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저축은행 김선수(효라빠 장편 소설 12회)
최노인은 멀리 사라져 가는 선수와 그의 오토바이 '방구'를 바라보며 연신 삿대질을 해댔지만 그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선수의 오토바이가 골목으로 들어가 버리자 체념한 듯 쌀가게로 몸을 돌렸다.
그의 옆에서 '왈~ 왈~'거리며 소리를 지르던 개의 새끼도 주인의 발걸음을 따라 총총 거리며 뒤로 돌았다.
개의 새끼 꼬리는 주인의 짜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 난 마냥 좌우로 재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메리야~ 젊은 놈이 왜 이렇게 정신이 없냐? 안 되겠다. 초장부터 확 잡아야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왈~ 왈~ 왈!'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왈! 왈~ 왈! 왈! 왈!'
최노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메리라 불리는 개의 새끼는 연신 짖어댔다.
쌀가게로 들어온 최노인은 새시 문을 닫았다. 어김없이 '끼익~ 끼익~' 소름 끼치는 소리가 오래된 쌀가게와 궁합이 잘 맞는 듯했다.
짜증이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최노인은 문 옆에 놓여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발로 세게 찼다.
'아이고~ 발이야~~~ 음메~ 아파 죽겠는 거~'
최노인이 소리를 지르며 한쪽 발을 감싸 잡았다. 플라스틱 의자가 탁자와 맞대고 있어서 의자가 날아가지 않고 부딪친 충격이 그대로 발에 전해졌다.
'옴메~ 다리야~ 그 망할 놈의 직원 놈 때메 내 발까지 다쳐부네~ 아이고 다리야'
최노인이 비명을 지르며 선수에게 욕을 해댔다. 혼잣말을 계속 구시렁거리며 절둑, 절둑 방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옆에서 지켜보던 개의 새끼는 주인의 다리가 부러지던가 말던가 여전히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계속 흔들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간 최노인은 텔레비전 옆에 놓여있는 돋보기를 쓰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들췄다. 동네 단위 농협에서 나눠주는 달력이었다. 한쪽 밑에 큰 글씨로 적힌 글씨를 돋보기를 쓴 채 들여다봤다. 돋보기에 비친 최노인의 눈은 소 눈알만큼 커 보였다. 파란색 네임펜 글씨로 크게 써진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해피 저축은행 061-555-5555]
네임펜으로 써진 비툴 비툴 한 글씨는 해피 저축은행 전화번호였다. 최노인은 핸드폰을 열고 숫자를 눌렀다. 큼지막한 숫자가 하나씩 하나씩 찍혔다. 서툰 손가락으로 번호를 차근차근 눌렀다. 번호를 누르는 엄지 손가락의 매듭이 도드라져있고 손톱 밑에는 고생한 세월을 알 수 있듯 묵은 때가 끼어 있었다.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둘렀다. 신호음이 들렸다.
[네. 감사합니다. 해피 저축은행 정태섭 과장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보세요~ 누구라고?]
[네. 정태섭 과장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잉~ 정 과장이고만~]
[아~ 쌀가게 어르신 이시죠?]
[잉~ 그러네. 잘 있었는가?]
[네. 어르신, 어르신도 잘 계시죠?]
[나는 시방 잘 계시 지를 못하네.]
[아니~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무슨 일이 있으니 전화했지. 그냥 심심해서 했겠는가? 아깐 전화세를 내면서 말이여~ 그런가~ 안 그런가?][아~ 네.... 그러시겠네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 뭐냐 자네 은행에 새로 온 직원있제? 그 선순가 감독인가.... 키는 멀때같이 커서 허우대는 멀쩡하게 생겼더구먼]
[김선수 씨요? 네. 저희 은행 신규직원입니다. 오늘부터 어르신 가게로 업무 하러 갔을 텐데요]
[잉~ 그려~ 그려~ 맞고만, 아니 그라믄 일을 똑바로 갤쳐야지? 어떻게 가르쳤길래 일을 그따위로 하고 간당가? 응? 내가 뒤에서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쌩~ 하니 달려가 불드만. 참나. 내가 나이 묵었다고 무시하는 거여 뭐여~ ]
[저기~ 혹시 선수 씨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저한테 말씀해 주시면 교육시켜서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여~ 됐어! 정 과장은 자네 일이나 잘하고. 내가 다시 불러다 말을 할것잉께. 그 선순가 감독인가 하는 사람 다시 우리 집으로 보내소~]
[네? 무슨 사고를 쳤는지 말씀을 해주시면 제가 확인해 보고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어르신~]
[아따~ 이 양반도 내 말을 묵어 불고 그러네 시방!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한가~ 안 한가~ 응? 몇 번을 말해야 것는가! 자네도 그놈하고 똑같이 정신이 없는가?]
