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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따듯한 살인. 12 (효라빠 장편 소설)

by 효라빠

닫혀있던 철문이 소리 없이 열리자 검은 발자국이 좁은 독방의 마루를 밟았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트렸다.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던 남자의 몸도 스스로 놀라 멈춰 섰다. 모든 게 잠들어 있는 교도소 감방에서 나무 마루의 작은 소리는 쉽게 사그라 지지 않았다. 회색 모포 위에 잠들어 있는 청색 수의를 입은 사람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긴장되어 멈춰 섰던 남자의 두 다리가 다시 움직였다. 차디찬 마루지만 깊은 잠에 빠저 든 수용자는

평온해 보였다. 얕은 숨소리와 함께 가슴 위를 덮고 있는 담요만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오르락내리락거렸다.

그를 내려다보던 남자는 주머니 속에서 하얀 뭉치를 꺼냈다. 말아진 것을 펼치자 끈이라고 하기에 투박한 줄이 나왔다. 속옷을 가늘게 찢어 묶은 매듭이었다. 그는 잠들어 있는 자의 목 쪽으로 소리 없이 다가갔다. 두 손이 떨리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남자는 잠들어 있는 그의 목을 감싸고 있는 모포를 살짝 들췄다. 아무 움직임 없었다. 여전히 가슴 위를 덮고 있는 모포만 미세하게 움직였다. 남자가 끈의 한쪽을 목 밑으로 넣기 위해 손을 뻗었다.

'뚜벅~ 뚜벅~ 뚜벅...'

둔탁한 구두 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몇 번 들리고 쉬고, 몇 번 들리고 쉬고 일정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사동 순찰을 도는 근무자가 방 앞에서 수용자의 동태를 확인하고 걸어가는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긴장되어 고개를 숙이자 순간 이마에 맺혀있던 식은땀이 수용자의 얼굴에 떨어졌다. 잠에 취해 있지만 표정이

찡그려지며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떨어진 땀을 손바닥으로 닦아냈다. 그리곤 몸을 돌려 새우처럼 웅크려 들었다. 지켜보던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뚜벅~ 뚜벅~ 뚜벅~'

이제 소리는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들려왔다. 교도소 독방은 남자의 몸을 숨길 만큼 넓지 않았다. 근무자에게 발각되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최대한 몸을 웅크려 철문 밑으로 쪼그려 앉았다.

밖에서 들리던 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고 근무자의 시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남자의 심장이 꿍꽝거렸다. 자신의 몸이 보이는 것보다 심장소리가 들릴까 봐 걱정을 해야 할 만큼 심장은 요동쳤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깊은 밤의 적막 속으로 서서히 묻혀 들어갔다. 참았던 숨을 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등 근육도 긴장했는지 미세한 경련이 느껴졌다. 손에 쥐고 있던 끈을 늘여 트렸다. 그리곤 다시 잠들어 있는 수용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웅크리며 모포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남자는 천천히 모포를 내렸다. 얼굴이 나왔다. 어린 여자 아이들은 납치해서 감금하고, 성폭행을 저질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었다. 피해자 중에 한 아이는 성기와 항문에 이물질을 넣고 장난을 쳐 자궁이 파열되고 인공 항문 수술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고서도 교도소에서 당당하게 생활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본인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근무자들을 괴롭혔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 보다 더 잔인하고 더러운 범죄자였다. 남자는 죄에 맞는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 쓰레기가 살아 있는 건 신도 그렇게 하지 못한 거라 판단했다. 그러면 자신이 그걸 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제 내가 널 심판해 주겠다.'

혼잣말하며 들고 있는 끈을 목밑으로 넣었다. 수용자는 잠들어 있어 느끼지 못했다.

남자가 목에 감긴 끈을 있는 힘껏 당겼다.

'커컥... 켁...'

목에서 묵직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리곤 눈을 부릅 떴다. 미세 혈관들이 터지며 투명한 유리컵에 빨간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흰자위가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갔다. 남자는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사... 살려... 주... 컥컥...'

숨을 쉬지 못해서인지 살려주라는 말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아냐. 너는 죽어야 해."

"사.. 살려..."

