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살인 26. (효라빠 장편 소설)
묵직한 철문이 열리고 검은 발자국이 좁은 독방의 마루를 밟았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트렸다.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던 남자의 몸도 놀라 멈춰 섰다. 모든 게 잠들어 있는 교도소 감방에서 나무 마루의 작은 소리는 쉽게 사그라 지지 않았다. 회색 모포 위에 잠들어 있는 청색 수의를 입은 사람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긴장되어 멈춰 섰던 남자의 두 다리가 다시 움직였다. 차디찬 마루지만 깊은 잠에 빠저 든 수용자는
평온해 보였다. 얕은 숨소리와 함께 가슴 위를 덮고 있는 담요만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오르락내리락거렸다.
그를 내려다보던 남자는 주머니 속에서 하얀 뭉치를 꺼냈다. 말아진 것을 펼치자 끈이라고 하기에 투박한 줄이 나왔다. 남성 메리야스를 가늘게 찢어 묶은 매듭이었다. 그는 잠들어 있는 수용자의 목 쪽으로 소리 없이 다가갔다. 두 손이 떨리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남자는 잠들어 있는 수용자의 목을 감싸고 있는 모포를 살짝 들췄다.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여전히 가슴 위를 덮고 있는 모포만 미세하게 움직였다. 남자가 끈의 한쪽을 목 밑으로 넣기 위해 손을 뻗었다.
'뚜벅~ 뚜벅~ 뚜벅...'
둔탁한 구두 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몇 번 들리고 쉬고, 몇 번 들리고 쉬고 일정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사동 순찰을 도는 근무자가 방 앞에서 수용자의 동태를 확인하고 걸어가는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긴장되어 고개를 숙이자 순간 이마에 맺혀있던 식은땀이 수용자의 얼굴에 떨어졌다. 잠에 취해 있지만 표정이
찡그러지며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묻어있는 땀을 손바닥으로 닦아냈다. 그리곤 몸을 돌려 새우처럼 웅크려 들었다. 지켜보던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뚜벅~ 뚜벅~ 뚜벅~'
소리는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들려왔다. 교도소 독방은 남자의 몸을 숨길 만큼 넓지 않았다. 근무자에게 발각되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최대한 몸을 웅크려 철문 밑으로 쪼그려 앉았다.
밖에서 들리던 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고 근무자의 시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남자의 심장이 꿍꽝거렸다. 자신의 몸이 보이는 것보다 심장소리가 들릴까 봐 걱정을 해야 할 만큼 심장은 요동쳤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깊은 밤의 적막 속으로 서서히 묻혀 들어갔다. 참았던 숨을 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등 근육도 긴장했는지 미세한 경련이 느껴졌다. 손에 쥐고 있던 끈을 늘여 트렸다. 그리곤 다시 잠들어 있는 수용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웅크리며 모포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남자는 천천히 모포를 내렸다. 수용자의 얼굴이 나왔다. 어린 여자 아이들은 납치해서 감금하고, 성폭행을 저질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었다. 피해자 중에 한 아이는 성기와 항문에 이물질을 넣고 장난을 쳐 자궁이 파열되고 인공 항문 수술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고서도 교도소에서 당당하게 생활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본인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근무자들을 괴롭혔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 보다 더 잔인하고 더러운 범죄자였다. 남자는 죄에 맞는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 쓰레기가 살아 있는 건 신도 그렇게 하지 못한 거라 판단했다. 그러면 자신이 그걸 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제 내가 널 심판해 주겠다.'
혼잣말을 하며 들고 있는 끈을 수용자의 목밑으로 넣었다. 수용자는 잠들어 있어 느끼지 못했다.
남자가 목에 감긴 끈을 있는 힘껏 당겼다.
'커컥... 켁...'
수용자의 목에서 묵직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리곤 눈을 부릅 떴다. 미세 혈관들이 터지며 투명한 유리컵에 빨간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흰자위가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갔다. 남자는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사... 살려... 주... 컥컥...'
숨을 쉬지 못해서인지 살려주라는 말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아냐. 너는 죽어야 해."
"사.. 살려..."
남자는 더 힘껏 줄을 당겼다. 팔뚝의 미세한 근육까지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에서 쥐가 나는지 저려왔다.
"나를 원망하지 마. 신을 탓해. 신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하는 거니까."