[아..... 그게 아니라 제가 알면 일 처리를 더 신속하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신속이고 나발이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라니까. 그 허우대만 멀쩡한 놈 빨리 우리 집으로 보내소~]
[네... 네... 일단 그렇게 하겠습니다.]
[띠- 띠- 띠- ]
쌀가게 최노인은 해피 저축은행에 전화를 걸어 정태섭 과장에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정태섭 과장에게 직원 교육을 잘못시켰다는 듯한 식으로 소리까지 질렀다. 전화를 끊은 정태섭 과장의 머리에서는 열이 오르는 게 보였다.
'아니, 성재는 김선수 씨를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첫날부터 이렇게 사무실로 전화가 오게 만든 거야? 하필 그 꼬장꼬장한 최노인한테, 얼마나 큰 실수를 했길래..... 이거 아침부터 짜증이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정태섭 과장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주변이 다 들릴 정도로 혼잣말을 했다.
건너편 자리에 있던 별명이 '대체나~'로 불리는 조현익 부장이 물었다.
"정 과장?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응. 선수 씨가 최노인네 쌀가게를 새 코스로 다니잖아. 거기서 무슨 실수를 했나 봐. 방금 나한테 전화해서 막 뭐라고 하는데?"
"대체나~ 그러네. 무슨 일이지?"
조현익 부장이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철에서 김선수의 코스를 확인하며 어김없이 '대체나~'를 연발하면서 대꾸를 했다.
"글쎄~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그건 가르쳐 줄 수 없데. 참나 이 최 노인도 독특한 사람이야. 나한테 말하면 바로 조치를 할 텐데. 그 이유는 말을 안 해요"
"대체나~ 참 독특한 사람이네. 거기 그전에 이 대리가 다녔던 코스 아닌가? 성재한테서 꼬장꼬장한 어르신이라고 몇 번 얘기 들은 거 같은데."
"응~ 맞아. 나한테도 몇 번 말하더라고. 매일 5,000원씩 입금만 하는 어르신이라고. 부인하고 사별하고 강아지 키우면서 혼자 사신다는데 독특한 양반인가 봐"
"대체나~ 그러네. 매일 5,000원씩 입금하네"
조현익 부장이 전산에서 최노인의 계좌를 조회해보며 어김없이 '대체나~'로 말을 시작했다.
정 과장과 이 부장은 직책은 달랐지만 입사 동기라 회사에서도 말을 편하게 했다.
그들의 앞 데스크에 앉아있는 은영에게도 정 과장의 통화소리와 조현익 부장과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선수의 이름이 나오자 은영의 귀가 쫑긋 세워지며 전화 통화와 대화에 관심이 집중됐다.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선수가 무슨 큰 사고를 친 건가 하고 불안해 지기까지 했다. 은행일은 돈을 만지는 일이라 잘못하면 큰 금융사고가 생길 수도 있어서 더욱 걱정이 됐다.
정태섭 과장이 조현익 부장과 대화를 끝내고 스마트 폰을 들어 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코스에서 고객을 만나 일을 하고 있는 선수의 스마트 폰이 울렸다. 액정에 '정태섭 과장'이라고 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무실에서 가장 꼬장꼬장한 정태섭 과장의 전화가 오자 선수는 긴장이 됐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선수 씨?]
[네! 정 과장님!]
[내가 저번에 교육한 거 같은데? 업무 중에 회사나 고객의 전화를 받을 때는 '여보세요~' 하지 말고 본인의 직책과 이름을 대라고?]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그러고. 선수 씨 방금 '목포 쌀 상회' 들렸죠?]
[네. 정 과장님. 업무 잘 마치고 다른 곳 돌고 있는데요?]
[참나. 뭘 잘 마쳐! 마치긴! 방금. 최노인이 사무실로 전화해서 선수 씨가 사고 쳤다고 난리 쳤구만~]
[네? 난리요! 무슨 일인데요?]
