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피 저축은행 김선수 (효라빠 장편소설) 1회.

by 효라빠

'드르륵~ 드르륵~' 책상 위의 스마트폰이 몸을 부르르 떨듯 진동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스마트폰의 주인 김선수는 컴퓨터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가로운 백수 김선수는 대낮부터 찾는 사람이 없으므로 당연히 스팸문자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게임에 집중하며 키보드를 누르고 있던 검지 손가락을 잽싸게 옮겨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었다. 성의 없이 손가락을 까닥 거리며 스마트폰의 패턴을 풀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게임에서 총을 쏴야 할 검지 손가락이 스마트폰 위에 올려져 있는 게 짜증이 나는 듯했다.

'아우~ 씨' 하는 소리가 입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오며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김선수 지원자님 면접 합격을 축하합니다. 5월 12일 월요일 자로 첨부 파일의 서류를 지참하여 해피 저축은행 본점으로 출근하시기 바랍니다. -해피 저축은행 총무과-]


'합격이라고!' 김선수의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믿기지가 않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문자를 확인했다. 다시 봐도 합격 문자였다.

'으아~ 합격이다! 드디어 내 인생에도 합격이 찾아왔다!' 머리에 헤드폰이 끼워진 줄도 모르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환호인지 괴성인지 모르는 소리를 질렀다. 3년 동안 죽어라 공부했던 공무원 시험의 합격은 아니지만 대학 합격 이후 딱 10년 만에 받아보는 합격 소식이었다.

헤드폰 줄이 머리에 걸려 줄다리기하듯 팽팽해져도 소리를 지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정신없이 헤드폰을 내팽개쳐 버리고 거실로 나가기 위해 문을 당겼다.

'쿵!'

'으악!!!'

김 선수의 머리인지, 얼굴인지 모르는 애매한 곳에서 묵직한 '쿵' 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도 따끔한 고통을 품고 있는 비명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아~~~~ 아~ 어..... 엄... 마..... 나 합격했데......"

힘겨운 신음소리가 합격이라는 인생 일대의 흥분과 함께 김 선수의 입에서 비명을 지르듯 흘러나왔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냐? 그런데 선수야 니 입술에서 피가 흐른다! 옴메 어쩌야 쓰까?"

전 여사는 그 몰골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오려고 했으나 차마 아들이라 웃음을 삼켰다.

선수는 비틀거리며 턱을 움켜 잡았다.

턱을 움켜 잡은 손으로 입술의 피를 닦았다. 피는 흘렀지만 목소리에는 개선장군 같은 힘이 느껴졌다.

"엄마, 괜찮아. 살짝 부딪친 거 같아. 아~~~"

"살짝이 아닌 거 같은데..... 선수야 입술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아냐. 괜찮아. 엄마! 나 저번에 면접 본데 있잖아. 해피 저축은행. 거기 합격했다고 방금 문자 왔어. 12일 월요일부터 출근하래. 하하하"

"아~~~ 그래? 정말 잘됐다. 공무원 시험 떨어지고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는 너를 볼 때마다 속이 터졌는데 아이고 다행이다. 잘됐다. 이제 사람 구실 좀 하려나보다."

선수의 어머니 전 여사는 합격소식에 김선수보다 더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합격 소식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방울 고이는 듯했다.

"누나하고 성수한테도 말해줘라. 아버지한테는 저녁때 말씀드리고"

"네. 바로 전화할게요."

선수는 하던 게임은 잊어버린 듯 바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김선수는 지방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 노량진 고시학원에서 공무원 시험공부를 몇 년 했고, 몇 번의 고배를 마셨다.

그동안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을 접고 지방의 집으로 내려와 취업을 하기로 부모님과 합의를 봤다. 합의라고 하지만 본인의 일방적인 포기 선언이었다. 자식이긴 부모 없다고 선수의 부모들은 속이 썩어 문 드러 졌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선수의 누나 예린은 결혼을 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다. 동생 김성수는 선수가 노량진에서 내려옴과 동시에 본인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운동회에서 400mm 계주 바턴 터치를 하듯 자연스럽게 교대를 했다.


