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피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워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이제부터는 아이들과 행복한 전쟁의 시작이다. 중학교 다니는 큰아이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아이는 나를 찾는다. 원래는 '언니~ 언니~'하면서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지만 언니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공부할 시간이 많아져 같이 놀아줄 시간이 없기 때문에 둘째의 놀잇감은 내가 된다. 언니가 공부한다고 못 놀아주는 그때부터는 둘째의 입에서 '아빠~ 아빠~'가 흘러나온다. 그렇게 놀아주다 둘째가 자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나의 하루 일과는 끝이 난다.
빠라밤~~~ 빠라밤~~~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다.
오늘은 필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책과 노트와 만년필을 꺼낸다. 그리고 필사하는 동안 낮의 피곤함을 잊게 해주는 음악을 듣기 위해 핸드폰과 블루투스 이어폰을 준비한다. 나는 주로 발라드를 듣는다.
깊은 밤 잔잔한 발라드 음악과 책은 내 마음의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핸드폰 바탕화면에 깔린 유튜브를 손으로 클릭하자 평소에 듣는 음악이 메인 화면에 올라온다. 가수 이문세의 노래가 보인다. 나는 이문세나 김광석 등 조금은 옛날 노래를 좋아한다.
당연히 중2병에 걸린 큰아이는 역시 아빠는 옛날 사람이라고 놀린다. 그래도 나는 오래된 노래가 좋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스마트폰에 연동시키고 이어폰을 귀에 꼽는다. 평소에 자주 들어서 인지 유튜브에 자동으로 올라와 있는 이문세의 노래를 터치한다.
'옛사랑'이라는 노래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온다. 원목 책상의 부드러운 감촉이 팔에 느껴지고 귀에서는 잔잔한 추억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마음이 평온해진다.
어두운 서재를 밝히는 스탠드 불빛이 오늘따라 애처롭게 보인다. 눈을 감고 노래를 음미해 본다. 노래에 빠져든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게 참 기분이 좋다.
감았던 눈을 뜨고 만년필의 뚜껑을 열고 노트를 펼친다. 펼쳐진 노트에서 마지막 필사 한 곳을 찾아 만년필로 태백산맥 소설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종이에 만년필 촉이 미끄러져 나가는 사각사각 소리가 이문세 님의 '옛사랑'이라는 노래와 너무 잘 어울린다.
야심한 밤의 이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고요히 혼자만의 시간을 느끼고 있는데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옆의 의자에 앉는다.
중2병을 앓고 있는 큰 아이다.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아이의 가녀린 팔이 닺는 느낌이 참 좋다.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중2병 소녀라고 항상 이상(?)하지만은 않다. 가끔은 이렇게 친근한 딸이 되기도 한다.
"아빠! 뭐해? 또 필사해?"
"응. 필사하지"
"귀에 이어폰이야? 음악 들어?"
"응. 아빠가 좋아하는 음악 듣지"
"또 꼰대 음악 듣는 거 아냐?"
그러면서 한쪽의 이어폰을 빼서 자기 귀에 꼽는다.
"어! 옛날 노래 같은데 들을 만 한데......"
"그렇지?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야. 아빠가 첨부터 다시 틀게?"
"그래. 첨부터 들어보자"
이문세의 '옛사랑'을 첨부터 다시 틀었다.
유튜브 영상이라 이문세 님의 노래 부르는 모습과 그 밑에는 노래 가사가 나온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 빈 하늘 밑 불빛들 켜져 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큰아이가 좋다고 하자 나도 기분이 좋아져 자연스럽게 영상에 나오는 가사를 보며 첫 소절을 따라 불렀다.
"남 드으을 도~~~ 모오오르게~~~ 서성이다 울었찌이 이~~~"
"아빠! 죽고 싶지 않으면 따라 부르지 마!"
"흠흠~~~~ 그.... 그래....."
나는 음치다. 아니 박치다. 아니다. 음치 박치다. 이문세 아저씨는 정말 저음으로 멋지게 부르는데 왜 내입에서는 그렇게 나오지 않을까. 정말 신기한 일이다.
큰아이의 타박에 도저히 반박을 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냥 중2 사춘기 딸아이와 깊은 밤 같이 앉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좋았다.
평상시에 대화를 하기도 쉽지 않은데 같은 음악으로 부녀간에 공감을 갖는다는 거로도 매우 흥분됐다. 그렇게 몇 분 동안 큰아이와 공감의 시간을 가졌다.
음악이 끝나갈 무렵 아이는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 스마트폰에 영상을 유심히 쳐다봤다.
영상에서는 이문세 님이 진솔하게 '옛사랑'이라는 노래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큰아이는 자신의 귀를 만족시켜주는 자기가 말하던 옛날 가수가 신기했는지 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아빠?"
"응?"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말해봐!"
"근데. 이 사람 살아 있어?"
"뭐?"
"옛날 노래 부르는 이 사람 살아 있냐고?"
"하하하..... 당연히 살아있지. 야~ 너, 너무한 거 아냐? 아무리 아빠가 오래된 노래 듣는다고 너무한다!"
"뭘! 너무해.... 살아있으면 됐지~ 킥킥킥"
부녀 지간의 깊은 밤 음악 감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살아있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서 가수 이문세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길게 하지도 않았는데 내 말에 시크한 중2병 소녀는 꼽고 있던 이어폰의 한쪽을 빼고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나 졸려 잘래..... 또 꼰대 소리 할 거지...... 아빠! 잘 자~~~~"
"그래. 잘 자라..... 다음에 너 BTS 인지 BST인지 노래 들을 때 보자!!!"
'문세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딸을 잘못 키웠습니다. 흑흑흑'
깊은 밤 내 마음의 안식은 가슴에 금이 가는 상처를 남기고 끝이 났지만 큰아이와 같은 노래를 들었던 기쁨은 가슴 한편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나를 보며 진지하게 했던 '이 사람 살아있어?' 이 말은 생각할수록 웃기네. 킥킥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