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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ㅅㄱ Jun 30. 2023

범인 2.

따뜻한 살인 29. (효라빠 장편 소설)

출근 준비를 마친 주형은 아내 모르게 주방으로 갔다. 싱크대를 열고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식칼을 뽑아 들었다. 번쩍거리는 칼날에 주형의 얼굴이 비쳤다. 얼굴은 차가운 칼날보다 더 차갑게 보였다. 수건으로 칼을 감싼 후 가방에 넣고 조용히 회사로 향했다. 

매일 같이 출근하는 교도소에 도착했다. 수용동으로 들어가기 위해 육중한 회색 철문에 붙어 있는 지문 인식기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짧은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철문은 무거워 보였지만 가볍게 열렸다. 수없이 다녔지만 철문이 이렇게 빨리 열린다는 걸 주형은 처음 알았다. 어쩌면 그만큼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는지도 몰랐다. 사동 앞에 다다랐다. 길게 뻗은 사동 복도가 블랙홀처럼 자신을 빨아들이는 거 같았다. 은혜를 죽인 살인범이 안에 있다고 생각하자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벽에 손을 짚고 간신히 담당실에 도착했다. 얼굴이 창백해진 주형을 야간 근무자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부장님,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데 어디 불편하세요?"

"아뇨. 괜찮아요. 새벽에 잠을 설쳤더니 그런 거 같아요. 야간 근무 중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까?"

"2300번이 입실 거부 했는데 잘 설득시켜 해결했습니다. 그거 말고는 조용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퇴근하세요."

"야간 근무 한 저보다 부장님이 먼저 퇴근해야 할거 같은데요? 정말 괜찮으세요?"

"진짜 괜찮아요. 빨리 퇴근하세요"

"그... 그럴게요"

주형은 아프다고 걱정해 주는 근무자가 고맙기보다는 귀찮았다. 빨리 인계하고 사라져 버렸으면 했는데 자꾸 말을 걸어오자 말이 좋게 나오지 않았다.    

야간 근무자와 냉랭하게 인수인계 하고 의자에 앉았다. 들고 있는 가방은 책상 밑에 내려놨다. 안에는 출근 전에 챙긴 칼이 들어 있었다. 머릿속에서 김성균 주임에게 들었던 DNA가 일치한다는 말이 사라지지 않았다. 담당실 벽에 붙어있는 현황판에서 1800번 곽태성을 확인했다. 그는 10번 방에 있었다. 스스로 목숨 끊은 형이 법의 심판받기를 그토록 바랬던 살인자였다. 만약 조금만 더 일찍 밝혀졌다면 형이 자살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자신도 형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복수를 다짐했던 범인이었다. 이제 그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불러서 따져야 할지, 가방 안에든 칼을 사용해야 할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시간은 몇 시간 훌쩍 지나갔다.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순간 화가 나고, 가슴속에서 짜증과 분노가 올라왔다. 갑자기 10번 방의 인터폰을 눌렀다.

[1800번 곽태성!]

[네. 부장님]

[다... 담당실로 나와]

[알겠습니다.]

감정 정리가 안 됐지만 흥분된 목소리로 곽태성을 불렀다. 몇 분 지나자 담당실 문을 두드리며 낯익은 얼굴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장님 부르셨습니까"

곽태성은 평상시처럼 웃고 있었다. 앞에 앉아 있는 주형이 살인을 저지른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건 알지 못했다. 

"......"

주형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곽태성이 자신 앞에 앉아 있지만 외면한 체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곽태성이 한 번 더 물었다.

"부장님, 왜 부르셨어요?"

"휴~~~"

주형이 깊은 한 숨을 몰아쉈다.  

"말씀하십쇼"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다"

짧은 말 한마디에 담당실의 묵직한 침묵이 깨졌다. 

"무슨 일인데요?"

주형의 진지한 모습에 곽태성이 조용히 물었다.

"얼마 전에 DNA채취했지?"

"CRPT(기동순찰팀) 직원분이 와서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고 있어?"

