는지 맛있었다.

'어! 맛이 조금 약해졌나~ 먹을만하네!' 첫 숟가락인지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아니 맛있었다. 꼬르륵 거리며 계속 칭얼대던 위장이란 놈도 조용히 음미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자기야~ 이 집 주방장이 바뀌었나 봐?"

"왜?"

"저번보다 많이 덜 매운 거 같은데..... 나도 먹을만하네!"

"그래? 잘 됐다. 그럼 앞으로 자주 시켜도 되겠다. 하하"

"자..... 잠깐..... 만...... 아~~~ 안 되겠어!"


신호가 왔다. 그 돼지 찌개 폭발물은 바로 터지는 폭탄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야 터지는 시한폭탄이었다. 갑자기 혓바닥이 얼얼해지며 이마에 땀이 흐리기 시작했다. 그 땀의 발원지는 머리의 한가운데 정수리라고 불리는 곳이다. 매운 걸 먹으면 신기하게 정수리에서 땀이 폭발하는 듯하다. 정수리에서 뿜어져 나온 땀들이 이마를 거쳐 볼을 타고 흘러내려 주룩주룩 흐른다. 휴지로 닦아도 소용이 없다. 땀들은 턱에 모여 식탁 위로 떨어져 방울방울 모여있다. 흡사 토란잎에 아침 이슬방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이미 혀는 마비되어 있다.

'하~ 하~ 하~' 격한 호흡과 입안에 있어야 할 혀는 입 밖으로 나와 들어가지 못한다.

8월 찜통더위에 처마 밑에서 축 늘어진 늙은 개가 혓바닥을 내놓고 숨을 헐떡 거리듯 나도 그 개 마냥 숨을 헐떡거리며 정신을 못 차린다. 식탁 끝 정수기 옆에 앉은 큰아이에게 조난 신호를 보낸다.


"헉~ 헉~ 효은아...... 아빠...... 물! 물! 물!"

"싫은데!"


시크하다.

역시 중2병 소녀답다.

"진짜.... 장난 아니야! 물! 물! 물!"

"얼마 줄 건데?"

"으~~~~~~ 3천 원!"

"지금 갖고 와!"

"야!!!!"

"알았어. 킥킥킥. 이따가 꼭 3천 원 줘야 해?"

"응응...... 플리스~~~~"

"자~~~ 물 마셔!"

"응. 고마워~~~"


간신히 시원한 물로 화마를 잠재웠다. 입은 매워 죽겠는데 위장이란 놈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는지 더 넣어 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나도 먹고살아야 해서 할 수 없이 숟가락으로 또 뜨거운 돼지 찌개란 놈을 떠서 흰쌀밥 위에 올렸다. 숟가락의 돼지 찌개를 흰쌀밥 위에 덜고 나니 숟가락 위에 소량의 국물과 건더기가 붙어있다.

찌게나 양념으로 밥을 비벼 먹어 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냄비에서 덜은 후 숟가락에 묻은 양념과 붙어있는 건더기는 밥을 비비기 전 입으로 한번 빨아주는 것이 국 룰이다.

그게 진정 음식을 대하는 자세고 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나도 예외일 순 없다.

숟가락에 묻은 양념을 빨려고 하는데 주춤거린다. 빨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숟가락을 잡고 있는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그건 의식적인 주춤 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항거였다. 살기 위한 오른손의 저항이었다.

갑자기 건너편에 앉아있던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가 나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아빠! 아빠는 왜 숟가락을 못 빨아?"

"어? 어?"


갑자기 빵 터졌다.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이고, 숟가락을 빨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을......

저녁 식탁에 앉아 매운 애호박 돼지 찌개 가 묻은 숟가락을 빨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하! 하! 하!

그 상황이 우스워 웃음이 쉴 새 없이 터졌다. 입은 맵지 웃기기는 하지 얼마나 웃었는지 눈에는 눈물까지 흘렸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데 '악~~~' 갑자기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음식을 먹던 손에 매운 돼지 찌개 국물이 묻어있었나 보다. 그게 눈에 들어갔는지 눈이 엄청나게 따가웠다. 진퇴양난이었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와~ 돌아 버리겠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중2병을 앓고 있는 큰 아이에게 다시 구조요청을 했다.


"효은아~~~ 아빠~ 수건 좀 갔다 줘!"

"싫은데!!! 수건은 5천 원!"

"콜~ 콜~ 콜~ 으아~"


중2병 아이의 '싫은데~' 만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고 그렇게 힘들었던 저녁 시간은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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