남자는 더 힘껏 줄을 당겼다. 팔뚝의 미세한 근육까지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에서 쥐가 나는지 저려왔다.

"나를 원망하지 마. 신을 탓해. 신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하는 거니까."

남자는 이를 악물며 몇 마디 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수용자의 두 팔이 남자의 손목을 잡아 뜯었다. 마지막 발악인 듯 남자의 손등을 할퀴었다. 남자의 손에서 쓰라림이 느껴졌다. 더 힘껏 당겼다. 물밖로 나와 파닥거리던 물고기가 산소 부족으로 지느러미가 늘어지듯 미친 듯이 움직이던 다리가 축 쳐졌다. 수용자는 서서히 기절해 갔다. 거기서 끈을 풀면 마무리가 안되다는 걸 남자는 알고 있었다. 심장이 뛰는 게 잡고 있는 줄에서 미세하게 느껴졌다. 멈출 때까지 더 기다려야 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미세하게 뜨고 있던 눈이 완전히 감기고 할퀴고 있던 손의 움직임이 없어졌다.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있던 목도 맥없이 풀어져 버렸다.

'잘 가라. 네가 교도소 안에서 반성하는 모습만 보였더라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 더러운 쓰레기 새끼.'

마지막 말을 남기며 남자는 잡고 있는 끈을 놓았다. 수용자는 바닥에 깔려있는 회색 모포 위로 툭 떨어졌다. 옆에 놓여있는 화장지로 숨이 끊긴 자의 손톱에 끼어있는 핏물을 닦았다. 그리곤 늘어져 있는 몸뚱이를 들었다. 숨이 멈췄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이 기분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속옷으로 만든 노끈을 철문에 달려있는 쇠창살 사이로 끼워 넣었다. 그리곤 숨이 끊긴 자의 목을 철문에 걸고 엉덩이를 바닥에 앉혔다.

교도소에서 자살하는 모습은 다양했다.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서 죽기도 했고, 심지어 누워서 자신의 목에 끈을 감고 볼펜으로 서서히 조여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철문 쇠찰상에 끈으로 목을 걸고 앉아있는 자세가 누군가 특별히 관심 갖지 않는다면 자살로 보일 거 같았다. 계획을 마무리하고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이 없는지 확인한 후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는 소리 없이 사라졌고 깊은 어둠과 한 몸이 되었다.


"각방~ 점검!"

새벽 6시 30분 기상 음악이 나오고 인원 점검을 하면서부터 교도소의 하루가 시작됐다. 야간의 피로가 사라지지 않았지만 야간 근무자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복도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칼칼한 외침은 몇십 미터 끝에 있는 마지막 방까지 울려 퍼졌다. 방안에 있는 수용자들은 기상 음악이 나오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습관처럼 모포와 침구를 정리하고 책상다리를 한 후 열 맞춰 점검 준비를 했다.

"1방!"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번호 끝."

"2방!"

"하나, 둘. 번호 끝."

점검은 앞방부터 순서대로 시작됐다. 군대 점호를 보는 듯했다.

"11방!"

"......"

혼자 생활하는 독방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복도의 근무자가 한번 더 외쳤다.

"11방, 번호!"

"......"

여전히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뭐야?"

점검관이 수용자들 점검 준비도 안 시켰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근무자를 쳐다봤다. 인기척이 없자 근무자도 당황스러웠다. 기상을 하지 않고 잠들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철문의 쇠창살이 쳐진 시찰구로 방안을 내려다봤다.

'어! 뭐지!'

혼잣말을 하던 근무자가 시찰구에 붙어 다시 방안을 들여다봤다.

"뭔데 그래?"

중앙에 서서 근무자를 보고 있던 점검관이 물었다.

"큰일 났습니다. 자살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

근무자가 황급히 말하며 주머니에서 키를 꺼냈다.

"뭐라고?"

점검관도 근무자 옆에서 시찰구를 들여다봤다. 방 안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각을 잡고 앉아 있어야 할 수용자가 보이지 않았다. 문의 쇠창살에 감긴 하얀색 메리야스 끈이 보이자 근무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야! 문따!"

"알겠습니다."

