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 선수 또 다른 그녀......(3)
효라빠 장편 소설 26회
선수가 방구를 타고 미용실 근처에 도착했다.
일단 안 보이는 쪽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깊은 심호흡을 했다. 어제는 그렇게 리에가 보고 싶었는데 막상 미용실로 들어가려니 긴장돼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귀까지 울렸다.
'아~ 떨려~ 어떻게 들어가지~'
주머니에 전자담배를 꺼내 물었다. 방구에게 말을 걸었다. 방구는 아무 말 없이 선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도 어쩔 줄 모르겠다고? 아... 막상 들어갈려니 왜 이리 긴장되냐? 휴~'
그 자신감 넘치던 선수는 어디 가고 쫄보 김선수만 남아있었다.
'일단 들어가 보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지...'
문을 열기 전 유리창 안으로 본 미용실은 낮시간이라 손님이 없었다. 직원들은 여유롭게 자기 시간을 갖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해피 저축은행에서 나왔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선수 씨 왔어?"
직원들과 미용실 원장 목소리가 섞여 여기저기서 듣기 좋은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른 거래처는 모르겠는데 미용실을 방문할 때면 항상 주눅이 들곤 했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멋스러운 직원들 왠지 모르게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네. 원장님. 오늘도 왔습니다. 하하하"
기분은 주눅이 들었지만 그러지 않은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여자 원장과 이야기를 하는 척하면서 슬쩍 미용실을 둘러봤다. 리에를 찾기 위해서였다. 홀을 한 바퀴 둘러봐도 리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원장에게 통장을 건네받고 카운터에서 검은 돈가방을 깔고 통장정리를 했다. 일을 마무리하고 통장을 원장에게 건네려고 하는데 뒤에서 선수를 부르는 야들야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 한잔 드실래요? 아니면 시원한 거로 드릴까요?"
선수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리에였다.
"아~ 네! 네! 네! 감사합니다. 아무거나 주세요. 하하하"
"방금 제가 원두를 내렸는데 커피로 드실래요?"
"네~ 네~ 그것도 좋겠네요. 하하하"
시원한 게 당기긴 했는데 리에를 보고 당황한 입에서는 무조건 '네~ 네~'만 흘러나왔다. 은은한 커피 향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리에가 예쁜 잔에 향긋한 원두커피를 담아 선수에게 건넸다.
"뜨거우니 천천히 드세요~"
"네."
대답은 했지만 긴장한 선수는 커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흡~' 커피를 입에 머금자 선수의 코에서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커피는 너무 뜨거웠다. 뱄어야 할지 삼켜야 할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광이 반들반들 나는 미용실 바닥에 차마 뱉을 수는 없었다. 바닥을 더럽히는 것보다 자신의 이미지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미친척하고 꿀떡 삼켰다.
"괜찮으세요? 안 뜨거우세요?"
"괘... 괜... 괜찮습니다. 하하하" 선수의 입에선 괜찮다는 말이 나왔지만 식도는 타들어 가는 거 같았다. 그 순간 정신력으로 버텼다. 너무 뜨거웠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으려고 노력했다.
갑자기 군대에서 유격훈련받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교관이 체력이 안되면 정신력으로 버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말이 생각나다니... 그 짧은 순간에 군대의 씁쓸한 추억으로 기분까지 쓰라렸다.
"방금 끓인 거라 뜨거울 텐데? 정말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습니다" 선수는 괜찮다고 했지만 머리에서 흐리는 식은땀이 볼을 타고 내리는 게 느껴졌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잔을 들고 쾌활하게 웃었다.
옆에 서 있던 원장도 선수가 걱정돼서 괜찮냐고 물었다.
선수는 꿋꿋한 목소리로 '괜찮습니다'를 외쳤다. 한 발을 짝다리로 집고 서서 더 태연한 척을 했다.
여기서 고통스럽게 보이면 리에에게 잘 보이긴 틀렸다고 생각했다.
