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라빠 장편 소설 21회
선수를 보낸 대현은 가게에 홀로 남았다. 테이블을 정리해야 하지만 할 힘이 나지 않았다. 취기는 더 올라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플라스틱 의자에서 가게 안의 작은 방으로 몸을 옮기는 것도 귀찮았다.
대현은 스마트폰의 패턴을 풀고 음악 재생 버튼을 눌렀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응팔(응답하라 1988)의 ost였던 김필의 청춘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마트에 잔잔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대현의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노래 가사가 대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30대 중반인 그에게 이제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시련만 겪다 보니 시간은 노래 가사처럼 흘러가 있었다. 정육점을 정리하면 이제는 무얼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만이 그의 인생에 드리운 거 같았다.
마트의 한쪽에서 어두운 그림자들이 가게 안의 대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직 사제와 강림도령 두 저승사자였다. 사자 명부에 올라와 있는 대현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직사제님! 와~ 이 노래 진짜 좋은데요? 저까지 눈물 나려는데요.]
[너~ 이 노래 몰라? 나도 엄청 좋아하는 노래야. 이거 드라마 ost인데 들을 때마다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런다니까.]
[가슴을 찡 울리는데요.]
[이 노래 듣고 그런 말 하는 게 너도 인생... 아니 저생 좀 살았나 보다. 하하하]
[그런가요? 하하. 마트에 불다 꺼지고 이 노래가 나오니 조금 으쓱한데요~ 왠지 귀신 나올 거 같아요]
[미치겠네. 야~ 인마! 니가 귀신이야. 인간들이 볼때면... 아이고 돌겠구먼...]
[쩝. 그래도 저는 멋진 코트도 입고 비주얼은 귀신처럼 안보잖아요. 그 있잖아요. 저승 못 가고 이승 돌아다니는 여자 애들...]
[처녀 혼령들 말하는 거야? 인간들이 말하는 처녀귀신?]
[네.]
[하긴 걔네들은 내가 봐도 가끔 섬찟하다니까. 무슨 화장을 그렇게 덕지덕지 하고 다니는지. 영혼 데리고 저승 갈 때 그런 애들은 나도 뒷골이 으쓱 해~ 입술이나 좀 빨갛게 칠하지 말든가. 요즘 세상에 누가 입술에 피를 떡칠하고 다니냐? 그런 거 일일이 가르쳐 줄 수도 없고]
[그러니까요. 걔네들이 저승 가서 십대왕님들 앞에서 심판받고 천국으로 가면 제일 먼저 얼굴부터 바꾸잖아요. 지들도 저승 올라가서 그렇게 다니는 저승인들 없는 걸 보면 창피한가 봐요. 킥킥킥]
[그러겠지. 그거는 쌍팔년도, 아니 조선시대 때나 그랬으니까. 봐봐 선녀님들 얼마나 패션너블 해. 아마도 네가 '저승사자 tv' 유튜브 한번 하긴 해야 할란갑다. 킥킥]
[하하하. 진지 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어! 일직사제님 저 사람 지금 뭘 하려는 거 같은데요!]
[그래? 빨리 준비하자 영혼이 육신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저승으로 데리고 가게]
[네. 준비하겠습니다.]
강림도령이 들고 있던 사자 명부 두루마리를 펼쳤다. 거기에는 <사자:김대현, 사유: 自殺(자살)>이라고 적혀있었다.
음악을 듣고 있던 대현은 흐르던 눈물을 닦으며 눈을 떴다.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카운터 쪽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한쪽 구석에는 냉동 박스를 포장할 때 쓰는 파란색 노끈 뭉치가 있었다. 도마 옆에 있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노끈 뭉치에서 끈을 길게 잘라냈다. 손에 들려있는 칼을 힘없이 바닥으로 툭 던지고 끈을 들고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대현의 솥뚜껑 같은 손에 힘없이 잡혀있는 끈은 울뚱불뚱한 바닥에 질질 끌리며 대현을 따라갔다. 바닥에 쓸리며 끌려가는 끈은 대현의 인생 같았다. 아무 힘이 없이 흐느적거리며 그의 발 뒤꿈치를 따라갔다.
대현은 처음 앉았던 플라스틱 의자에 철퍽 주저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천정에는 굵은 파이프 배관들이 노출되어 있었다. 만취되어 올려다보는 대현의 눈에는 파이프가 자기를 보고 웃는 듯했다. 어서 오라고 웃는 듯했다. 대현도 따라 웃었다.
