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이 은영 했네! (2)

해피 저축은행 김선수(효라빠 장편 소설 9회)

by 효라빠

'삐삐 삐삐~ 삐삐 삐삐~~~' 은영의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어제의 피로 때문인지 은영은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잠결에 스마트폰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삐삐 삐삐~~~ 삐삐 삐삐~~~' 5분 뒤 알람이 다시 울렸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지만 은영은 뒤척이기만 할 뿐 일어나지 못했다.

"조은영! 회사 출근 안 할 거야?"

"응~ 가야지~~~"

"그럼 빨리 일어나! 너 늦으면 안 데려다준다. 택시를 타든 버스를 타든 알아서 해!"

"몇 신데?"

"니 눈으로 똑똑히 봐봐, 지금 몇 신지!"

출근 준비를 끝낸 효경이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 안에서 뒤척이고 있는 은영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침 출근시간에는 효경이 은영을 해피 저축은행까지 데려다주고 출근을 했기 때문이었다. 은영이 늦으면 효경도 지각할 수 있었다.

"우와~ 큰일 났다! 아니 늦었으면 깨워주지 그랬어? 자기만 준비하는 게 어딨어! 정말"

"아침부터 얘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너를 몇 번이나 깨웠는데. 너 늦으면 안 데려다 줄 거니까 빨리해. 저번에 너 때문에 나까지 지각한 거 알고 있지? "

"알았어, 알았어...... 빨리 할게"

은영은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했다. 다행히 머리는 밤에 감고 자서 안 감아도 될 거 같았다.

'아~ 맞다! 오늘은 어제 언니한테 빌린 사복 입고 출근하지! 어떡해~ 어떡해~'

은영이 옷걸이에 걸린 치마 정장을 바라봤다. 평상시에는 유니폼을 입고 출근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야 그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서둘러 핸드백에 물건들을 대충 집어넣고 옷을 입기 시작했다.

평소에 자주 입지 않던 투피스 정장이라 입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치마를 입고 블라우스 위에 재킷만 걸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입으려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 맞아, 맞아...... 스타킹l!!!'

"언니! 팬티스타킹 있어? 빨리 하나만 빌려줘. "

"야~ 너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 출근해야 하는데 지금 그걸 달라면 어떡해. 어휴~ 저 덜렁이. 미치겠네 정말.

야~ 빨리 신어, 나 내려가서 차 시동 걸고 있을 테니까 빨리 하고 내려와"

"응~ 알았어, 알았어 고마워 언니야~"

"아이고~ 이럴 땐 언니란 말이 착착 나오네....."

효경이 서랍장에서 비닐도 뜯지 않은 검은색 팬티스타킹을 꺼내 뚝 던졌다.

은영은 정신없이 옷을 입기 시작했다. 블라우스 단추 구명은 왜 이리 작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단추 구멍에 단추를 넣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몇 번을 실패하고서 넣었다.

짧은 미니스커트에 블라우스를 집어넣고 재킷을 걸쳤다. 이제 스타킹만 신으면 끝난다. 아무것도 아닌 거 같은데 은영은 아침부터 진땀을 뺐다. 소파에 걸터앉아 오른쪽 발부터 스타킹을 신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스타킹도 잘 올라가지도 않았다. 혹시나 올이 나갈까 봐 조심조심 신었다. 오른쪽을 신고 왼쪽 발을 넣었다. 다행히 스타킹을 화나게 하지 않고 두 발을 집어넣었다.

'이제 일어나서 올리기만 하면 끝이다' 혼잣말까지 하며 아침부터 옷 입기에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차분히 팬티스타킹을 배 위에 까지 올리고 짧은 스커트를 내렸다. 시간은 없었지만 거울은 한 번은 봐야 했다. 언니 방의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커리어우먼같이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에 씩 웃음이 나왔다.

'됐다~ 됐어~ 이 정도면 나도 꽤 이쁜 거 아냐? 하하하' 빼어난 미인형 얼굴은 아니지만 수수하게 생긴 이목구비와 쌍꺼풀 없는 큰 눈이 나름 이뻐 보였다. 짧게 자른 단발도 꽤 잘 어울렸다.

급하게 거울 한번 쳐다보고 소파에 올려져 있는 종이가방을 들었다.

종이가방에는 털이 복슬복슬하게 발등을 덮고 있는 슬리퍼가 들어가 있었다. 화창한 5월에 털 달린 슬리퍼가 조금은 어색했지만 은영이 다이소에서 가장 고급스럽게 보이는 걸로 고른 것이었다.

