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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따뜻한 살인. 14 (효라빠 장편 소설)

by 효라빠

둘의 눈이 부딪쳤다.

"뭘 봐요! 안 그래도 열받아 죽겠는데. 성질 건드리지 말고 지나가세요."

"옆방에서 시부렁거리는 새끼가 어떤 새낀가 했더니 젊은 놈이었네"

"새끼? 언제 봤다고 욕이야"

최태식의 비꼬는 말에 곽태성이 발끈했다. 모든 것이 밝혀진 상황에서 곽태성은 더 이상 숨길 게 없었다. 주형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좋게 말할 때 꺼지는 게 좋을 거야. 병신이라고 봐주는 거 없으니까."

불편한 다리로 병실의 환자처럼 위태롭게 서있는 최태식이 만만해 보였는지 곽태성이 소리 질렀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있어라 어린놈의 새끼야"

최태식은 가소롭다는 듯 조용히 몇 마디 던지고 절둑거리는 발을 이끌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뭐라고? 너 뭐야? 덤벼 개새끼야!"

곽태성은 문에 달린 쇠창살을 붙잡고 외쳤다. 복도가 떠나갈 듯 소리 질렀지만 최태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상대가 안된다고 여겼는지 무시하는 듯했다.


팀사무실로 돌아온 성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감정 조절 안 되는 주형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고 뺏어와 서랍 속에 넣어둔 그의 칼은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라고 조언했지만 주형이 그러지 못할 거라는 건 당연해 보였다. 답답하고 초조했다. 주형이 사고를 칠 것만 같았다. 주형의 담당실로 전화를 걸었다.

[이 부장! 저녁때 잠깐 보자]

[오늘이요?]

[그래]

[다음에 보면 안 될까요. 제가 피곤해서 그러는데]

[안돼, 오늘 봐야 해. 저번에 만났던 식당에서 퇴근하고 만나]

[......]

[왜 대답이 없어? 기다릴 테니 바로 와]

[알겠습니다.]

주형은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하지만 성균은 강제로 약속을 잡았다.

둘은 얼마 전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날의 충격이 다시 떠오르는지 주형의 얼굴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보자고 하셨습니까?"

주형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할 말이 있으니 불렀겠지"

"말 많이 하셨잖아요. 저는 형님이 보자고 하면 두렵습니다. 이번에는 얼마나 끔찍한 말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그러게..."

화내는 주형에게 자신이 잘못한 게 뭐냐고 따질 수도 있었지만 성균은 그러지 못했다. 주형의 심정을 알기에 묵묵히 대답만 했다.

"많이 힘들지?"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형님이 생각해도 힘들 거 같죠? 진짜 힘듭니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 새끼를 죽일 방법이 없는지 그 생각만 하고 지냅니다. 머리가 폭발해 버리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목소리는 매서웠지만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나도 네 마음 이해해"

"형님이 어떻게 아세요. 직접 겪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

성균은 말이 없었다. 조용히 유리잔의 소주를 삼켰다.

"말 다했어?"

"할 말이야 많죠. 그런데 더 해서 뭐 하겠습니까. 형님이 죄인도 아닌데"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어냈는지 주형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내 말 좀 들어 볼래?"

"말씀하세요"

"직접 겪어 보지 못했다고 했지? 그 말은 틀렸어."

"네?"

"이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수백 번 고민했어. 잘못하면 내 인생이 끝날수 있으니까"

"뭔데 그러세요"

인생이 끝날수도 있다는 말에 주형이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불판 위 고기가 이글 거리며 타들어 가지만 둘은 알지 못했다.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차가운 기운만 맴돌았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이 식당을 나가는 순간 잊어버려야 해. 절대 기억하면 안 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가만 놔주지 않을 거니까."

성균이 비장한 표정으로 주형을 바라봤다. 형같이 따뜻하게 대하던 성균의 모습이 갑자기 무서워 보였다.

"...... 알... 알겠습니다."

주형이 더듬거렸다.

"얼마 전 사동에서 수용자 자살 사건 발생 한 거 알고 있지?"

"네. 앉아서 자살한 거라 특이한 케이스로 소문이 다 퍼졌죠."

"그게 자살이었을까?"

"그럼... 자살이 아닌가요?"

"자살이었어. 공식적으론. 그리고 그 자살은 내가 만들었어"

"형님이 자살을 만들었다구요?"

주형은 성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응. 내가 자살시켜줬어"

"무슨 말씀이세요? 쉽게 말해 보세요?"

"내가 처리했다고......"

주형이 그제야 성균의 말뜻을 이해했다.