점검관이 지시하기 전부터 근무자는 문을 열고 있었다. 문이 밖으로 열리자 청색 관복을 입은 수용자가 축 늘어진 채 문을 따라 복도로 매달리며 흘러나왔다. 한쪽 팔이 힘없이 덜렁 거렸다.

"자살방지용 칼 있지? 빨리 잘라"

"네."

근무자는 열쇠꾸러미에 있는 자살방지용 칼로 속옷으로 만든 끈을 자르기 시작했다. 투박하게 묽은 매듭이 쉽게 잘리지 않았다. 그사이 점검관은 통제실로 연락을 취했다. 직원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끈이 잘리자 목이 묶여있던 수용자의 몸이 축 늘여졌다.

"심폐소생술! 빨리빨리 심폐소생술!"

점검관이 외쳤고 근무자는 가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직원들이 도착했고 들것에 실려 보안과에 대기 중이던 구급차로 옮겨졌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외부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달렸다.

들것을 들고 뛰어가던 직원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손이 있었다. 손등이 손톱으로 할퀴어 살갗이 벗겨진 자국이 선명했다. 그 손의 주인도 다른 직원들과 함께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심신이 복잡해 조금 늦어졌습니다. ㅎㅎㅎ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보안과 사무실은 어수선했다. 담당 근무자부터 야간부 당직계장까지 모든 근무자가 병원으로 나간 수용자의 상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외부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용자가 사망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의사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부터 심정지 상태였다고 진단했다. 직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당직계장이 사동 담당근무자에게 근무보고서 써오라고 지시했다. 근무자는 보고서를 쉽사리 작성하지 못했다.

처음 발견 했을 때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보고서 제출이 늦어지자 당직인 강계장은 이재순 부장을 보안과로 불렀다.

"왜 아직도 근무보고서를 안 올리는 거야? 지금 지방청에 정보 보고하고, 보안과장님과 소장님 출근하면 대면 보고 해야 하니 빨리 작성하라니까?"

냉랭한 강계장의 목소리는 질책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교도소에서 가장 크게 여기는 3대 사고가 있다. 도주, 화재, 자살이다. 그중에 하나인 자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해당 근무자들의 순찰 미실시나 근무 태만 등 모습이 보이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야간 팀의 총책임자로 당직 근무 시 소장의 권한을 대리하는 당직계장 본인도 해당될 수 있어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녹아 있었다.

"... 그게 좀 애매한 상황이 있어서 그럽니다."

재순이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애매한 상황이라니? 야간 순찰을 제대로 안 돈 거 아냐?"

"순찰은 시간 맞춰 돌았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럼 뭐가 문제야?"

재순의 뭉그적 거림이 짜증 났는지 당직계장이 소리쳤다.

"외관으로 보기엔 자살처럼 보이지만 조금 특이한 게 있습니다."

"특이한 거라니?"

자살사고 매뉴얼을 확인하고 있던 당직계장이 준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문의 쇠창살에 목이 걸려 자살을 했다면 목 밑으로 빈틈없이 끈이 감겨있어야 할거 같은데 약간의 틈이 있었습니다. 거기다 발버둥 친 흔적도 보였습니다. 법의학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히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상식적으로 뭔가 맞지 않는 게 있었습니다."

"그럼 자살이 아니라는 거야?"

"글쎄. 아니라고 말하기도 뭐 하고 조금......"

재순이 확실하게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끝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교도소 감방에서 사람이 목매 죽었고, 그게 자살이 아닌 거로 보인다. 그러면 살인이라는 뜻이잖아?"

"저도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느낌이 조금 이상하다는 겁니다."

"복도에 있는 cctv카메라로 누가 방에 들어갔는지 확인해 보면 알겠지. 들어간 사람이 없다면 자살이 확실한 거고 그 시간에 사람이 들어간 게 보이면 조사해서 찾으면 되는 거고."

"그렇겠죠."

당직계장은 통제실 근무자를 불렀다. 분위기가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통제실 근무자가 신속하게 뛰쳐나왔다.

"박주임. 사망사고 발생한 곳의 cctv영상 확인해 봐. 방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는지"

"그게... 통제실의 녹화 시스템이 며칠 전에 고장 나 야간에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뭐? 고장 났다고?"

