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다.

내 인생 하나의 업적.

by 효라빠

오늘 2년 동안 해오던 조정래 선생님의 소설 [태백산맥] 필사를 끝냈다.

처음부터 태백산맥 필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나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고 밤에 잠드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재밌게 봤던 소설 태백산맥을 다시 한번 읽어 볼 생각이었다.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글을 쓰고 싶은데 미천한 내 글씨기 실력 때문이었다. 보통 글 쓰는 걸 좋아하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유년시절부터 책과 친했거나 글쓰기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의 경우였다. 어렸을 때나 학창 시절에 문학청년도 아니었고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좋았다. 그렇게 책과 담 아닌 담을 쌓고 살다가 20대 후반에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책을 우연히 도서관에서 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읽으려고 했던 건 대하소설이 10권인 줄 모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그만큼 책과 친하지 않았다. 어찌어찌하여 태백산맥이라는 책을 펼쳤는데 책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20대의 피 끓는 청춘은 빨치산이라는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삶에 깊이 빠져 들었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재밌게 책을 봤다. 10권이라는 긴 분량을 순식간에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장편 소설에 빠져 들었고 책을 읽는다는 게 즐거운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날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웃겼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왜냐하면 중고등학교 때 국어나 작문 시간에 글 쓰는 게 제일 싫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도 변한다고 했던가 어느 날 글이 쓰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게 지금은 실력이 안되지만 지금부터 실력을 쌓으면 10년 후에는 멋진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 10년 뒤를 위해 내공을 쌓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기로 했다. 제일 먼저 읽을 책으로 뽑은 게 나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했던 소설 태백산맥이었다.

책꽂이 한쪽 구석에 먼지 쌓여있던 태백산맥을 꺼내어 읽으려는데 갑자기 보성 벌교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이 떠올랐다. 몇 년 전에 가보았던 기억이 있었고, 한 번 더 다녀온다면 태백산맥을 다시 읽는 데 큰 자극을 줄 거 같았다.

시간을 내어 벌교에 [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았다. 그 전과 변한 건 많이 없었지만 새로운 부스가 생겨있었다.

그건 다름 아니라 독자들이 필사한 태백산맥 필사본을 전시하는 곳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놀라움에 심장이 뛰었다. '10권이나 되는 전권을 어떻게 다 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도 나름 조정래 선생님을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그분의 책을 대부분 읽었지만, 이분들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빙 둘러서 돌아보는데 빈자리가 몇 개 보였다. 그곳은 다음 기증자를 위한 자리였다. 그곳을 보는데 욕심이 생겼다.

'저 자리는 내 자리다!' 그 빈 곳에 내 이름으로 된 필사본을 넣고 싶었다. 바로 집으로 돌아와 노트를 사고 필사를 시작했다. 필사가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더 힘들었다.

한 시간 동안 집중해서 해봐야 1~2장 밖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처음엔 '이걸 언제 다하나~' 하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읽기나 할 걸 괜히 시작했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이미 아이들과 와이프에게 필사를 한다고 큰소리를 쳤기 때문에 포기 하기에도 한 발 늦은 격이었다. 하는 수 없이 묵묵히 하다 보니 1권을 끝이 났다. 대략 한 달 반이 걸렸다. 신기했다. '이게 끝이 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니 2권, 3권이 지났고 어는덧 10권에 와 있었다. 그러면서 시간은 2020년에서 2021년으로 연도도 바뀌어 있었다. 그 필사를 오늘 끝낸 것이다.


조정래 선생님은 지금도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원고를 쓰신다고 하셨다. 필사를 하면서 손이 아프고 어깨가 뭉치며, 엉덩이가 아플 땐 작가님을 생각했다. 단순히 베끼는 필사도 이렇게 힘든데 창작까지 하시는 선생님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필사를 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작가님의 마음을 읽는 것이었다.

작가님이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진정으로 더 받아들이고 싶었다.

선생님은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라고 하셨던 것처럼 진정한 정독을 통해서 선생님의 마음을 알고자 하였다.

그래서인지 소설이 말하는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가 더 가음에 와 닺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위에 적었듯 처음 필사를 하려고 했던 이유가 글쓰기 실력을 키우기 위한 거였는데 그 점은 정말 많은 영향을 준듯하다.

필사하는 틈틈이 [나는 15년 차 교도관]이라는 글을 브런치에 연재했는데 이제는 조금 있으면 전자책으로 출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사를 처음 했을 때와 나중의 글들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확실히 문장이 좋아졌고 문장의 길이도 길어진 게 사실이다. 필사 덕분에 10년 후에 책 출간을 예상했는데 1년 만에 책을 출간하게 됐으니 말이다.


주로 집에서 시간 나는 데로 필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도 노력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영향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필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도 추천을 했지만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아빠, 꼰데처럼 왜 이래? 고생하려면 혼자 해~"라는 말도 들었지만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아닌 거 같아도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킥킥.


회사(교도소)에 출근해서도 노트와 책과 만년필은 꼭 챙겼다. 쉬는 시간과 여유시간만 있으면 필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필사를 하고 있는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수용자가 다가와 질문을 했다.

"주임님. 뭐하세요?"

"응. 필사하고 있어."

"필사요? 필사가 뭔데요?"

"응. 책을 그대로 베끼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책을 그대로 베끼고 있어"

"아~ 그러시군요. 왜 하시는 거예요?"

"이런 이런 이유야~"

"그러시구나. 저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 20대 초반의 수용자도 나를 따라 본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데미안' 이란 책을 필사를 했다. 두 달이 넘는 기간 필사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았으며 주임님을 존경하게 됐다는 말까지 했다. 내가 단순하게 하는 필사가 어느 한 사람의 인생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힘이 들었지만 그 젊은 수용자를 보면서 또 한 번 시작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이유로 시작했던 태백산맥 필사를 드디어 끝마치게 되었다.

솔직히 지긋지긋하던 필사를 끝내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날아갈 거 같은 기분이 들 줄 알았다. 날아갈 거 같은 기분은 들지만 속이 시원하지는 않다. 왠지 모르게 공허하다.

지금 기분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몇 년 동안 애절하게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한 기분이다.

만년필을 잡고 필사를 해야 할 노트가 없어졌고 매일 들고 다니던 가방이 없어서 인지 손이 너무 허전하다.

사랑하는 그녀의 손을 이제는 더 이상 잡을 수 없었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다.

필사하는 중에 속으로 대뇌 었던 건 너무 힘든 나머지 '한 번만 하고 이번 생에 절대 다시는 안 한다!' 였는데 사랑의 상처는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된다고 했던가 자꾸 손이 끄적이고 싶고 다른 책에 눈이 돌아간다.


아무튼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옆에서 사랑하는 연인처럼 항상 붙어 다녔던 태백산맥 필사를 끝낸 건 내 인생에 하나의 업적인 건 사실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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