지방대를 나와 취업하기가 쉽지 않고, 취업해도 좋은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 대학 같은 과의 동기들은 대부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당연한 코스처럼 졸업 후에는 도서관이나 고시학원으로 들어갔다. 간혹 대학 졸업하기도 전에 학원으로 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김선수가 매번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처음 받아 본 합격 소식이었다.

선수의 나이는 이제 서른, 짧지만은 않은 30살 인생을 살면서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합격 소식이었다. 그 합격 소식이 너무 반가워 입술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입술의 고통뿐만 아니라 합격이라는 문자메시지도 믿기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이 집안의 장손 김선수가 사회인으로서 첫 출근을 하는 날이 왔다.

주방에서는 기차가 나팔을 불 듯 '뿌~~~ 우~~~ 뿌~ 우~~~'하는 소리가 가스레인지 위 압력 밥 솥에서 엄마의 사랑처럼 뿜어져 나왔다. 선수의 엄마 전 여사가 분주하고 민첩한 행동으로 밥을 차리고 있었다.

전 여사는 그동안 고시원 방값에, 학원비에 많은 돈을 해 먹고 내려온 아들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제2금융권이라고는 하지만 은행에 취직한 게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그런 마음으로 아들이 첫 출근하는 날 따뜻한 밥을 해 먹이고 싶었다.


"선수야~ 일어나야지! 오늘 첫 출근 한다고 하지 않았어?"

"네. 일어났어요. 지금 씻고 있어요. 엄마 빨리 밥 주세요. 첫날부터 지각하면 찍히니까. 빨리 가야 해요"

"그러니까. 누가 어젯밤에 늦게 자라고 했어? 일찍 자라고 해도 말 안 듣고 늦게 자더니. 또 게임했냐? 그놈의 게임은 돈도 안 나오는데 징하게 한다. 밥 차려 놨으니까 빨리 밥 먹어!"

"게임 안 했어요. 첫 출근하니까 설레서 잠이 안 온 거라고요!"

둘의 말만 들어서는 티격태격하는 거 같았지만 그 속에서는 사랑이라는 따스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김선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아침 잠이 많아 늦잠 자느라 지각을 자주해 교문에서 벌을 받은 전력이 수두룩했다. 사회인으로 첫 직장 출근하는 날부터 그런 불상사가 생기기 않도록 알람을 기상시간 전부터 10분 간격으로 5개를 설정하고 잠이 들었다. 다행히 알람의 효과인지 늦잠은 자지 않고 눈을 뜰 수 있었다.


안방 문이 스르륵 열리고 김선수의 아버지 김 선생이 잠 옷 바람으로 나왔다. 김 선생은 35년가량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정년퇴직을 한 지 이제 2년이 조금 지났다.

연금을 받고 생활하면서 집 근처 초등학교의 학교 보안관으로 하루 반나절을 출근하며 한가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본인은 학교 보안관으로 '안전 지킴이'이라고 써진 노란 조끼에 카우보이 모자 비슷한 창이 넓은 모자를 쓰고 출근하는 걸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 듯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다.


"아니~ 자네는 정신이 있는 가~ 없는 가~ 선수가 오늘 첫 출근 하면 일찍 깨워서 밥도 먹이고 해야지, 첫날부터 이렇게 서두르게 만든가!"

"아니. 내가 뭘 했다고 그래요? 당신은 잠이나 더 자지 왜 나와서 시끄럽게 하고 그래요!"

"방에서 듣고 있는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갈 거 같은 분위기여서 그런 거 아닌가?"

"당신이 나와서 큰소리친다고 도움 되는 거 하나도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아니, 이 사람이 뭔 말만 하면 말대꾸하고 그러네. 꽉! 진짜! 말을 하면 들을 생각을 해야지, 시방 이것이 뭐시여!"

선수의 어머니 전 여사와 아버지 김 선생 사이에는 금방 싸움이라도 할 거 같은 기세로 말이 오고 갔다.