"네."

"젠장. 그럼 복도 상황을 일절 볼 수 없는 거야?"

"그렇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이거 벌써부터 피곤한 소리가 들리는데. 그런 건 바로 수리해야지 왜 고장 난 상태로 둔 거야?"

"복지과에 수리 신청은 했는데....."

말을 잘못하면 복지과 담당자도 피곤해질 것 같아 통제실 근무자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알았어. 알았어"

당직 계장이 짜증 났는지 말을 끊었다.

"그건 자네가 순간 긴장해서 잘못 봤을 수도 있어. 생각해 봐 그 새벽 시간에 수용자들은 다 잠들어 있고, 설령 잠들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사동 밖으로 나올 수 없잖아. 그렇다면 직원 밖에 없는데 직원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리고 끈을 목에 걸어 자살한다는 게 꼭 높은 곳에서 매달리듯 죽는 건 아니야. 앉아서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누워서도 가능해. 그럴 때는 자국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

"그러게요. 제가 놀라서 잘못 본 거 같습니다."

당직 계장의 말에 준석이 대답했지만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단 그 점도 보안과장님께 보고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자네가 경험이 없어서 그랬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보안과장이 출근하자 강계장은 새벽에 있었던 사고에 관해 대면 보고를 했다.

"과장님 야간 근무 중 1동 하층 12방에서 자살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뭐라고? 자살 사고요?"

보안과장이 당황해서 물었다. 젊은 나이에 관직에 들어와 남들보다 빠른 승진을 한 보안과장은 서기관 승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과장에게 자살사고는 자신의 진급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큰 사고였다. 그는 매사에 신중하게 직원들을 관리하고 업무를 처리했다. 좋게 말해 신중한 거지 사소한 거 하나까지 터치하는 피곤한 스타일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자살사고가 발생했다는 말은 천천병력 같은 소리였다.

"아니 근무자는 뭘 했길래 수용자가 자살합니까? 설명해 보세요"

"담당 근무자는 규정에 맞게 사동 순찰을 돌았습니다. 순찰을 돌고 지나가는 사이에 속옷을 잘라 만든 끈으로 쇠창살에 목을 감아 앉은 채로 자살한 것 같습니다. 기상 점검하는 과정에서 발견했습니다."

강계장이 사건 현장 사진이 첨부된 경과보고서와 실제 사용했던 끈을 직접 과장에게 보여주며 설명했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아 머리가 희끗희끗한 강계장은 얼핏 봐도 자기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보안과장에게 쩔쩔매고 있었다.

"어떻게 점검할 때까지 발견 못 할 수가 있습니까? 그건 근무태만 아닌가요? 규정에 맞게 순찰을 돌았다고 하지만 이건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보안과장이 강계장이 건넨 보고서를 들고 소리쳤다.

"수용 관리 인원이 많아서...... 약간의 미흡한 점도 있었긴 합니다."

강계장은 여전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애매하게 변명했다.

"자살한 수용자는 어떤 수용자입니까?"

"젊은 여성들을 혼자 사는 원룸을 침입해 강간을 저지른 수용자입니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되어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동종 전과도 있었으며 20년 형을 선고받아 잔형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규율위반행위로 인해 징벌도 수회 받았고 직원 폭언으로 징벌 처분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사건내용도 지저분합니다. 보고서 넘겨 보시면 해당 수용자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장기형으로 인한 심적 불안감 때문에

자살하지 않았나 추정됩니다."

보안과장은 강계장의 설명을 들으며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죽을 놈이 죽긴 했네..."

그 말을 듣자 강계장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일단 현장으로 가봅시다."

"알겠습니다."

보안과장과 당직계장을 포함한 몇몇 직원들이 사건 발생 현장으로 갔다. 수용자 자살 사고가 일어났던 방에는 출입금지 라인이 둘러져 있었다. 보안과장은 줄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차디찬 마루 바닥에는 수용자가 덮고 잤을 모포와 침구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여기 쇠창살에 목을 걸었다는 말이죠?"

