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씨!
라영은 영혼을 볼 수 있어!(7)
효라빠 장편 소설 22회
선수의 미친듯한 외침에 택시기사는 백미러로 뒤를 돌아봤다. 방금 차에서 내린 총각이 급하게 손짓하며 다시 달려오고 있었다. 무얼 빠트렸나 생각하고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선수가 급하게 차문을 열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아저씨! 빨리 제가 탔던 마트로 다시 가주세요?"
"뭐? 총각, 뭐라고?"
"아~ 급해요 급해. 빨리 제가 탔던 곳으로 바로 가주세요. 헉헉헉"
"아니, 뭘 놔두고 온 거야?"
"그게 아니라 큰일이 생길 거 같아요. 제발 빨리 좀 가주세요."
"뭐가 이리 급하길래... 알았어 빨리 갈게"
"제발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택시에서 비몽사몽 하던 그 선수가 아니었다. 긴장한 채로 두 손에 핸드폰을 쥐고 '제발! 제발! 제발!'만 외치고 있었다.
플라스틱 의자 위에 올라간 대현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지금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쇠 파이프 배관에 걸친 줄은 잘 감기기 않았다. 떨리는 손은 불안한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 같았다. 술에 취해서 인지 만들려고 하는 매듭은 더 꼬였다. 팔은 저려오고 다리는 흔들렸다. 발을 살짝 움직였다.
'쿵~' 소리와 함께 대현이 플라스틱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그의 이마에는 선홍빛 피가 흘렀다. '젠장~ 나 같은 놈은 죽기도 힘드네. 뭐가 이렇게 힘든 거야! 엉~엉~엉~'
일할 때부터 신고 있던 대현의 물에 젖은 크록스 신발이 플라스틱 의자에서 미끌렸다. 의자가 뒤집히며 대현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넘어진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씨발~ 왜 이리 죽기도 힘드냐고!!!' 큰소리를 지르며 옆에 있던 테이블을 발로 찼다.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있던 불판이며 컵들이 모두 쏟아졌다.
멀리서 두 저승사자는 대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강림도령의 두루마리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부딪친 머리를 움켜쥐며 대현이 플라스틱 의자를 바로 세웠다. 파란색 노끈을 쥐고 다시 의자 위에 올라섰다. 어김없이 다리는 후들거렸다. 두 손을 들어 굵은 배관에 끈을 묶었다. 묵은 끈으로 매듭을 만들었다. 손바닥만 한 동그란 매듭이 만들어졌다. 눈물이 흘렀다. 무서웠다.
'엄마~ 아버지~ 미안해요... 이 못난 자식 때문에 그동안 많이 힘들었죠. 저 뒷바라지하느라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이제 저 같은 놈 신경 쓰지 말고 두 분 행복하게 사세요'
대현이 흐느끼며 중얼거렸다. 눈물과 콧물, 이마에서 흐르는 피까지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떨리는 두 팔로 동그란 매듭을 머리 사이에 끼웠다.
'엉~ 엉~ 엉~' 곰같이 큰 덩치가 흐느꼈다. 흐느끼는 어깨가 파도에 출렁거리는 고깃배처럼 출렁거렸다. 이제는 그 파도도 대현을 건드리지 못할 거 같았다. 머리에 끼운 매듭을 목까지 끄러 내렸다.
'렛잇비~ 렛잇비~ 렛잇비~ 렛잇비~' 대현의 흐느낌만이 가득 채우고 있던 그곳에 음악소리가 들렸다. 대현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였다. 비틀스의 렛잇비는 대현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다. 대현의 스마트폰 액정에 '멋진 동생 선수~'라고 수신인이 떴다.
목에 줄을 감고 있는 대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비틀스의 렛잇비만 울렸다. 음악이 들리자 눈물이 더 흘렀다. 대현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누구한테서 오는 전화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목에 끼운 노끈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 가지런히 모았다.