'그래. 가자... 가... 여기보다는 거기가 나을 수도 있겠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한 손에 힘없이 들려있는 노끈을 돌돌 말았다. 무릎 위에 올리니 한쪽 무릎을 덮었다. 멍한 표정으로 앞의 벽을 바라봤다. 페인트 칠도 되어 있지 않은 벽면에 오래돼 보이는 사진 하나가 걸려 있었다. 사진 속에는 목에 금메달을 걸고 있는 고등학생과 옆에는 부모로 보이는 남녀가 서 있었다.
그 사진은 대현이 고등학교 때 전국 유도대회에서 1등을 하고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그때만 해도 대현의 꿈은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대현이 그 사진을 보며 씩 웃었다. 자신도 잘 나갈 때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웃음도 잠시, 그 후로 부상당해 고생하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옆에 같이 웃고 계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자 더 눈물이 났다. 눈에선 눈물이 계속 흘렀지만 닦지 않았다. 모든 게 싫었다. 이렇게 울고 있는 자신도, 자신만을 바라봤던 부모님도, 이제는 모든 걸 다 끝내고 싶었다. 손에 들고 있는 노끈을 움켜쥐었다.
스마트 폰에서 나오던 노래가 끝이 났는지 마트 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고마웠다고 잘 있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스마트폰을 들었다. 패턴을 풀고 통화기록을 보자 맨 위에 선수의 이름이 찍혀있었다. 낮에 선수와 통화를 하고 그 뒤로 아무하고도 통화를 하지 않은 듯했다. 그러고 보니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지만 마지막까지 자기와 술까지 먹어준 선수가 너무 고마웠다. 선수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신호음이 들렸다.
스마트폰 액정의 시계 숫자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서서히 올라가는 숫자는 60초 가까이 되더니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전자음이 흘러나왔다. 대현은 스마트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깊은 한숨을 쉬고 테이블 위에 스마트 폰을 내려놓고 플라스틱 의자 위에 두 발을 올렸다. 의자에 올라가 파란색 노끈을 두꺼운 배관에 돌려 감기위해 두 팔을 뻗었다.
[일직사제님 저 사람이 자살을 시도하는 거 같은데요?]
[그렇군, 매번 보는 일이지만 사람이 죽는 광경을 직접 목격해야 하는 일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아. 특히 자살의 경우는 더해.]
[그러게요.]
[이래서 나도 빨리 승진해서 저승사자 일을 그만 정리하고 싶은 거야. 자살할 때 보고 있으려면 너무 안타까워. 자살은 나쁜 놈들보다는 착한 사람들이 더 많이 하더라니까. 특히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인간의 生과 死는 하늘의 뜻이라고 하지만 자살은 엄격히 말해 본인들의 뜻이거든. 어느 저승사자도 그들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자살하기 위한 여건을 만들어 주지 않으니까]
[맞습니다. 자살은 다 본인들의 책임이죠]
[그래서 자살의 경우는 십대왕님들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천국으로 가기가 쉽지 않아, 그렇다고 가장 끔찍하고 괴로운 불지옥으로 빠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자살은 그리 탐탁지 않아...]
[네.]
두 저승사자가 자살을 시도하려는 대현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대현은 당연히 저승사자가 자신을 데리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고 팔을 뻗어 쇠로 된 배관에 노끈을 감고 있었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술까지 마신 선수는 택시를 잡아타고 택시기사에게 집으로 가자는 말을 하고 바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얼마나 졸렸는지 안전벨트도 매지 않고 바로 잠이 들었다. 택시 앞 좌석에 앉은 선수는 택시가 흔들릴 때마다 머리도 같이 흔들렸다. 코너를 돌 때면 선수의 머리는 조수석 창문에 부딪쳐 차와 함께 코너를 돌았다. 유리창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는데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그걸 보고 있는 택시기사 아저씨가 선수를 불렀다.
"총각! 머리를 뒤로 하고 편하게 누워. 유리창에 부딪치지 말고."
"......"
"어이~ 총각!"
"......"
기사 아저씨가 아무리 불러도 선수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선수의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도 덜컹거리는 차의 울컥임과 함께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아이고~ 젊은 총각이 정말 취했네.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이지경이 된 거야~ 핸드폰까지 떨어트리고...'
택시 기사가 아들 뻘 되어 보이는 선수가 안타까운지 혼잣말을 했다.
