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잔

by 효라빠

주름지고 갈라진 손으로 건네받은 잔 속에

차고 뜨거운 것이 가득 담겨있다

늙고 말라비틀어져 버린 나무옹이가 떠올라

순식간에 털어 넣어 버렸다


잊힐 줄 알았는데

목을 타고 내려가며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먹먹한 마음에 눈을 감아 보지만

쓰디쓴 아버지의 인생이 나를 때린다


비어버린 투명한 유리잔에 낯 설은 모습이 비친다

각 잘 잡힌 바지단 같았는데

이제는 매선 바람에 나부껴 풀어헤쳐진 검은 전깃줄 위의 빨래가 되었다

힘없이 찰랑찰랑 흔들리는 모습에 잔을 내려 놀 수가 없다


비어있는 잔을 채워야 하는데

받았던 만큼은 아니더라도 채워야 하는데

그럴 수 없음이 나를 또 때린다


아쉬움을 삼키며 내려놓은

빈 잔엔 여전히

고요하고 뜨거운 것이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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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버지와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받으시는 손에 주름이 보였습니다.

주름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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