[몰라. 잘못한 이유가 뭔지 말하라고 해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빨리 쌀가게 먼저 다시 가보세요. 그 양반 성질이 보통이 아니에요. 맘에 안 들면 전무님한테 직접 전화해서 난리 칠 수도 있어요. 전무님 한 테까지 안 들어가게 하려면 지금 빨리 가서 수습하고 사무실로 보고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 과장님. 빨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이라 실수할 수도 있고 해서 말 많이 않겠는데. 일할 때는 신경 써서 일하세요. 선수 씨 하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니까. ]
[네. 알겠습니다. 빨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정태섭 과장은 말 많이 않고 할 말만 하고 끊는다고 얘기했지만 그의 입에서는 많은 말이 나왔다. 마지막엔 짜증 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끝내자 선수는 통화하기 전보다 더 긴장되기 시작했다. 실수 없이 일처리를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사무실로 전화를 할 정도로 큰 잘못이 무엇 일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방구(오토바이)의 핸들의 돌려 최 노인의 쌀가게로 향했다.
쌀가게 입구에 방구를 세웠다. 들어가려니 더욱 긴장이 됐다. 오래된 새시 문 앞에서 들어갈지 말지 몇 번을 망설이다. '후~' 한숨을 쉬며 새시 문을 열었다.
여김 없이 '끼익~ 끼익~~~' 하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렸다.
'왈~ 왈! 왈! 왈~~~'
아까도 짖어댔던 개의 새끼가 여김 없이 짖어댔다. 맨들 맨들 새 구두를 신은 발로 개의 새끼의 주둥이를 꽉 차 버리고 싶었지만 꼬장꼬장한 최노인의 얼굴이 떠올라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미닫이 방문 안에서 불과 1시간 전에 들었던 소리와 같은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누구여~"
"아~ 네. 어르신 저 해피 저축은행 김선수 주임입니다."
"응~ 그래. 빨리 오긴 왔구먼~"
쌀가게와 방을 구분하는 문이 스르륵 열리며 최노인이 가게로 어그적 어그적 걸어 나왔다.
여전히 개의 새끼는 왈왈 거리며 짖고 있었다.
'메리야~ 그만 짖어라 시끄럽다~' 화난 투로 말하자 이번에는 메리라 불리는 강아지도 주인의 기분을 눈치챘는지 짖는 것을 멈췄다.
"거기 탁자에 앉아보게. 자네는 일처리 어떻게 하는가?"
"네? 제가 무슨 실수라도......."
"실수했응께 불렀제. 잘했음이라고 불렀겠는가~ 사회생활은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하는 게 아니여~"
"네? 말랑말랑 하게 한 건 없는 거 같은데. 제가 무슨 실수를 했습니까?"
"일단 거기 앉아봐"
최노인이 탁자에 있는 의자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네, 어르신."
"자~ 여기 통장 보소~ 뭐가 잘못됐는지?"
"네~ 네~"
선수는 손때가 베어 누렇게 변한 통장을 최노인에게서 받아 펼쳤다.
"거기 보이는가? 뭐가 잘못됐는지?"
"저는 잘 안 보이는데요?"
"안보이긴 뭐가 안 보여? 나이 먹은 나보다 자네가 눈이 더 안 좋은 거여 뭐여?"
"죄송합니다."
최노인은 낚아채듯 선수의 손에 들려있는 통장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는 마디마디가 굵게 변해버리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가락으로 숫자를 가리켰다.
"여기 어떻게 돼있는가? 공(영)이 몇 갠가?"
"아~~~"
"이제 보이는가?"
"네~ 어르신. 제가 잘못했네요"
선수는 최노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숫자를 쳐다봤다.
5,000원으로 되어 있어야 할 곳에 50,000원이 찍혀 있었다. 자신의 착오로 잘못된 게 맞지만 은행에 전화를 해서 사무실을 발깍 뒤집에 놓은 실수가 이것이라는 것에 허탈감이 몰려왔다.
"이제 보이는가? 젊은 사람이 정신이 있는가 없는가? 돈 처리를 이렇게 해서 되겄는가? 안 되겄는가?"
"네. 당연히 안되죠.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자네는 이걸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돈을 취급하는 사람으로서는 절대 이런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네 알겄는가?"