선수는 택시 안에서 '제발~ 제발~'이라는 말만 외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라영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대현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그 이상한 사람들, 제발 영혼을 볼 수 있다는 마트 여사장의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랬다.
핸드폰을 열어 다시 대현의 번호를 눌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여전히 대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쿵쾅거렸다.
"기사님! 제발 빨리 좀 가주세요. 잘못하면 큰일 날 거 같아요"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거야? 젊은 사람이..."
택시 기사가 조급해 하는 선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랑 친한 형님이 계신데 왠지 그분이 안 좋은 선택을 할거 같아서 너무 불안해요. 지금 전화도 안 받고..."
"아~ 진짠가? 그럼 빨리 말을 하지 그랬어. 안전벨트 잘 매소. 내가 빛의 속도로 달릴라니까"
"네. 감사합니다."
택시기사가 풀 액셀을 밟았다. 선수는 두 손으로 핸드폰을 쥐고 '제발~ 제발~'만 외쳤다.
애타는 선수의 외침이었지만 대현이 있는 마트 정육점과 택시는 아직도 많은 거리가 남아 있었다.
대현이 플라스틱 의자에 올라가 있는 두 발을 치웠다.
'턱~' 고요한 마트에 묵직한 물체가 매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컥컥~~~' 의자가 넘어지며 곰 같은 대현의 몸이 파란 노끈에 매달려 숨 막히고 고통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대현의 솥뚜껑 같은 손이 무의식 적으로 목에 감긴 노끈을 잡았다. 이마에 피가흐르는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 그러 졌다. 손으로 매듭을 풀려고 했지만 무거운 몸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 악~~~'
갑자기 마트에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일직사제님 저 여자가 또 왔는데요?]
[아씨~ 또 뭐하러 온 거야! 저 여자는 우리를 볼 수 있으니까 일단 피해]
[네. 알겠습니다.]
[야~ 저 여자 도움 안되네...]
대현의 자살 장면을 보고 있던 두 저승사자가 후다닥 어두운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라영이 커피숍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 마트에 잠깐 들린듯했다.
철문을 열고 마트 안으로 들어온 라영은 정육코너에 불이 켜진 것이 보였다. 당연히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불이 켜져 있자 그쪽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었다.
'안돼! 안돼!' 라영이 계속 소리를 질렀다. 대현의 발버둥 치는 모습이 라영의 눈에 그대로 비쳤다. 라영은 그때 검은 옷의 저승사자들이 마트의 대현을 보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안돼요... 왜 이래요... 엉엉엉~' 라영이 울며 대현의 다리를 붙잡았다. 묵직한 다리를 움켜잡았지만 가냘픈 라영의 팔은 대현의 다리와 같이 흔들렸다.
'컥컥컥~~~' 대현에게서는 여전히 컥컥 거리며 목을 조여 오는 거침 숨소리가 들렸다.
"살려~~ 주세요... 컥컥" 대현의 입에서 힘겨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떡해~~~' 라영이 울며 대현의 다리를 붙잡았지만 무거운 대현을 들지 못했다.
"살려... 살려.... 칼... 칼... 컥컥컥... 칼..."
"네네..."
칼을 가져오라는 듯한 말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라영이 바닥을 둘러보자 한쪽 구석 노끈 뭉치 옆에 날카로운 식칼이 보였다. 라영이 칼을 가지러 가기 위해 붙들고 있던 대현의 두 다리를 놓았다.
'컥컥~~~ 컥컥~~' 대현은 더욱더 힘겨워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점점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눈의 초점도 풀리고 있었다. 노끈을 힘들게 잡고 있던 손이 스르르 밑으로 내려왔다. 발버둥 치던 두 다리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쿵~~~'
마트에 묵직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엉엉엉~ 괜찮으세요"
"컥컥.... 콜록콜록..."
라영이 식칼로 파이프 배관에 연결되어있던 줄을 잘라냈다.
대현이 거친 기침을 했다.