남자는 이를 악물며 몇 마디 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수용자의 두 팔이 남자의 손목을 잡아 뜯었다. 마지막 발악인 듯 남자의 손등을 할퀴었다. 남자의 손에서 쓰라림이 느껴졌다. 더 힘껏 당겼다. 물밖로 나와 파닥거리던 물고기가 산소 부족으로 지느러미가 늘어지듯 미친 듯이 움직이던 다리가 축 쳐졌다. 수용자는 서서히 기절해 갔다. 거기서 끈을 풀면 마무리가 안되다는 걸 남자는 알고 있었다. 심장이 뛰는 게 잡고 있는 줄에서 미세하게 느껴졌다. 멈출 때까지 더 기다려야 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미세하게 뜨고 있던 눈이 완전히 감기고 할퀴고 있던 손의 움직임이 없어졌다.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있던 목도 맥없이 풀어져 버렸다.
'잘 가라. 네가 교도소 안에서 반성하는 모습만 보였더라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 더러운 쓰레기 새끼.'
마지막 말을 남기며 남자는 잡고 있는 끈을 놓았다. 수용자는 바닥에 깔려있는 회색 모포 위로 툭 떨어졌다. 옆에 놓여있는 화장지로 숨이 끊긴 자의 손톱에 끼어있는 핏물을 닦았다. 그리곤 늘어져 있는 몸뚱이를 들었다. 숨이 멈췄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이 기분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메리야스로 만든 노끈을 철문에 달려있는 쇠창살 사이로 끼워 넣었다. 숨이 끊긴 자의 목은 철문에 걸고 엉덩이는 바닥에 대고 앉혔다.
교도소에서 자살하는 모습은 다양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서 죽기도 했고, 심지어는 누워서 자신의 목에 끈을 감고 볼펜으로 서서히 조여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철문의 쇠찰상에 끈으로 목을 걸고 앉아있는 자세가 누군가 특별한 관심만 갖지 않는다면 자살로 보일 거 같았다. 일을 마무리하고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이 없는지 확인한 후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는 조용히 사라졌고 깊은 어둠과 한 몸이 되었다.
"각방~ 점검!"
새벽 6시 30분 기상 음악이 나오고 인원 점검을 하면서부터 교도소의 하루가 시작됐다. 야간의 피로가 사라지지 않았지만 야간 근무자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복도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칼칼한 외침은 몇십 미터 끝에 있는 마지막 방까지 울려 퍼졌다. 방안에 있는 수용자들은 기상 음악이 나오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습관처럼 모포와 침구를 정리하고 책상다리를 한 후 열 맞춰 점검 준비를 했다.
"1방!"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번호 끝."
"2방!"
"하나, 둘. 번호 끝."
점검은 앞방부터 순서대로 시작됐다. 군대 점호를 보는 듯했다.
"11방!"
"......"
혼자 생활하는 독방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복도의 근무자가 한번 더 외쳤다.
"11방, 번호!"
"......"
여전히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뭐야?"
점검관이 수용자들 점검 준비도 안 시켰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근무자를 쳐다봤다. 인기척이 없자 근무자도 당황스러웠다. 기상을 하지 않고 잠들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철문의 쇠창살이 쳐진 시찰구로 방안을 내려다봤다.
'어! 뭐지!'
혼잣말을 하던 근무자가 시찰구에 붙어 다시 방안을 들여다봤다.
"뭔데 그래?"
중앙에 서서 근무자를 보고 있던 점검관이 물었다.
"큰일 났습니다. 자살사고가 난 거 같습니다."
근무자가 황급히 말하며 주머니에서 키를 꺼냈다.
"뭐라고?"
점검관도 근무자 옆에서 시찰구를 들여다봤다. 방 안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각을 잡고 앉아 있어야 할 수용자가 보이지 않았다. 쇠창살에 감긴 하얀색 메리야스 끈이 보이자 근무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야~ 빨리 문따"
"알겠습니다."
점검관이 지시하기 전부터 근무자는 문을 열고 있었다. 문이 밖으로 열리자 청색 관복을 입은 수용자가 축 늘어진 채로 문을 따라 복도로 매달리며 흘러나왔다. 한쪽 팔이 힘없이 덜렁 거렸다.
"칼 있지? 빨리 잘라"
"네."
근무자는 열쇠꾸러미에 있는 자살방지용 칼로 메리야스로 만든 끈을 자르기 시작했다. 투박하게 묽은 매듭이 쉽게 잘리지 않았다. 그사이 점검관은 통제실로 연락을 취했다. 직원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끈이 잘리자 목이 묶여있던 수용자의 몸이 축 늘여졌다.
"빨리 심폐소생술! 심폐소생술!"
점검관이 외쳤고 근무자는 가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직원들이 도착했고 들것에 실려 보안과에 대기 중이던 구급차로 옮겼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외부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달렸다.
들것을 들고 뛰어가던 직원들 중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손이 있었다. 손등이 손톱으로 할퀴어 살갖이 벗겨진 자국이 선명한 손이었다. 그 손의 주인도 다른 직원들과 함께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심신이 복잡해 조금 늦어졌습니다. ㅎㅎㅎ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