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라빠 장편 소설 23회
"대현이 형! 형! 헉~헉~헉~"
마트 안에 선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육코너의 불이 켜진쪽으로 정신없이 달렸다. 대현은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의 손에는 목에서 풀어낸 노끈이 들려있었다.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대현은 멍한 표정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커피숍 사장 라영이 무릎을 꿇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정육코너 바닥엔 테이블이 쓰러져 있고 깨진 유리조각들과 그릇들로 난장판이었다.
"형님! 무슨 일이에요? 정말 자살하려고 했던 거예요?"
"......"
대현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누워있는 대현이 멍하게 뜨고 있던 눈을 감자 맺혀있던 눈물방울만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옆에 흐느끼고 있던 라영이 힘겹게 말을 꺼냈다.
"네. 큰일 날 뻔했어요.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엉엉엉"
"사장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같이 술 마시고 들어가는 길에 기분이 찝찝해서 바로 들려봤는데... 휴~ 큰일 날뻔했네요.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당연한 일인데 감사할 거 없어요. 엉엉~"
라영은 아직도 감정 주체가 되지 않는지 계속 흐느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대현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줄에 매달려 발버둥 치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라영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대현의 손을 잡았다.
"이제 다시 시작해 보세요. 새로운 삶을 사신다고 생각하시고 다시 일어나 봐요."
"네... 감사합니다. 정말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너무 취해서 그랬나 봐요. 막상 그렇게 되니 너무 무서웠어요."
대현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꺼냈다.
"네. 그 마음 저도 충분히 이해해요. 저도 대현 씨처럼 힘든 날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또 해결해 주더라고요. 대현 씨도 지금은 많이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는 안 좋은 생각 하지 마시고 다시 시작해봐요. 새롭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네... 감사합니다."
반대편에서 대현의 손을 잡고 있던 선수도 라영의 말에 눈물이 나왔다. 바닥에 누워 있는 대현의 모습이 불과 몇 달 전의 자신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 형! 돈이야 벌어서 갚으면 되잖아, 그러니까 다시는 이런 일 벌이지 마. 저번에 조 과장님이 그러셨는데 조합원님들 중에 대출 조건이 부적합한 사람들도 수금 담당 직원이 보고서를 잘 써주고 담보물건이 있으면 대출기준을 완화해줄 수 있데. 그러니까 형도 내가 조 과장님께 말해볼게. 그렇게 대출받아서 아버지가 보증선 돈 먼저 갚고 여기서 일한 돈으로 은행 대출금 조금씩 갚아나가면 될 거야. 아까 술 먹으면서 말할까 했는데 확실하게 알아보고 얘기하려고 안 했던 거야. 그러니까 너무 고민하지 말고 다시 시작해보자"
"그래. 선수야 고맙다. 흑흑흑..."
대현이 흐느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콜록 컥컥... 콜록' 아직 목이 이상한지 마른기침을 했다.
"형. 어지러우면 좀 더 누워있어. 괜히 일어나려고 하지 말고"
"아냐~ 괜찮아... 라영 씨 정말 감사합니다. 라영씨 아니었으면 정말 죽었을 거 같아요"
"아뇨.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어찌 보면 우리 모두 비슷한 입장일 거예요.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릴 때보다 안 풀릴 때가 더 많은 거 같아요. 저도 두 분께 말하진 않았지만 나름 힘든 일을 많이 격었어요. 그러다 보니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기는 거 같아요. 처음엔 그 상처들이 죽고 싶을 만큼 힘이 들었지만 상처가 아물고 그 자리가 단단해지면서 저를 더 강하게 만들었던 거 같아요. 저도 대현 씨처럼 죽고 싶은 날들이 너무 많았어요. 죽을 용기가 안 나서 그러진 못했지만. 어찌어찌 살다 보니 좋은 날도 있고 이제는 따뜻한 아침 햇살에 향긋한 아메리카노 한잔이 '이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돈에 치여서 생을 정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저는 가장 바보처럼 보여요. 자신들 마음속에 들어가 있는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그런 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도 말이에요."
