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저축은행 김선수(효라빠 장편 소설 11회)
선수는 검은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메고 해피 저축은행 밖으로 나갔다. 이성재 대리가 먼저 나와 외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대리님~ 먼저 나오셨어요?"
"응, 선수 씨 기다리고 있었어~ 오늘부터 진짜 시작이네?"
"네. 대리님."
"그래, 준비 잘해서 한 번 해봐, 첫날이라 쉽지 않을 텐데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네, 알겠습니다. 이 대리님."
선수의 가방에는 시제(현금)와 pda, 고객명단이 들어있다. 사무실 직원들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고 당당한 걸음으로 나왔지만 마음만은 당당하지가 않았다.
이성재 대리와 선수가 타고 다닐 city 100(오토바이) 두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핸들에는 달랑달랑 헬멧이 매달려있다. 이성재 대리가 본인의 city 100에 시동을 건 후 전자담배를 꺼내 물었다. 선수도 그 옆에 서서 주머니의 전자담배를 꺼냈다.
"오토바이 이름 지었어?"
"네? 이름이요?"
"응, 이름. 나는 내 오토바이를 '씨댕이~'라고 불러. 내 발인데 친하게 지내야지. 자네도 이름 지어줘 봐. 은근 정든다니까. 하하하"
"'씨댕이'라고요? 이름이 특이한데요. 왜 '씨댕이'에요?
"아~ city 100이라 '씨댕이'야. 발음이 비슷해서. 귀엽지? "
"네. 네. 와~ 그러고 보니 이름 멋진데요. 저는 뭘로 하죠?"
"음~ 오토바이, 오도방구...... 그럼 '방구' 어때? '방구' 하하하"
"방구요? 방구라..... 나름 귀여운데요. 킥킥킥"
"그럼. 성까지 붙여서 김 방구라 불러야겠네요. '김선수와 김방구' 왠지 환상의 커플이 될 거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이대리님. 하하하"
"그러네. 아주 궁합이 좋은 걸. 월급 타면 나한테 밥 한번 사야 하는 거 아냐?"
"네. 안 그래도 이대리님께 그러려고 생각 중입니다. 하하 조금만 기다리싶쇼"
"오케이~ 역시! 선수 씨 사회생활 잘해. 킥킥"
이성재가 전자담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city 100이 애마라도 되는 듯 오토바이 뒤쪽에 묶여 있는 수건을 풀더니 이곳저곳의 먼지를 닦으며 선수에게 농담을 건넸다.
"선수 씨 코스 보니까 첫 집이 쌀집이더라고. 회사에서 코스 조정하면서 나랑 같이 안 가본 고객님 거래처도 꽤 섞여 있던데, 어차피 일은 본인이 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잘해봐. 아~ 그 쌀가게 할아버지가 조금은 특이해. 가서 보면 알겠지만. 혼자 오래 살면서 외로움을 많이 타서 그런지. 한 번 잘해봐"
"네. 대리님."
"나 먼저 출발할게 운전 조심하고 이따 보자고~"
"네. 이 대리님도 운전 조심하세요. 충성!"
"그래. 하하. 충성!"
선수의 생뚱맞은 거수경례와 충성이라는 외침을 이성재 대리가 웃으며 받아줬다.
이성재 대리는 역시 베테랑답게 그의 애마 '씨댕이'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출발했다. 부르릉 소리와 함께 이성재 대리의 재킷이 봄바람을 타고 뒤로 펄렁거렸다. 서부영화의 총잡이가 말을 타고 멋지게 황야를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선수도 그의 애마가 될 city 100 이제부터는 '김방구'라고 불릴 오토바이의 먼지를 수건으로 닦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방구야~ 앞으로 잘 부탁할게. 나보다 네가 더 선배니까 잘 좀 인도해주라. 알았지? 저번처럼 시동 갑자기 꺼지고 그러면 안 된다. 나 그때 엄청 놀랐단 말야~'
'네. 네. 주인님. 앞으로는 잘 다닐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는 소리가 선수의 귀에 들리는 듯했다. 아무 감정도 없는 오토바이에 말을 걸자 대답을 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신기했다.
'방구야~ 오늘 방문할 첫 집이 쌀집이래? 너는 잘 알겠다. 그렇지? 잘 시작해보자~'
선수는 오도방구에게 말을 걸며 오토바이 스트롤을 당겼다. 방구는 알았다는 듯 스르륵~ 앞으로 나갔다.
10분쯤 달리자 첫 거래처의 간판이 보였다. 간판에 '목포 쌀 상회'라고 적혀 있었다.
파란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 가운데 '쌀'자는 빨간색이었다. 간판의 글씨들은 색이 다 바래 자세히 봐야 할 정도였다. 간판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처럼 보였다.