유격 교관이 악을 쓰며 나불거렸던 '정신력은 이럴 때 쓰는 거야!' 란 말을 한 번 더 속으로 대뇌였다.
식도를 타고 내려온 뜨거운 원두커피는 위속에서 머물고 있는지 배속까지 불이 나는 듯했지만 태연한 척 리에에게 말을 건넸다.
"리에씨가 주시는 거라 커피 향이 아주 제대 론데요. 정말 향긋하고 맛있네요. 하하"
"아~ 그러세요? 다행이네요. 제가 그리 커피를 잘 내리진 못하는데."
"아이고 무슨 말씀을 이 정도면 최고의 바리스타입니다. 하하하. 출근한 지 며칠 안돼서 많이 어색하시죠?"
"네. 아직 적응이 안 돼서 조금 그러긴 해요"
선수가 갑자기 말을 돌렸다.
"그럴 수 있겠네요. 뭐 궁금한 거 있으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미용실은 제가 더 선배니까요. 킥킥킥"
"그러네요. 호호"
리에도 선수의 농담을 받아줬다.
"선수 씨는 매일 이렇게 오토바이 타고 다니시려면 힘드시겠어요?"
"뭐 이 정도야 할만합니다. 요즘 날씨가 더워서 그렇긴 하지만... 리에씨가 손님들 비위 맞추고 하려면 더 힘들 거 같은데요? "
"네~ 저도 이제 시작하는 입장이니까 배운다는 생각으로 하려고요"
"그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하하"
"이거 제 명함인데. 혹시 은행일 보실 거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제가 신속하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네. 아직은 특별히 필요한 일이 없는데 혹시 있으며 연락드릴게요."
"아~ 혹시 급여통장은 만드셨어요? 없으면 저희 은행으로 하실래요? 사회 초년생 우대 통장이 있는데 저희 걸 사용하시면 예금 금리도 높고 나중에 혹시 돈이 필요해 대출을 원하시면 좀 더 낮은 대출 금리로 사용하실 수 있어요."
"그래요? 그럼 하나 만들어 주세요."
"네. 그럴게요."
선수가 가방 한쪽에서 통장 개설 신청서를 꺼냈다. 리에는 해피 저축은행 출자 통장도 만들고 사회초년생 우대 통장도 만들었다.
"리에씨도 이제 제 고객이니 제 폰에 연락처 저장하겠습니다. 하하하"
"네. 편할 데로 하세요"
선수가 자연스럽게 리에의 연락처를 폰에 저장시켰다. 신청서의 리에 연락처를 스마트폰에 저장시키는데 손이 떨렸다. 기분이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었는데 참느라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뜨겁던 식도와 위장은 사랑의 힘으로 자연치유가 됐는지 전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리에씨? 제가 고객관리 차원에서 수시로 고객님들께 연락도 드리고 하는데 괜찮죠?"
"네. 그 정도는 괜찮아요"
선수는 지금까지 고객들에게 단 한 번도 연락을 드린 적이 없었다. 그건 뻥이었다. 그 뻥을 치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입가에는 과하지 않은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리에를 쳐다보고 있었다. 작업이 성공한 거 같아 함박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최대한 막고 있었다. 어금니까지 깨물었지만 볼에 근육은 무의식적으로 실룩실룩거렸다.
'그래 유격 교관이 말하는 정신력은 이럴 때 쓰는 거지~킥킥킥' 아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갑자기 그렇게 꼴 보기 싫던 악바리 유격 교관까지 용서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역시 사랑의 힘이 크다는 걸 새삼 느꼈다.
커피잔을 들고 리에와 건배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남은 원두커피를 시원하게 들이켜고 직원들에게 고생하라는 말을 남기고 선수는 미용실의 문을 열었다. 그의 모습은 전장에서 승리한 개선장군 같았다. 십여 분전 들어갈 때 주눅이 들어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아프리카 열대 밀림에서 목에 털이 수북한 멋진 수사자가 되어 많은 암사자를 거느리는 밀림의 왕 같은 거친 사자의 포스가 느껴졌다.