"네. 라영씨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이 빚이야 좀만 더 열심히 살면 갚을 수 있는 일인데, 왜 이런 바보 같은 행동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어리석었어요"
"새로 맘먹었으니까 다시 시작해 봐요. 만약 잘못돼서 대현 씨한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면 부모님은 어떻겠어요. 아마 대현 씨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예요. 그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다신 이런 행동하지 마세요"
"네. 막상 목이 조여오는데 엄마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순간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는 이미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라영씨 말대로 내가 죽었다면 아마 우리 엄마도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지금까지 저 뒷바라지하시느라 평생을 다 바치신 분인데. 정말 제가 바보였네요. 흑흑흑"
대현이 일으켜 세운 몸을 한쪽 벽에 기대며 흐느꼈다.
"형~ 이제 좋은 생각만 하자. 내가 조 과장님께 보고서 올려볼게"
"그래. 고맙다."
대현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라영은 흐느끼는 대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정육점에서 일할 때는 몰랐던 대현의 순수한 모습이 보이는 거 같았다. 엄마 얘기를 하며 울먹이는 대현을 보자 더 안쓰러우면서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다.
"조금만 참고 다시 시작해요..."
"네. 감사합니다."
대현의 어깨에 올려진 라영의 손은 포근했다. 대현은 오랜만에 사람의 온정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라영을 얼굴을 올려다봤다. 아름다웠다. 다시 삶을 시작해보고 싶었다. 메말라 버린 줄 알았던 가슴에 생기가 흐르는 거 같았다.
선수는 널브러진 바닥을 정리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여름의 푹푹 찌는 더위가 언제 지나가나 하며 한숨을 쉬며 거래처를 돌던 선수의 이마에 어느 순간부터 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가로수 옆 한적한 곳에서는 알록달록 코스모스도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금을 다니던 선수도 서서히 일에 적응해나가고 업무에 자신도 생겼다.
어김없이 선수는 아침 일찍 출근했다. 은행 후문을 열어 놓고 책상에 앉아 업무 준비를 하면서 출근하는 선배 직원들을 바라보며 '나오셨습니까!'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은영 씨 나오셨어요?"
"네. 선수 씨는 오늘도 일찍 나왔네요?"
은영이 밝은 표정으로 선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막내면 제일 먼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선수 씨 말발도 많이 늘은 거 같아요? 호호호"
"말발만 늘었겠습니까. 돈 세는 손발도 늘었을 걸요? 킥킥킥"
선수가 은영의 말대로 늘어난 말발로 농담을 건넸다. 많은 조합원들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넉살도 많이 늘은 건 사실이었다.
여전히 선수를 바라보는 은영의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아직 선수에게 직접적으로 호감을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사실 었다. 선수는 업무를 시작하는 신규직원이라 여유가 없어서 인지 아니면 은영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서인지 은영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읽어내지 못했다. 선수는 은영이 참 밝고 친절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지나갔다.
은영은 선수가 자신의 그런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거 같아 가끔은 서운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자신이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겠지 하고 자연스럽게 넘겨버렸다.
"선수~ 일찍 나왔네"
"네. 이성재 대리님. 출근하셨어요?"
"이제 수습기간도 지나고 일할만하지?"
"아직은 많이 부족하죠. 하하하"
"옆에서 보니까 자잘한 실수도 있지만 그 정도면 많이 발전한 거 같아. 이제는 단순히 조합원님들 돈을 수금하는 단계에서 한 단계 더 발전된 업무를 해봐"
"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응. 거래처 다니면서 고객님들에게 '공제'도 조언드려"
"공제라면... 무얼 말씀하시는데요?"
"아~ 아직 그걸 안 가르쳐 줬네. 보통 보험회사에서 파는 상품을 보험이라고 하는데. 우리처럼 은행에서 파는 상품은 명칭을 '공제'라고 불러. 이제는 업무가 어느 정도 파악됐으니 고객님들에게 공제도 팔아봐. 공제 같은 경우는 실적 제라 많이 파는 만큼 인센티브로 자네 수당도 올라가니까. 많이 팔아서 전국 순위권에 들면 해외여행이나 황금열쇠도 받을 수 있어"
"우와~ 정말요? 황금열쇠요?"