"네네... 어르신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자네를 애먹일라고 하는 것이 아니네. 다 자네 잘되라고 하는 것이네. 나도 소싯적에는 은행에서 펜 좀 잡고 돈 좀 굴리던 사람이네. 여기서 쌀가게 한다고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여"
"네. 어르신 죄송한데 제가 다른 거래처를 가야 해서요....."
"뭐? 그래서 그만 말하라 이거여?"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시간 안에 거래처를 다 돌아야 하거든요. 그렇다 보니...... 정말 죄송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럽니다."
"흠..... 하여튼 정신 차리고 일해~ 오늘은 처음이니까 그냥 넘어갈라니까! 오늘 못한 얘기는 다음에 하세"
"네. 어르신 죄송합니다."
"그래. 멀리 안 나가네"
"네. 죄송합니다.
선수는 다른 거래처를 가야 했기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일이 아니어도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빨리 사과를 하고 그 자리를 뜨는 게 가장 현명한 대처 같았다.
쌀가게 새시문은 여김 없이 '끼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선수는 전자 담배가 급하게 당겼지만 그 가게 앞에서는 잠시라도 있기 싫었다. 바로 방구를 타고 다음 거래처로 향했다.
최노인은 선수가 나가자 조용해진 쌀가게에서 세월의 흔적으로 자신의 노년처럼 불투명해져 버린 유리창 밖의 거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왈왈 짖던 강아지 메리도 주인 옆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오늘도 사람하고 할 말은 다 한 거 같네.....' 혼자 중얼거렸다.
80세 후반의 최노인은 혼자 쌀가게를 운영한다. 선수에게 말했듯 그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까지 했었다. 부인과는 젊은 나이에 사별했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그 딸은 결혼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 그곳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딸의 이민생활도 녹녹지 않았는지 최노인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지는 20여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가끔 전화가 오기는 했지만 사실상 딸이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50대에 은행을 퇴직하고 30년 가까이 쌀가게를 하면서 혼자 살았다. 쌀가게도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되었지만 지금은 정리하지 못해 마냥 운영하고 있었다. 손님으로 들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가끔씩 동네 자기 또래의 노인들이나 가끔 들려 쌀을 사 갔다. 괄괄한 최노인의 성격 탓에 쌀을 사러 오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었다.
하루 종일 사람과 대화 몇 마디 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점점 그런 시간이 많아졌다. 그나마 말이라도 하는 건 해피 저축은행에서 매일 들리는 이성재 대리가 전부였었다.
최노인이 매일 5,000원씩 저금을 하는 것은 사람이 그리워서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다행히 지금은 그의 곁에 메리라는 강아지가 있었다. 몇 달 전부터 가게 앞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 날 열린 문으로 들어와 애처롭게 쌀가게 한쪽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최노인은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차마 밖으로 내 쫒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강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강아지에게 메리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다. 강아지는 처음 키워 봤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동네에 있던 개나 고양이를 보면 '메리야~ 메리야~' 부르던 게 생각나 메리라고 이름도 짓게 되었다. 메리를 부르다 보면 어머니 생각이 들기도 했다.
메리는 사람들처럼 최노인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꼬리를 흔들어 주었고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면 그의 손을 할터 주었다. 난생처음 키워보는 강아지에게서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듯했다.
메리와 함께 있으면 혼자라는 생각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다.
선수가 가게 문을 닫고 나가자 최노인은 고무대야에 담긴 쌀 위에 쓰러져 있는 푯말을 들어 다시 반듯하게 꼽았다.
'아이고~ 이제 나도 빨리 갔으면 좋겠다.' 혼잣말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해피 저축은행에 전화해서 정태섭 과장에게 소리치고 다시 돌아온 선수를 나무란 것에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멍하니 있는데 '드르륵~ 드르륵~' 거리며 최노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였다. 최노인은 글자가 잘 안 보이는 듯 핸드폰을 눈에서 멀리 뗘서 인상을 써며 글자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아빠, 저예요. 제가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많이 다쳤어요. 급하게 병원비가 필요하게 됐어요. 이 번호로 전화 한번 해주세요. 가족들 걱정하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문자를 확인한 최노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두 달 전에 잘 지내냐고 안부전화가 왔던 미국에 살고 있는 딸에게서 온 문자였다.
문자에는 딸이라고 했지만 발신인 번호는 생소한 번호였다. 최노인은 일단 딸이 교통사고가 났다는 문자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놀라서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다음 13회에 계속됩니다. (월, 금요일 주 2회 올릴 계획입니다. 바쁘면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