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걸 좋아하거나 글을 잘 쓰지도 못하면서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나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 나처럼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거나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 학창 시절이나 어린 시절 책을 좋아하거나 글쓰기를 즐겼던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의 부류였다.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을 해보 적도 없었고 아니 글쓰기 대회 자체를 나가 본 적이 없었고 국어수업시간이나 작문시간에 선생님께서 글쓰기를 시키면 일단 머리부터 싸잡는 스타일이었다.
그렇다고 책을 좋아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나눠주는 교재 말고는 책을 읽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하고 뛰어노는 게 마냥 즐거웠고 중, 고등학교 때는 흔한 소설책 한 권 읽지 않았다.
그냥 책과 담을 쌓고 살았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책을 즐기게 된 계기가 있었다.
서른 살 무렵이었던 거 같다. 우연히 시립 도서관을 들렸다. 책장에 꽂혀있던 검은 바탕에 붉은 글자로 쓰인 '太白山脈'이라는 한자가 눈에 띄었다. 제목부터 무척 인상 깊었다.
'태백산맥? 무슨 내용인데 10권이나 될까? 산과 관련된 소설인가?'
호기심에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빼들었다.
촘촘히 적힌 글씨에 무거운 이야기들이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지만 선채로 앞에 몇 장을 읽었다.
내용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뒤의 내용들이 궁금해졌다. 1권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다. 한 장 한 장 읽어 가는데 나는 어느 순간 책에 빠져들어 있었다.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에게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박진감 있고 사실적인 스토리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태백산맥을 읽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책과 함께하며 졸음이 와 눈꺼풀이 못 참고 내려올 땐 책을 읽지 못하고 잠을 자야 하는 마음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한 권이 끝나고 다음 권으로 넘어갈 때 읽을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하지 못해 바로 읽을 수 없을 때는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10권이라는 소설을 짧은 기간에 다 읽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는 이제는 더 읽을 수 없다는 아쉬움에 가슴 한쪽이 허전하기도 했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책이 재밌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대하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그 뒤로 아리랑, 한강을 바로 읽었다. 역시 조정래 선생님은 나를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세 편의 대하소설을 읽으며 역사와 이념 그리고 조국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태백산맥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 후 대하소설의 매력을 알게 됐고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웬만한 대하소설은 거의 다 읽었다.
(장길산, 임꺽정, 혼불, 토지, 등등)
그 후로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하면서 독서를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신간 책이 나오면 궁금해지고 책이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던 중 불현듯 글쓰기가 하고 싶어진 것이다.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글을 써본 적이 있어야지 말이다. 글쓰기 책을 몇 권읽어 보니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
많이 읽고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쓸데없는 생각은 많이 하는 거 같았다. ㅎㅎ
글을 잘 쓰기 위해 책을 많이 읽기로 했다.
'1년에 100권 읽을까? 아니야.... 200권? 무슨 책부터 읽을까? 그래 일단 나에게 책의 맛을 알게 해 준 태백산맥을 다시 읽어보자!'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책장에서 먼지를 입고 꽂혀 있던 태백산맥을 꺼냈다. 읽은 지 오래돼서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은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다시 읽기 전에 조정래 선생님이 태백산맥을 집필하면서 느꼈을 고뇌와 고통의 과정을 느껴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벌교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을 가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차를 몰아 벌교로 달렸다.
몇 번 가봤던 곳이라 어렵지 않게 찾아갔다. 문학관을 둘러보며 작가의 열정과 혼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깜짝 놀랄만한 것을 보게 됐다.
'이건 뭐지! 그전엔 없었는데......' 자세히 보니 전국 각지에서 책을 읽고 감동받은 독자들이 책을 필사한 노트와 원고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옆에는 더 채워 넣을 곳으로 보이는 빈자리도 몇 개 보였다.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빈자리에 내 이름이 들어간 필사본을 채워 보자......'
조정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다.'
'100번 읽는 거보다 한번 필사하는 게 좋다'라고 말이다.
필사를 시작하면서 나의 고난의 행군도 시작됐다.
문구점에서 노트를 구입하고 읽어 두려고 꺼내 두었던 태백산맥 10권을 세웠다.
이걸 언제 다 베끼지 하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1권만 남기고 나머지는 도로 넣었다.
그래 작가님은 이 소설을 직접 생각하며 쓰셨는데 거기에 비하면 이건 일도 아니지. 한번 시작해 보자.
필사가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으니까 필사하면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님의 글쓰기 방법과 생각을 느껴보는 거야.
노트를 펼치고 펜을 잡고 나의 필사는 시작됐다.
필사는 집에서 아이들이 잠든 밤 시간에 했다. 생각보다 필사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는 몇 년이 걸릴지 몰랐다. 책과 노트를 가방에 담아 회사에 출근하면서 챙겨갔다. 회사에서도 시간만 나면 책상에 앉아 필사를 했다.
나는 교도관이다. 근무지에서도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틈틈이 필사를 했다.
업무가 우선이기 때문에 많은 진도를 나가지 못했지만 중간중간 짬이 날 때마다 하는 필사량도 무시 못했다. 담당실에 앉아서 틈틈이 필사를 할 때면 나와 친분이 있는 수용자들은 소설책으로 공부하는 줄 알고 호기심에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수용자가 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순간의 실수로 죄를 짓고 들어와 수용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청년이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듯 이 친구도 운동을 좋아해 그전에도 서로 사적인 대화도 주고받고 나를 많이 따르던 수용자였다. 내가 필사하는 걸 보더니 이것저것 물어봤다.
'필사가 무엇입니까?'
'왜, 필사를 합니까?'
'태백산맥은 어떤 책입니까?'
'필사를 하면 뭐가 좋습니까?'
나는 그 친구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진심으로 하나하나 성실하게 답변을 해줬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많은 생각을 하는 거 같았다. 필사를 하지는 않더라도 책을 많이 읽어 보라고 권했다.
"내가 너에게 삶이나 인생의 스승이 되어줄 수 없지만, 책은 분명히 네가 새로운 길을 가는데 길잡이가 되어주고 너의 스승이 되어 줄 거다"라고 말을 해줬다.
내 말을 유심히 듣고 잘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몇 주가 지나 그 수용자를 또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를 부르더니 밝은 모습으로 책과 노트를 건넸다.
"김 주임님! 저도 주임님 말씀 듣고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 하하하 무슨 책인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데미안입니다."
"그래. 잘했다. 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한 장 한 장 힘들게 베끼면서 마지막까지 끝내 노력하면 된다는 결과를 느껴봐라! 그러다 보면 책은 너의 마음속에 들어가 있을 거야~ "
"네. 알겠습니다. 주임님!"
그 수용자는 필사한 지 이제 1주일 정도 지난 거 같다.
내가 작년 9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태백산맥 여덟 권을 필사하면서 느꼈던 가장 흐뭇한 순간이었다.
이제 남은 두 권을 다 끝내 전 10권을 필사해 '태백산맥 문학권'에 전시하는 것도 큰 만족과 기쁨이겠지만 필사를 통해서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책에서 인생의 길을 찾는다면 그건 정말 뿌듯할 거란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젊은 청년의 새로운 앞 길을 열어준다고 하면 말이다.
나는 아직도 글을 잘 쓰지 못하고 필사도 다 끝내지 못했지만 팔이 아프게 1시간 동안 필사해 봐야 책 2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 분량을 보면서 서서히 나의 글쓰기 실력은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수용자도 필사를 통해 책에서 인생의 길을 찾고 조금씩 써나가는 필사가 한 장이 되고 두 장이 되어 책 한 권이 되듯 그 친구의 인생을 시나브로 바꿔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