완전 1980년도에나 있을 법한 간판이었다. 선수는 가게 앞에 섰다. 미닫이로 된 새시 문은 잘 열릴 거 같지 않았다. 선수가 방구에게 말을 걸었다.
'방구야~ 와~ 첨부터 뭔가 이상한데. 요즘도 이런 가게가 있나 봐, 와~ 대박! 아직도 이런 데서 쌀을 사 먹는 사람들이 있나!'
선수가 허름한 가게로 들어가기 전 앞이 뿌연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투명한 유리인데 세월의 흔적인지 먼지 인지 모를 것들이 가득 붙어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가게 안 한쪽 벽에는 살포대가 몇 개 쌓여 있고 큰 고무대야에는 쌀이 담겨 있었다. 그 옆으로는 검은콩과 잡곡들이 담긴 대야가 보였다. 각각의 통에는 손바닥만 한 푯말들로 '쌀', '검은콩', '귀리' 등등 곡물의 이름을 적은 푯말들이 꼽아져 있었다.
'방구야~ 장사를 하긴 하나보다 잡곡들이 있는 게, 와~ 첨부터 긴장되는데.....'
그렇게 말하며 선수가 오래된 샸시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역시 생각했던 것처럼 문은 한 번에 바로 열리지 않았다. '끼익~~~' 소리가 났다. 쇠끼리 부딪치는 듣기 싫은 소리에 선수의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힘들게 문을 열었다.
'왈~ 왈! 왈~ 왈~ 와왈!!!'
"아씨~ 깜짝이야~~~"
'왈~ 왈왈~ 왈왈왈왈!!!'
문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살짝 열린 방문 틈 사이로 시츄로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잽싸게 튀어나왔다.
'왈~ 으르렁~ 왈왈왈~~~'
당장이라도 물것처럼 선수 발 앞에서 짖어댔다. 가게 안 쪽에 붙어있는 방에서는 노인의 목소리가 짧고 굵게 들렸다.
"누구여~"
주인의 목소리에 힘을 얻은 강아지는 더 크게 짖어댔다. 선수는 잘못했다간 물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네.... 저..... 해피 저축은행 직원입니다. 은행 업무 보러 왔습니다."
"누구라고?"
"네. 해피 저축은행 김선수 주임입니다."
선수는 신규직원이지만 고객들을 만날 때는 주임이라는 칭호를 쓰라는 정태섭 과장의 지시에 김선수 주임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선수가 누근디? 왜~ 아침 댓발부터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거여~"
뭔가 못 마땅하다는 듯한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허리가 약간 굽은 노인이 방문을 열고 가게로 나왔다. 쌀이 쌓여있는 가게와 방은 문하나로 구분이 되는 거 같았다.
"해피 저축은행이라고?"
"네~ 어르신~"
제 차 묻는 게 귀가 잘 안 들리는 듯했다. 얼굴에는 검버섯이 많이 피어있고 주름이 가득했다.
"메리야~ 그만 짖어라~"
'왈~ 왈~ 왈왈~'
노인의 말에도 개는 계속 짖었다. 노인도 시끄러웠는지 강아지를 안았다. 그제야 개는 소리를 죽였다.
"첨 본 얼굴 인디~ 그전에 직원은 얼굴이 포동포동했는데..... 누구라고?"
"아~ 네 어르신 그전에 오신 분은 이성재 대리님이구요, 오늘부터 제가 다니게 됐습니다. 저는 김선수 주임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수는 이름을 말하며 목에 걸고 있는 해피 저축은행 신분증을 노인에게 보여 줬다.
"아~ 그래~ 그래~ 알았어 알았어"
노인은 짧게 대답하며 방 쪽으로 몸을 돌려 바닥에 깔린 이불을 들췄다. 거기에는 통장이 놓여 있었다.
통장을 들어 선수 쪽으로 던졌다. 쌀가게 가운데 놓여있는 오래된 탁자에 종이 통장이 '툭!' 떨어졌다. 통장은 탁자의 정 중앙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통장은 손때가 절어 표지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왠지 그런 식으로 통장을 던진 게 몇 년은 될 거 같았다. 아니 어쩌면 몇십 년이 될 수도 있게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다. 펼쳐보니 5천 원이 꼽아져 있었다. 종이 통장을 넘기며 입출금 내역을 보니 매일 5천 원씩 입금을 하고 있었다. 수입이 만든 적든 5천 원만 찍혀있었다.
"어르신? 여기 5천 원 입금하실 거예요?"
"아니 거기 안 보여? 그러면 내가 더 하겠어? 왜 젊음 사람이 촉이 없어!"
노인은 아무것도 아닌데 나무라듯 말했다.
"아~ 네. 그러네요. 이것만 입금 처리할게요"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알아서 하면 될 거를 가지고 전에 다니던 포동포동하던 양반은 잘만하더구먼. 자네는 몇 살이여?"
