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조정래 선생님 만나다.)

by 효라빠

태백산맥을 필사하면서 지치고 힘이 들 때마다 필사를 끝내고 조정래 선생님을 뵐 거라는 마음으로 펜을 놓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건 나 만의 생각이었다. 이 정도의 팬심이면 혹시나 만나주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그 믿음이 드디어 실현되었다.

저번 주 토요일과 일요일 (11월 20일, 21일)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개관 13주년 기념식과 필사자 감사패 전달식이 있었다.

태백산맥 필사를 끝내고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서 좋은 기운이 나를 따르고 다닌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10권의 필사를 끝낸날은 11월 10일이다. 남은 분량이 적지 않았지만 10일까지 잠 안 자고 끝냈던 이유는 11월 11일부터 2박 3일로 진천 법무연수원에서 '교도관 유도 교육'이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필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가면 교육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 거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1월 10일 날 죽기 살기로 필사를 끝내고 벌교의 [태백산맥 문화관]에 전화를 걸었다.

필사본은 전시를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기증을 하고 싶다는 전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전화를 받은 담당자가 내가 필사를 끝냈다고 하자 서둘러 내 인적 사항과 연락처를 물었다.

왜 그리 급하게 묻느냐고 하자 '11월 21일' 날은 코로나로 인해 지금까지 하지 못한 감사패 전달식이 있다고 했다.

지금 감사패를 제작하고 있는데 오늘 연락을 한 나 까지만 해당될 거라는 말이었다. 하루만 늦었어도 내년 이맘때 감사패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정말 운 좋게 참석할 거란 뜻이었다.

11월 21일 날 행사가 있는지도 몰랐고, 내가 그날까지 끝내야 참석 가능하다는 것도 몰랐는데 그렇게 날짜를 딱 맞춘 게 신기하기만 했다.

전화를 끊고 바로 근무표를 확인했다. 교도관은 주말에도 쉴 수 없는 직업이라 행사나 중요한 일이 잡히면 근무표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근무표를 확인하니 운 좋게 그날은 토요일 야간 근무였다. 야간은 오후에 들어가 아침에 퇴근을 하니 토요일, 일요일 주간에는 시간이 되었다.

또 놀랬다. 그렇게 시간이 맞추기도 쉽지 않은데 나를 위해 날을 잡은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담당자는 기념식 전날인 토요일에는 조정래 선생님과 함께 하는 [조정래 작가와 떠나는 문학기행]을 한다는 것이었다. 전세버스로 이동하면서 진행되는 행사인데 마감이 되어 자리는 없지만 필사자님께서 참석하고 싶다면 개인차로 오셔도 좋다고 하셨다. 필사자님이라 비공식적으로 말씀드린다고 했다.

나는 조정래 선생님을 뵙는 거라 당연히 제 차로 가겠다고 했다. 약속을 잡고 행사날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 일주일 전쯤 행사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선착순으로 미리 접수한 분 중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을 못하시는 분이 있어서 필사자님이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운 좋게 기념식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신기하게 또 운이 따라 주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20일(토요일) 조정래 선생님과 함께 하는 문학기행은 아침 10시로 시간이 잡혀 있었다.

문학관 앞 주차장에서 모여 선생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문학관 옆의 '현부잣집'을 시작으로 소화의 집, 중도방죽, 김범우의 집, 벌교 금융조합 등등 소설 속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를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했다.

작가에게 직접 태백산맥의 창작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듣자 머리에 쏙쏙 들어오며 작가가 저런 깊은 의도까지 있었다는 걸 새롭게 느꼈고 글을 쓸 때는 저 정도로 고민하고 사고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의 문학기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오후 4시에 야간 근무 출근을 했다.

출근해서도 내일(21일 일요일) 있을 '개관 13주년 기념식과 감사패 전달식' 그리고 선생님과의 '북 토크' 생각때문일이 집중 되지 않았다.

야간 근무를 설레는 마음으로 끝내고 아침에 퇴근 후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가족들과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출발했다.

아이들은 오후에 학원 수업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기념식과 감사패 전달식만 보고 가기로 했다. 나는 오후 3시에 있는 북 토크까지 참석하기 위해 와이프와 차를 따로 가지고 갔다.


문학관에 도착하자 단상과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조정래 선생님, 보성군수님, 해냄출판사 대표님등으로 해서 지역 유지들이 많이 참석해 있었다. 작은 행사인 줄 알았는데 행사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식전 공연으로 성악가와 통기타 가수, 색소폰 연주자 등등 화려한 공연도 펼쳐졌다.

귀빈 인사가 끝나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감사패 전달식이 있었다.

나는 내가 마지막 필사자라 끝에서 받을 줄 알았는데 행사 관계자가 제일 앞으로 오라고 했다.

맨 먼저 받는 나부터 3명씩 끊어 조정래 선생님, 보성군수님, 해냄 출판사 대표님 이런 식으로 3명씩 감사패를 수여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장 늦게 필사본을 기증했지만 운 좋게 제일 먼저 조정래 선생님께 감사패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 사회자의 멘트를 들어보니 이름순으로 한다는 거였다. 내가 김 씨라 맨 앞이었다. 하하하 여기서 또 운이 터졌다.

감사패를 받고 악수를 하고 보통 제자리로 가는데 내가 선생님께 '한번 안아보고 싶습니다'라고 했더니 조금 당황하셨지만 흔쾌히 안아 주셨다. ㅎㅎㅎ

행사를 끝내고 3시부터는 문학관 안에서 북 토크가 있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북 토크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님이신 임헌영 평론가님과 조정래 선생님이 함께 하는 북 토크를 했다. 두 분의 입담이 얼마나 좋은지 야간 근무를 하고 피곤한 몸이었지만 전혀 졸리지 않고 재밌게 봤다.

북 토크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선생님께 하고 싶은 질문이 있어 사회자를 보며 조용히 손을 들었다. 내가 마지막 질문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필사를 시작하였고 필사하는 도중에 틈틈이 교도관에 관해서 쓴 글이 조만간 전자책으로 출간하게 된다는 내용과 교도관으로서 필사를 하면서 나를 보고 교도소의 수용자까지 필사를 하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해 새로운 사람이 되는데 기여했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하고 환호를 질렀다.

조정래 선생님도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떤 아주머니는 복 토크가 끝나고 내 옆으로 오셔서 교도관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어떻게 필사를 하면서 책도 내고 수용자까지 바꿀 수 있냐고 하면서 교도소의 수용자 이야기를 더 물어봤다. 내가 자세히 설명을 하자 눈물까지 글썽이셨다.


마지막에 내 운이 한번 더 터졌다. 조정래 선생님의 부인이신 김초혜 시인님도 북 토크에 참석해 계셨다.

시인님도 내 말을 들으셨던지 나에게 오셔서 '이렇게 멋진 분이 그런 대단한 일을 하셨냐'라고 하면서 칭찬을 해주셨다.

조용히 나에게 명함을 달라고 하셨다. 아침 일찍 급히 출발하느라 명함을 준비를 못했다고 하자 메모지에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주라고 하셨다.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시인님께서 나에게 책을 보내 주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에게 오셔서 직접 택배로 책을 보내주신다고 하니 이게 꿈인지 사실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메모지에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 드리며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조정래 선생님을 뵌 것 만으로 운수가 좋은 날인데 하나도 하니고 몇 개의 운수가 대통한 이틀간의 날은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었다.

집에 돌아와 선물 받은 감사패를 몇 번이고 읽어 내려가며 힘들었지만 필사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나의 노력에 하늘이 보답이라도 하듯 연신 신기한 일만 일어난 그날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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