축 늘어져 조수석 유리창에 맞닿아 있는 머리와 중심을 잃어버린 몸이 제각기 흔들렸다. 다리 밑으로 떨어진 핸드폰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택시기사는 운전을 해야 해 속도를 줄여 천천히 가는 거 말고는 선수를 돌봐 줄 게 없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달리는 차 안에서 핸드폰 진동음이 들렸다. 택시기사가 자기 핸드폰인가 하고 운전석 문 틀에 끼어 있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의 핸드폰에는 아무 진동이 없었다. 그래도 '드르륵~ 드르륵~' 거리는 진동은 계속 울렸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선수의 발밑에서 스마트폰의 진동과 함께 불빛이 비쳤다. '드르륵~' 거리는 진동 소리는 선수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진동이었다.
스마트폰의 액정에는 '정육점 대현이 형님'이라고 찍혀 있었다.
택기 기사는 선수를 불렀다.
"젊은 총각! 전화 오는데! 어이~ 젊은 총각?"
"......"
"총각! 전화 온다니까? 발밑에 핸드폰 떨어져 있어! 전화받아봐"
"......"
얼마나 깊게 잠이 들었는지 선수는 택시기사의 부름에도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젊은 친구가 많이 피곤했나 보구먼.... 이렇게 부르면 일어날 법도 한데,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니'
택시 기사의 혼잣말이 끝나자 '드르륵~ '거리던 진동이 멈추고 택시 안엔 선수의 머리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쿵~ 쿵~' 소리만 들렸다.
그 전화는 대현이 선수에게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거는 전화였다. 선수는 깊은 잠에 빠져버려 전화가 오는 걸 알 수 없었다. 선수의 집 앞에 택시가 도착했다. 택시기사가 도착했다고 말을 해도 선수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택시기사가 몸을 세차게 몇 번 흔들자 선수가 눈을 떴다.
"총각! 집에 도착했어! 빨리 일어나."
"아~ 네... 네... 벌써 도착했네요"
"뭐가 벌써야! 천천히 오느라 40분이나 걸렸는데. 얼마나 깊게 잠들었는지 머리를 유리창에 부딪히고, 핸드폰에 오는 전화까지 받지 않고 잠들더니. 이제 정신 좀 들어?"
"네... 네... "
선수가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정신이 든다고 말은 했지만 여전히 비몽사몽이었다. 택시비를 지불하기 위해 핸드폰을 찾았다. 손에 들려있지 않자 주머니에 있나 싶어 주머니를 뒤져도 핸드폰은 없었다.
"핸드폰 찾아?"
"네~"
"아직도 정신없구먼. 허허. 자네 발 밑에 봐보게. 운전하면서 보니 거기서 진동 소리가 나드만 전화도 오는 거 같던데?"
"아.... 네... 여기 있네요. 커억~ 컥~~~"
선수가 깊은 트림을 하며 대답을 했다. 핸드폰에 꼽아져 있는 카드를 빼기 위해 핸드폰을 케이스를 열었다. 택시기사가 전화가 왔다는 말을 했지만 택시값을 결제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확인할 생각을 못했다. 카드를 빼 택시기사에게 주자 택시기사가 결제를 하며 한마디 했다.
"젊은 총각 술 적당히 마시고 다녀 그러다 몸 상해"
"네. 감사합니다."
"아까 운전하다가 보니까 전화 오드만...."
"네.... 감사합니다."
아직도 정신이 없는 선수는 감사하다는 말만 하며 카드를 받아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 문을 열고 내리자 8월 열대야의 뜨거운 밤공기가 선수의 얼굴을 확 덮쳤다. 얼굴에 인상이 써지며 아파트 입구 쪽으로 걸었다.
카드를 핸드폰에 다시 꼽으며 확인 버튼을 눌렀다. 기사님 말대로 부재중 전화 표시가 떴다.
엄마가 전화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패턴을 풀었다. 최근 기록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에 뜬 사람의 이름은 '정육점 대현이 형님'이라고 찍혀있었다. 선수는 정신이 확 들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형님과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선수의 뇌리에 스쳤다. 같이 공부하다 안 좋은 선택을 했던 친구가 보낸 마지막 부재중 전화가 떠올랐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수신인에 찍혀있는 대현의 번호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신호음이 갔다. 제발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한 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두 번 세 번 네 번이 지나도 대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기계음 나왔다.
'아~ 씨발!!! ' 선수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 술에 취한 머리에 전기가 통하는 거 같았다. 선수가 바로 뒤로 돌았다. 방금 타고 온 택시가 차를 돌리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선수가 소리 지르며 택시 쪽으로 뛰었다.
'아저씨! 택시 아저씨! 택시! 택시! 택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