"결과요?"

"그래. 결과."

"잘 모르겠는데요"

곽태성의 목소리가 그제야 떨려왔다. 자신을 잘 대해줬던 주형이라 편하게 대하던 그의 얼굴이 DNA라는 말이 나오자 굳어졌다. 

"추가건 있냐?"

"추가건이요? 다른 사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기 뭘로 들어왔어?"

"절도로 들어왔는데요"

"그게 다야?"

"네."

곽태성의 긴장된 얼굴 표정과 다르게 목소리는 주눅 들어 있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평범한 청년의 모습을 한 그에게서 잔혹한 살인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네가 살인을 했다고 하던데?"

주형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곽태성의 한쪽발이 덜덜 떨리며 옷자락 스치는 소리만 미세하게 작은 담당실에 퍼졌다.  

"무슨 말씀이세요? 살인이라뇨?"

곽태성이 당황스럽다는 듯 답했다.

"작년 이맘때 여고생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알고 있지? TV에도 나오고 했으니까"

"아뇨. 처음 듣는데요"

"처음 듣는다고?"

"네."

주형이 곽태성을 쳐다봤다. 눈빛이 활활 불타올랐고, 긴장해서 잡힌 눈가의 주름은 펴지지 않았다. 곽태성은 사실을 부정했다. 그리고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 주형도 DNA가 동일하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곽태성을 의심하지 않았을 거 같았다. 하지만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목격한 것에 의한 증거가 아닌 과학적인 검증에 의한 직접 증거였다. 이 말은 곽태성이 자신 앞에서 가증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곽태성이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형은 당황스러웠다. 일반적인 사람은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고 뉘우치듯, 명확한 증거가 나온 상황에서 곽태성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인정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부모 없이 보육원에 자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부터 교도소 출입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겼던 곽태성은 양의 탈을 쓴 늑대였다. 아니 악마였다. 자신이 곽태성을 데리고 있으면서 일처리 해줄 때마다 밝게 웃으며 고마워하던 그였고, 엄마에 관해 면담을 할 때는 눈물까지 흘렸던 그였다. 그 눈물은 인간의 눈물이 아닌 악마의 눈물이라는 걸 이제야 할게 되었다. 곽태성이라는 인간의 실체에 대해 할게 된 주형은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만 덜덜 떨려왔다. 

"......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자. 변사체에서 나온 DNA와 너의 DNA가 동일하다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걸까?"

"뭐라구요?"

"변사체에서 정액이 나왔고, 그 정액에서 나온 DNA가 기동순찰팀이 채취해 간 네 DNA 같다고! 그 말은 네가 여고생과 성관계가 있었다는 말이잖아. 씨발새끼야!"

주형이 '여고생'이라는 단어에 폭발했다. 평소 하지 않던 욕이 튀어나왔다. 입술을 깨물었다. 냉정하게 대처하려 했지만 처참하게 당했을 은혜가 떠올라 참을 수 없었다. 이를 악물자 굳어진 턱의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

곽태성이 대답이 없었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소리 지르는 성균을 쳐다봤다.

"너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

곽태성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증거가 있으니까. 사실대로 얘기해"

"어떤 살인사건 말씀하시는 겁니까?"

흥분한 주형을 무시해 버리듯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다시 물었다.

"하하하~"

어이없는지 주형이 웃었다.

"저는 진짜 모른다니까요"

"모른다고? 쓰레기 새끼. 일 년 전쯤 목안동 야산 인근에서 밤에 지나가는 여고생이 변사체로 발견 됐어, 하의는 벗겨진 채였지. 그날은 폭우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날이었고....."

곽태성이 살인 사건 자체를 모른다고 발뺌 하자, 주형은 떠올리기 싫은 끔찍했던 은혜의 일을 범죄를 저지른 살인자 앞에서 하나하나 설명해야 했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쥐어 손톱이 손바닥으로 파고들었고, 목소리는 떨리고 갈라졌다. 책상밑에 있는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주형은 손을 뻗어 가방을 잡았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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