당당하게 걸어 나와 근엄한 자세로 몇 발자국을 걸었다. 골목을 돌아 미용실이 안보이자 선수가 바로 소리를 질렀다.
'으아~~ 됐다! 아자! 아자! 하~하~하~'
오른손에 힘을 불끈 쥐고 허공에 어퍼컷을 달렸다.
'방구야~ 연락처를 땄다. 푸하하하. 이제 반은 된 거라고! 하하하. 방구야 왠지 느낌이 너무 좋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거 같은데 하하하'
방구도 '부릉~ 부릉~ 부릉~'거리며 선수를 바라봤다.
'너도 좋다고? 크크크 그럼 인마! 이 형님이 이렇게 큰 건수를 했는데 너두 좋아야지. 킥킥킥'
선수가 소리를 지르며 방구의 안장을 쓰다듬었다. 사랑스러운 애완견의 털을 쓰다듬듯 아주 부드럽게 살살 쓰다듬었다.
'방구야~ 이 형님도 이제 연애를 좀 해봐야 하지 않겠니? 킥킥킥'
'부릉~ 부릉~ 부릉~'
방구도 흔쾌히 대답을 했다.
선수의 얼굴엔 미용실에서 꾹 참았던 정신력이 무장해제되고 입술이 귀에 걸렸다. 지나가는 사람이 바보처럼 볼 수 있었지만 그 순간은 바보가 되고 싶었다. 함지박 만한 크나 큰 미소를 머금은 채로 스트롤을 당기고 다음 거래처로 달렸다.
"리에야~ 통장 만들었어?"
"아까 직원분이 하나 만드라고 해서 만들었어요"
"그래. 잘했어. 근데 선수 씨가 너한테는 엄청 친절하더라?"
"네? 원래 친절하신 분 아니세요?"
"뭐~ 평상시에도 친절한 사람이긴 한데. 너한테는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거 같던데. 하하."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원장이 카운터를 정리하며 리에에게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선수 씨 목은 괜찮나 모르겠네. 아까 보니 커피가 엄청 뜨거워 보이던데. 킥킥"
"그러게요. 원장님! 선수 씨 커피 들이켜고 이 악무는 거 보셨어요? 호호호"
옆에 다른 직원이 원장에게 웃으며 말했다.
"너도 보이든? 리에 앞이라고 더 악무는 거 같던데. 옆에서 보니까 식은땀까지 흐르더라 호호호. 왠지 리에 너한테 호감이 있는 거 같은데... 거래처 관리한다고 연락처를 저장하는 것도 이상하고."
"다 그렇게 하겠죠..."
리에가 얼버무렸지만 그녀의 얼굴도 살짝 불그스레 해졌다. 원장과 직원들의 농담에 대충 대답했지만 리에도 그리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선수는 자기가 정신력으로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당황하는 모습이 직원들에게 다 들킨듯했다.
"리에는 남자 친구 있어?"
"아뇨. 없어요."
"그래? 그럼 잘됐네. 하하 선수 씨 괜찮아 보이던데 잘해 봐"
"글쎄. 저는 아직..."
"선수 씨 우리 가게 다닌 지 몇 개월 됐는데 인사성도 좋고 성격도 밝아 그리고 유머 감각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 거 같아서 안 그래도 선수 씨 여자 친구 없다고 하길래 좋은 사람 있으며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우리 가게 직원들은 전부 남친이 있더라고."
"네..."
원장의 말에 리에는 대충 얼버무리고 말을 맺었다. 그렇지만 그리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선수가 좋아하는 거 아냐는 원장의 말에 발그레진 볼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카운터 위에 올려진 조합원 가입서 담당자 란에 써진 김선수란 이름이 갑자기 크게 와닿았다.
'은영, 선수 또 다른 그녀(4)'가 계속됩니다.
(월, 금요일 주 2회 올릴 계획입니다. 바쁘면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