"그래. 황금열쇠. 나도 작년에 전남지역 1위 해서 하나 받았지. 아주 쏠쏠하다니까. 이게 그거야. 하하하"
성재가 웃으며 목에 걸려있는 묵직한 목걸이를 보여줬다. 상품으로 받은 황금열쇠를 녹여 자기 스타일에 맞는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다녔다. 어쩐지 가끔 성재가 목걸이 자랑을 하더니 그게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네.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하하하"
선수도 황금 열쇠에 욕심이 생겼다. 자기도 꼭 타서 엄마에게 멋진 금 목걸이를 해드리고 싶었다.
은영에게서 오늘 쓸 현금을 찾아 검은 가방에 넣었다. 이성재와 같이 현관 앞에서 전자담배를 한대 피운 후 오늘도 안전 운전하라는 말을 하고 방구의 스트롤을 당겼다.
몇 군대 거래처를 돌고 이번엔 화려한 장식이 되어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수 씨"
"네. 안녕하세요. 역시 우리 미용실 샘들은 얼굴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예쁘다니까. 하하하"
여기저기서 상큼한 목소리의 아가씨들 인사가 쏟아졌다. 선수가 이제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넉살 좋게 인사를 받으며 말을 건넸다.
이번에 들린 거래처는 해피 저축은행 근처에 있는 미용실이었다. 미용실 이름은 [성화 미장]이다. 처음 이성재 대리에게 인수인계를 받을 때부터 다닌곳이라 대부분의 직원들과 친분이 쌓여있었다. 한 명의 원장님과 3명의 디자이너와 스텝이 있었다. 처음엔 전부 여자들이라 많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자 원장님은 누나 같고 나이 어린 직원들은 여동생 같았다. 미용실이 한가할 때면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농담도 주고받는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긴 하지만 한낮에 오토바이를 타고 돌기엔 무더운 날씨 었다. 하얀색 반팔 와이셔츠도 땀으로 젖어 있었다.
"누가 선수 씨 시원한 주스 한잔 드려라~ 땀을 너무 흘린다."
"네~"
원장이 직원에게 말하며 선수에게 말을 건넸다.
"선수 씨는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려면 힘들겠다."
"날씨가 아직은 덥네요. 하하하. 오늘은 매장이 조금 한가 하네요?"
"낮에는 아직 더운지 사람들도 안 돌아다니고 손님도 별로 없네~ 선수 씨가 고생이지 이 더위에 돌아다니려면"
"저한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하"
"선수 씨는 아직 젊네 젊어~ 호호"
매장 안의 작은 냉장고에서 스텝으로 보이는 직원이 쟁반에 얼음을 띄운 오렌지 주스를 한잔 가지고 왔다. 선수는 미용실 원장과 대화를 하며 스텝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자마자 선수의 몸은 굳어버렸다.
"안녕하세요~ 여기 시원한 주스 한잔 드세요~"
"앗! 네... 네..."
갑자기 선수가 말을 더듬었다. 쟁반 위에 있는 컵을 선수에게 건네는데 컵을 받는 선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처... 처음 뵙는 분이시네요...."
"아~ 저요?"
"네..."
"저는 오늘부터 출근했어요."
"네... 하긴 제가 어제도 나왔는데 안보였으니까..."
선수의 목소리도 떨리는 손처럼 미세하게 떨려왔다.
"아~ 선수 씨. 우리 리에 처음 보겠네. 우리 샾에 막내 스텝인데. 새로 들어왔어. 오늘부터 출근했어. 예쁘지? 하하. 며칠 전에 면접 봤는데 얼굴도 예쁘고 삭삭하니 일 잘할 거 같아 바로 뽑았어. 선수 씨도 잘 지내봐"
"네... 네... 그렇군요. 원장님~"
원장의 말에 대답을 하는 선수의 목소리가 처음 미용실에 들어와 인사할 때와는 다르게 살짝 주눅이 들어있었다. 원장의 말대로 리에라는 새로 들어온 젊은 직원은 너무 예뻤다. 긴 생머리 하며,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에는 광채가 났다. 청바지에 하얀색 티만 입고 목에 미용실 가운을 둘렀지만 그녀의 미모는 숨길 수 없었다. 오렌지 주스를 건네며 수줍게 미소 짓는 얼굴에 선수는 온몸이 마비되는 줄 알았다. 처음 몸을 돌려 그녀를 봤을 때 '와~'라는 말이 입에서 무의적으로 뿜어져 나오려고 하는 걸 간신히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