"아. 네. 제가 아직 신규직원이라 조금 서툴러서요. 죄송합니다."
"아따~ 나이가 몇 살이냐고? 으째 젊은 사람이 나보다 귀가 더 먹은거여~ 뭐여!"
"아.... 네..... 저는 이제 서른 살 됐습니다."
"좋을 때는구먼. 그럼 일도 빠릿빠릿해야지 이거시 뭤이여. 한 번에 말도 못 알아먹고."
"네... 네.... 죄송합니다."
"내가 시방. 나이 먹었다고 무시하는 거여 뭐여?"
"아뇨... 어르신 전혀 그런 거 아니에요. 오해 마세요 하하하"
"쳇..... 알았어. 빨리 통장이나 줘"
"네. 어르신 빨리 해드릴게요"
선수는 5천 원 입금 처리하는 간단한 일인데 닦달하는 노인의 소리와 으르렁 거리는 강아지 때문에 얼굴에서 식은땀이 났다. 얼굴에서 흐르는 땀이 볼을 타로 목으로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백수 생활할 때는 메지 않다가 해피 저축은행에 출근하면서부터 메기 시작한 넥타이가 무척 갑갑했다. 노인에게 통장을 건네며 말을 이어갔다.
"어르신. 제가 늦게 처리해 드려 죄송합니다. 처음이라 다음부터는 빨리빨리 해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흠~ 아 그리고 여기 잔돈 좀 바꿔줘." 노인이 만 원권 지폐를 건넸다.
"네. 그럴게요." 선수는 검은 가방 속에 띠지로 묶인 천 원권 지폐에서 10장을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두 손으로 안고 있던 강아지를 왼손으로 옮기며 돈을 받았다. 왼손에 안겨 있는 강아지는 여전히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시츄 같은 강아지 종 이면 귀여워야 하는데 인상 쓰고 있는 모습이 인생의 고단함을 얼굴의 주름으로 보여주는 늙은 주인처럼 강아지도 불독 같이 주름이 많고 싸나워 보였다.
"어르신 그러면 내일 또 들릴게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알았어. 멀리 안 나가네~"
마지막까지 짜증 나는 듯 말하고 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선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쌀가게를 나왔다.
나오면서 오래된 샷슈 문을 닫는데 역시 문은 매끄럽게 닫히지 않았다. 안에서는 심기가 불편한 듯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젊은 사람이 문도 하나 못 닫어!!!"
"죄송합니다. 빨리 닫을께요~"
선수가 마지막 대답을 하고 허름한 쌀가게에서 발을 뺐다.
'휴~~~' 선수의 입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오토바이의 안장에 가방을 올리고 주머니 속의 전자담배를 꺼냈다. 전자담배를 빨며 방구에게 말을 걸었다.
'와~ 씨~ 야 방구야! 나 식은땀 나 죽는 줄 알았다. 아니 뭔 노인네가 이리 꼬장꼬장하냐? 와~ 그 못생긴 강아지인지 개인지, 아니 개의 새끼니까 개새끼네.... 그 개새끼는 왜 이리 시끄럽고. 이거 진짜 짜증이다.'
선수의 입에서는 연신 '휴~ 휴~' 소리를 내며 전자담배 연기가 나왔다. 한숨을 쉬는 건지 연기를 내뿜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연기는 눈 쌓인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대륙 횡단 열차처럼 거침없이 입에서 품어져 나왔다.
'아~ 씨 첫 코스부터 맘에 안 드네. 젠장! 몰라, 몰라.... 어쨌든 두 번째로 가보자. 방구야 다시 달려보자'
선수는 오토바이 키를 꼽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곤 검정 가방을 이성재 대리처럼 오토바이와 무릎 사이에 끼고 스트롤을 당겼다. 오토바이는 시원하게 5월의 봄바람을 갈랐다.
다음 코스를 생각하며 선수와 방구는 함께 달렸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어이~ 어이~' 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선수는 당연히 자기는 '어이'가 아니므로 신경 쓰지 않고 방구와 함께 다음 코스로 갔다.
뒤에서 부르는 사람은 쌀가게 최노인이었다.
노인이라 그런지 '어이~ 어이~' 하며 부르는 소리는 멀리 가지 못하고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허리가 약간 굽은 노인 옆에서 선수가 말하던 개의 새끼만 '왈~ 왈!' 거리며 짖고 있었다.
최노인은 소리를 지르느라 끌어 오르는 가래를 길 옆으로 '쾌액~ 퇙~' 뱄으며 구시렁거렸다.
'젊은 놈이 정신이 없어~ 내가 가만 두나 봐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선수 때문에 심기가 뒤틀린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다음 12회에 계속됩니다. (월, 금요일 주 2회 올릴 계획입니다. 바쁘면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