이제는 꾸질 꾸질 하게 테이프로 묶은 슬리퍼는 절대 신지 않겠다는 은영의 다짐이었다. 그 다짐에 보답하듯 털 달린 슬리퍼가 종이가방 밖으로 빼꼼히 은영을 쳐다보면 미소 짓는 듯했다. 은영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은영은 마지막으로 핸드백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늦으면 언니의 잔소리 들을게 뻔해 급히 서둘렀다.

현관에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은영은 속으로 아침부터 재수가 좋네라며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여고생은 은영이 들어오자 한걸음 뒤로 물러 섰다. 뒤의 여고생이 은영을 곁눈질로 자꾸 쳐다봤다. 은영도 학생이 자신을 쳐다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이 정도 비주얼이면 쳐다볼만하지, 뭐 내가 안 꾸미니까 그렇지 나도 꾸미면 어디 가서 이쁘단 소리 많이 듣는다니까, 힉힉힉' 은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이제부터는 출, 퇴근할 때 신경 좀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고생은 은영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친구와 아침부터 하는 카톡이 정말 재밌는지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은영도 자신의 미모에 빠진 여고생의 카톡이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비록 자기만의 생각이었지만.


[지아야~ 학교 가고 있어?]

[응~ 라임아. 아침부터 웬 께톡?]

[나 엘베인데..... 아침부터 개 웃김. 킥킥킥]

[왜? 뭐가 개 웃김?]

[내 앞에 우리 라인 직장 다니는 여자 탔는데, 있잖아.... 웃겨 죽을 거 같아]

[뭔데, 뭔데~ 빨리 말해봐~]

[아~ 그 여자. 팬티스타킹이 치마를 먹었어! ㅋㅋㅋㅋㅋ]

[치마를 먹다니 무슨 말이야? 똥꼬가 바지를 먹는 거 아냐? ㅋㅋ]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음. 오늘 부터~ ㅋㅋ. 급하게 나왔는지 미니스커트가 살랑살랑 거리는 스타일인데 뒷부분이 팬티스타킹 속에 들어가 있어 ㅎㅎ]

[헐~ 어떡해 어떡해~~~~~ ㅋㅋㅋㅋㅋ 말해줬어?]

[말해주려고 몇 번 쳐다봤는데, 엄청 이쁜 척하며 나를 의식하길래 말 못 해줬어 ㅋㅋㅋ 어쩌면 좋냐~]

[그러게 ㅎㅎㅎ 엘베 내리면서라도 말해주지 그랬어?]

[그러려고 했는데..... 미친 듯이 달려가는데....ㅋㅋㅋ 저 언니 어쩌지 저러다 동네 쪽팔려 어떻게 살려고 ㅎ]

[무척 안타깝다. 하하 우리도 조심하자~ 동네 안 창피하게 ㅋㅋㅋ]

여고생이 신의 속도로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카톡의 내용이 손가락보다 더 빠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미치게 달려가는 은영의 팬티스타킹이 그녀의 살랑 거리는 미니스커트의 뒷자락을 먹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효경은 차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빨간색이라 '빨빨이' 라 불리는 작은 마티즈에서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리며 은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얘는 왜 안 오는 거야? 급해 죽겠는데!'

멀리서 은영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차문을 열고 의자에 앉았다.

"언니~ 나 왔어! 빨리 가자. 헉헉. 아~ 오래간만에 뛰니 힘들다."

"야~ 빨리 좀 가자, 너 때문에 또 지각할 뻔했잖아"

"알았어. 미안 미안. 언니 근데 나 오늘 좀 이쁘지? 하하"

"얘가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나! 너 배고프지? 나한테 욕먹고 싶어서 그러지?"

"아니야 킥킥. 오는데 엘베에서 학생이 내가 이쁜지 자꾸 쳐다보더라고 하하. 그리고 현관에서는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부르려는 듯이 손짓을 하길래. 급해서 말은 못 하고 달려왔어. 내가 오늘 이쁘긴 한가 봐 하하하.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그래? 이상하네~ 뭐 그리 나쁘진 않다"

그때까지만 해도 은영과 효경은 은영의 치마 뒷자락이 그녀의 팬티스타킹에 들어가 있는걸 알 수 없었다. 차는 바로 출발했다. 10여 분쯤 달리자 은영의 회사 주차장에 다다랐다. 선수의 트럭이 보였다.

"언니, 저 천막 같은 거 씌워진 차 보여?"

"응. 뭐라고 글자도 써진 거 같은데? '효라빠 생과일&토스트!' 무슨 차야? 아는 차야?"