"아빠! 아~ 그만 하세요! 제가 씻느라 밥을 늦게 먹어서 그런 거지 엄마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지금 나가도 지각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그렇지 오늘 같은 날이면 일찍 준비해서 보내야지, 참나~ 하는 거 하고는~~~"


김 선생은 무릎이 튀어나온 추리닝 바지를 배꼽 위에 까지 추켜올리고 구시렁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슬아슬하게 똥꼬에 낀 나이키 바지는 아들 김선수가 입다가 버리려고 하는 걸, 왜 버리냐고 본인이 집에서 입겠다고 한 체육복 바지였다.

아들이 입던 옷이라 바지 길이가 길어서 인지 인정사정없이 추켜올린 바지가 안쓰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김 선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선수는 우습지만 짠한 마음으로 식탁에서 전 여사가 끓인 쇠고기 뭇국에 밥을 말아 삼켰다.

김 선생은 방으로 들어가서도 뭐가 못 마땅한지 혼자서 구시렁구시렁 대고 있었다.

주방에서 식탁을 정리하던 전 여사는 동네 개가 짓나 하는 표정으로 신경도 쓰지 않고 아들에게 밥을 천천히 먹으라고 얘기했다.

"아이고, 우리 아들 오랜만에 양복에 넥타이 메니 인물이 사네. 하하하. 누가 낳았는지 몰라도 멋지구먼. 하하하"

"엄마, 이 정도면 쫌 멋지긴 하지? 킥킥킥"

"쫌, 멋지냐! 겁나게 멋지다. 하하하. 출근할 때 운전 조심해서 가. 출근해서 직장 상사들 말 잘 듣고."

"네. 그럴게요."

"아버지, 저 다녀올게요!"

김선수가 전 여사와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방안에 있는 김 선생에게 출근 인사를 했다.

아들의 출근 인사에 김 선생이 문을 열며 모습을 나타냈다.

"응. 그래. 선수야, 회사 가면 인사 잘해야 한다. 인사만 잘해도 사회생활에서 70점은 먹고 들어간다. 신규직원이고 막내니까 뭐든지 먼저 움직이고, 선배들이 질문하면 바로바로 대답 잘하고, 거 머시냐! 잘 모르겠어도 무조건 고개 끄덕끄덕 하면서 알았다고 해. 알겠냐?"

"네. 그럴게요."

"거시기, 또 그러고 운전 조심하고 들떠서 신호 위반하지 말고. 알았지?"

"네. 네. 네. 아버지, 저 이만 출근할게요. 들어가세요."

아들의 전광석화와 같은 신속한 대답에 무안해진 김 선생은 배꼽까지 올린 무릎이 나온 추리닝 바지에 두 손을 찔러 넣고 고개를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선수가 아버지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서둘로 대답한 이유가 있었다. 김 선생의 평소 습관이 또 나올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평생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김 선생은 무슨 말을 하든 길게 풀어서 설명하듯이 대화를 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몇 번을 반복했다. 술이라도 한잔 한 날에는 얘기가 끝날 줄을 몰랐다.

선수는 아버지의 그런 직업병을 끔찍하게 두려워했다. 어렸을 때부터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김 선생이 말을 하려고 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 네'라는 대답이 먼저 나왔다.

김 선생은 무 자르 듯한 아들의 짧은 대답이 말을 빨리 끝내라는 뜻인 줄 잘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한번 나온 말은 전투에서 '드르륵~ 드르륵~' 갈기며 나오는 기관총이 되어 쉽게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듯 풀어서 설명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말을 다 한 거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인 전 여사는 말을 아예 중간에서 잘라 버리는 걸 느꼈다. 그나마 아들은 김 선생의 말을 다 들어줬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듣기 싫다는 것처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 네. 네'라는 대답을 연신 해댔다.

그럴 때면 김 선생은 '흠~흠~' 헛기침을 해대며 못 이긴 척 말을 마무리 했다. 그리곤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워 늙어 이빨 빠진 동물원의 호랑이처럼 축 늘어져 티브이 채널을 힘없이 돌렸다.

그의 말을 유일하게 들어주는 건 소리만 나오는 티브이 밖에 없는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