보안과장이 성인 가슴 높이 되어 보이는 철문의 쇠창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그럼 목에 줄을 걸고 바닥에 앉아서 자살했다는 말인가요?"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제가 수십 년 간 경험한 바로는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

보안과장은 의구심이 드는지 바로 생각에 잠겼다.

"자살했다는데 침구류가 왜 이렇게 정신없이 펼쳐져 있나요?"

"사동 근무자가 줄을 자르고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

보안과장은 여전히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옆에는 담당 근무자인 재순이 서 있었다.

"이 부장이 담당이었다고?"

"네."

"현장에서 특이점은 없었어?"

"그게..."

재순이 당직계장 눈치를 보며 뜸 들였다.

"괜찮아, 말해봐. "

"수용자 목에 감긴 끈이 목 보다 조금 아래쪽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재순이 당직 계장의 눈치를 보며 당직계장에게 설명할 때와는 다르게 짧게 말했다.

"조금 아래쪽에 있었다는 게 무슨 말이야?

보안과장이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목을 감아 자살을 하려면 사람이 줄에 매달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목위, 턱 밑까지 줄이 당겨 있어야 하는데 제가 처음 발견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을 듣고 있던 보안과장이 옆에 서 있는 당직계장에게 물었다.

"당직계장님은 이 부장 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살에는 정형적인 방법이 없었습니다. 각기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 경우 같이 자살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누워서 목매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살이라는 말이죠?"

"아마도 자살밖에 없다고 봐야죠. 야심한 시각에 혼자 생활하는 독거실에서 살인이 발생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네요."

과장도 당직계장과 같이 자살로 단정 짓고 설명을 들었다. 더 파헤쳐 보려는 의지도 없어 보였다.

"복도 cctv는 확인해 봤습니까?"

"그게. 통제실의 cctv 카메라 녹화 시스템이 고장 나 수리 중이었습니다."

"그럼 영상이 없다는 말인가요?"

"현재 상황으로는 그렇습니다."

"이런... 당직계장님 병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했다고 진단서에 적혀 있습니다."

당직계장이 보안과장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젠장."

보안과장이 병원에 도착 전 사망했다는 말이 귀에 거슬린 듯 짜증스럽게 말했다.

"가족은 어떻게 됩니까?"

"부인과는 이혼했고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연락됐습니까?"

"보안 서무가 통화했는데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해도 특별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목안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으니 올 수 있냐고 물었는데 오늘은 힘드니 며칠 있다 들린단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가 죽었는데 그따위 소리를 합니까? 아들 맞습니까?"

보안과장이 어이없어했다.

"아버지라고 하지만 범죄 내역도 그렇고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겁니다. 가정을 잘 챙기고 아들을 살뜰히 보살폈으면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하는데 아들이 그렇게 전화받진 않겠죠"

"우리 입장에서는 잘 됐네요.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큰 관심이 없어야 사고 수습이 순조롭게 되니까. 일단 검찰에 수용자 자살로 보고하세요."

현장에서 얘기하던 보안과장과 당직계장 그리고 몇몇 직원들의 대화는 자살로 마무리가 되어 갔다.

"보안과장님 혹시 이게 자살이 아니면 어떡하죠?"

옆에서 듣고 있던 재순이 대화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이게 어떻게 자살이 아닐 수 있어. 당연히 자실이지. 그럼 누가 죽이기라도 했다는 말이야? 한밤중에 수용자가 문을 열고 나올 수도 없는데 그럼 우리 직원이 죽였다는 말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안 그래?"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해야 하는 보안과장의 입장에서 살인사건이라는 말은 자신의 앞길을 막는 거나 다름없었다.

"마... 맞습니다."

보안과에서 소장보다 더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보안과장의 말에 말단인 재순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직원들은 이번 일에 관해 함부로 발설하지 말고 보안 잘 지키기 바랍니다. 이 사건은 수용자들한테 들어가도 안되고 밖으로 새어 나가도 안됩니다. 당직계장님은 직원들 입단 속 철저히 시키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보안과장의 지시에 당직계장도 서둘러 답하고 마무리했다.


[글태기가 왔습니다. 이것도 잘 극복해야겠죠. 오늘 하루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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