"응, 우리 회사 신규직원인데 저 차 타고 출근하던데 하하. "

"왜 저 차를 타고 다녀?"

"응. 여기 들어오기 전에 저 차로 푸드 트럭을 했데."

"그렇구나. 출, 퇴근용 차로는 많이 부담스러운데 하하하"

"그치? 킥킥"

선수의 트럭이 보이자 은영은 긴장이 됐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선수가 있나 없나 주변을 살폈다.

선수가 차문을 잠그고 은행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걸 보자 은영의 가슴이 콩닥콩닥 튀기 시작했다.

"언니 나 갈게, 오늘도 고생하고 태워줘서 고마워"

"응. 그래. 수고해"

짧은 인사를 하고 은영이 내렸다. 효경은 차를 돌렸다. 은영은 선수에게 아는 척하지 못하고 선수의 뒤로 소리 없이 걸었다. 눈이라도 마주치고 싶었지만 가슴이 너무 콩닥거려 부를 수가 없었다.

효경의 차 안 룸미러에 걸어가는 은영이 비쳤다.

'어~ 아 미쳐!!! 저 덜렁이! 미쳤어 진짜, 누가 자기 이뻐서 쳐다봤다고? 아이고 착각도 자유지.'

효경의 눈에 드디어 팬티스타킹 속에 들어가 있는 은영의 치마가 보였다. 은영은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조신하게 선수의 뒤에서 걷고 있었다.

효경이 한쪽에 차를 세우고 조수석의 창문을 내린 후 은영을 불렀다.

"야~ 조은영!!!"

은영은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했다.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고 부르는 거야' 혼자 중얼거렸다. 대답을 하면 왠지 선수가 돌아볼 거 같았다. 눈은 마주치고 싶었지만 그럴 자신이 없었다.

"야~~~ 조은영!!!"

효경의 속 터지는 외침이 한 번 더 울렸다.

"......"

은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이그, 저 모질이~ 저걸 어떻게 하나 휴~' 효경이 속이 터지겠다는 듯 깊은 한숨을 쉬며 스마트 폰으로 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에 쥐고 있던 은영의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리며 [적과의 동거]라는 이름이 찍혔다.

'아, 진짜~ 왜 또 전화까지 하고 난리야..... 이러니 내가 [적과의 동거]라 입력해 놓지. 이렇게 잔소리할게 많을까, 아침부터 귀찮게 하네' 은영이 투덜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출근하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해! 옷 한번 빌려 준걸 가지고 엄청 생색낸다?"

"야!!! 이 모질아~~~ 너 바보지!!!'

효경의 외침이 사마트 폰 밖으로 울려 퍼졌다.

"무슨 소리야?"

"진짜 한숨밖에 안 나온다! 조은영 니 치마 봐봐"

"내 치마가 어때서~"

은영이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치마는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앞에 말고 뒤에~"

"으윽~~~"

외마디 비명만 나왔다. 은영의 소리는 더 이상 들이지 않았다.

은영은 스타킹 속에 들어가 있는 치마를 빼고 미친 듯이 주차장 한쪽으로 몸을 숨겼다.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미쳐, 미쳐. 어쩐지 엘베에서 자꾸 쳐다 보더라니. 아휴 쪽팔려......'

다행히 선수는 뒤에 있는 은영을 눈치 채지 못하고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은영의 얼굴은 당근이 되어 있었다. 새빨간 홍당무가 되어있었다. 스마트폰의 시계는 출근시간에 임박해 있었다. 흥분을 가라앉힐 시간도 없이 은영은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들은 대부분 출근해 있었다. 선수도 출근해 있었다. 데스크의 맏언니 장은주가 은영을 보며 한마디 했다.

"우와~ 은영아 너 웬일로 이렇게 이쁘게 하고 왔어?"

"아~ 그냥... 뭐..."

은영이 당황해서 뭐라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기 자리에서 현금을 챙기고 있던 선수가 은영에게 출근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나오셨어요!"

"네네..... 나오셨어요~"

선수는 무툭툭하게 한마디 뱉으며 다시 일을 했다.

은영은 사무실을 지나 여직원 탈의실로 들어갔다. 선수는 은영이 평상시에 유니폼을 입고 출퇴근하는 줄 몰랐다. 그렇다 보니 특별히 정장으로 차려입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은영은 선수가 자기에게 바로 눈을 돌려 버린 게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눈을 마주치고 인사한 것으로도 나름 뿌듯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책상에 앉았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했다. 왠지 하루가 힘들 거 같단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다음 10회에 계속됩니다. (월, 금요일 주 2회 올릴 계획입니다. 바쁘면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