"왜 이런 짓을 하세요? 미쳤어요? 왜 이랬어요? 엉엉엉" 라영이 울부짖었다.
"감사합니다. 콜럭콜럭"
대현은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졌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지만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멘트 바닥의 거친 감촉이 이렇게 차갑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누워있는 대현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 바닥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졌다. 떨어진 눈물방울엔 먼지가 달라붙어 둥근 방울들이 터졌다.
"괜찮으세요?"
"흑~흑~흑~"
라영의 물음에 대현이 흐느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현이 힘겹게 말하며 목에 감긴 노끈을 손으로 풀려고 했다. 꽉 조여진 노끈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몇 번을 손으로 풀어헤치니 살갗 밑으로 빨갛게 들어간 묵인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멀리서 두 저승사자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짐 싸라~ 짐 싸~ 이번에도 힘들겠다.]
[네. 일직사제님. 그런데 이거 너무 실적이 안 좋은 거 아닌가요?]
[어쩌겠냐. 자살이라고 되어 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일부러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저 여자는 전생에 뭐였길래 저렇게 사람을 살리고 다니는지 몰라?]
[일직사제 님이 그러셨잖아요? 영혼을 보는 여자들은 전생에 선녀였다고...]
[아~ 그랬지. 킥킥킥. 야~ 나이를 먹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렇게 해서 언제 승진해서 저승사자 그만둘는지 모르겠네. 내 동기 중에는 십대왕 연수 끝내고 염라대왕 발령 대기 중인 저승사자도 있다고 하던데. 내 팔자는 그냥 저승사자만 하란 갑다.]
[일직사제님. 그냥 저랑 저승사자 계속하시죠? 제가 잘 보필하겠습니다. 하하하]
[보필? 아이고~ 선생님 앞 가름이나 잘하세요. 제 보필은 제가 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일직사제가 살짝 비꼬며 강림도령을 쳐다봤다.
[강림도령, 다음 순번은 어디야?]
[네.]
강림도령이 오래돼 보이는 가죽 두루마리를 펼쳤다.
<사자 : 김대현, 사유 : 자살>이라고 되어 있던 부분이 <사자 : 無, 사유 : 生>이라고 고쳐져 있었다.
긴 가죽 두루마리를 한참 내려다보던 강림도령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일직사제님 이거 어떡합니까...]
[왜? 무슨 일 났어?]
[네. 일이 났습니다. 저기 저... 엄청 피곤하게 생겼는데요....]
[뭔데 그래?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봐.]
[저~ 출장인데요... 아무래도 많이 힘들듯 합니다.]
[야~ 빨리 말하라니까. 어딘데? 뭐가 또 큰일이야! 출장은 또 뭔 소리고? 전쟁이라도 났어?]
[네. 전쟁 났는데요... 이번엔 우크라이나인데요...]
[와 씨~ 돌겠네. 꼬인다 꼬여. 또 전쟁통에 들어가서 비참한 꼴 또 봐야겠구먼. 어떤 놈이 전쟁 일으킨 거야?]
[러시아 푸틴이라는데요.]
[뭐? 푸틴! 하여튼 그놈 평소에 또라이 짓 하더니 드디어 사고 쳤네. 야~ 혹시 그놈 이름도 사자 명부에 있어?]
[잠깐만요. 찾아보겠습니다. 워낙 죽을 사람이 많아서요.... 아~ 있습니다. <사자 : 푸틴, 사유 : 암살> 있습니다.]
[역시 저승은 정의가 살아있어. 야~ 가자. 출장!]
[네. 일직사제님]
두 저승사자는 두루마리를 접고 어두운 마트의 한쪽으로 사라졌다.
'끼이이~익~~' 마트 앞에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선수가 택시에서 급하게 내려 마트 안으로 정신없이 뛰어들어갔다.
'선수 씨 라영은 영혼을 볼 수 있어!' 8회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월, 금요일 주 2회 올릴 계획입니다. 바쁘면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