"왜... 왜... 그러셨어요?"

주형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며 이유를 물었다.

성균은 대답이 없었다. 검은 연기를 내며 타들어가는 고기만 뒤집었다.

"복수하려고. 너처럼"

"복수요?"

"그래. 복수"

"피해자가 형님의 가족이었습니까? 저처럼?"

"이 일은 무덤까지 안고 가려고 했는데, 아니 자네에게 말은 했지만 무덤까지 안고 가야겠지. 다만 나뿐만 아니라 자네까지.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주형은 내막도 모르면서 알았다고 끄덕거렸다.

"네가 물었지. '형님 같으면 저와 같은 상황에서 참을 수 있냐구' 내가 바로 대답해 줬던 거 같아. 참을 수 없을 거라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지? 꽤 오래 사귀었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헤어지자고 하더라. 특별한 이유도 없이. 연애하다 보면 각자 사랑이 식어 헤어질 거 같은 그런 느낌이 있잖아. 그런데 그런 낌새도 없는데 어느 날 막무가내 헤어지자고 하더라. 이유를 물어도 끝내 말해주지 않았어. 그땐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어 정신과 약을 먹고 있었지. 야간 근무를 할 때라 그녀를 잘 챙겨주지도 못했고. 나는 단순히 내가 교도관이고 정신적으로 예민하게 군 게 싫어서 그러나 보다 짐작하고 말았지. 혼자 삭히면서 말이야. 그렇게 헤어진 후 우연히 그녀의 친구에게서 듣지 말아야 할 사실을 들어 버렸어. 그녀가 성폭행당했다는 거였어. 그 말을 듣는데 돌아 버리겠더라. 한 동안 미쳐 살았지. 그녀가 너무나 불쌍했어. 가해자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리고 싶었지. 머릿속은 온통 그 사건으로 가득 차 있었어. 교도소에 출근해 매일 범죄자들을 대하려니 더 미쳐버리겠더군. 죽고 싶었지만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버텼어. 그녀가 헤어지자고 한 것도 알고 보니 그 이유 때문이었어. 결국 지금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 나는 그녀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게 아니었나 봐. 자신의 몸이 더럽혀졌다고 여겨 나를 만날 수 없었던 거야. 그때부터 범인이 잡히면 복수할 거라고 다짐을 하고 살았어. 다행이라면 범죄지가 우리 관할이라 이곳으로 들어올 확률이 높았지. 그래서 매일 들어오는 신입 수용자들의 죄명을 확인하고 사건개요를 읽었지. 그놈이 잡혀 들어오길 기다렸으니까. 어느 날이었어. 죄명이 아동 감금 및 성폭행인데 추가로 다른 강간 사건이 있는 놈이 있었어. 사건 장소와 일시가 같았지. 벼르고 벼르던 범인이 들어온 거야. 몇 날 며칠 어떻게 죽일까 고민했어. 비참하게 죽여주고 싶었어. 성기도 잘라 버리고 싶었지. 어쩔 땐 죽이지 않고 죽는 거보다 고통스럽게 살게 해주고 싶었어. 매일 밤마다 꿈을 꾸었지 외딴 창고에서 그놈을 매달아 날카로운 칼로 살점을 한포 한포 떼어내고, 한쪽 눈알을 파내 남아 있는 눈에 보여 주고, 혀를 잘라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도 못 지르게 말이야. 영화보다 더 잔혹하고 비참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어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다르더라. 그놈을 죽인다면 죄갑을 치러야 했지. 그런 쓰레기를 죽이고 교도소에서 평생 살기는 싫었어.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그놈을 자살시키는 거였어. 말이 좀 안 맞지만."

성균은 겨드랑이에 끼워져 있던 양팔을 풀었다. 조용히 소주를 마셨다. 텁텁한 소주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친한 형이 말하던 '소주가 달다'라는 말이 떠오르자 '픽~' 웃음이 나왔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있겠어?"

"걱정 마세요. 지옥까지라도 가지고 가겠습니다."

"다행이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

"이제 속이 후련하세요?"

"말하려고 했는데. 질문을 먼저 해주는군. 속이 후련할 것 같아?"

"네."

"처음에는 속이 후련하더라. 내가 그토록 원하던 복수를 했으니까. 그놈의 목을 조르며 고통스러워하는 눈빛을 보며 희열을 느꼈지. 사람을 죽인 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그놈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에겐 변한 게 없더라. 그놈을 죽였다고 그녀가 돌아온 것도 아니었고, 우리 마음이 치유되지도 않았어. 깨끗하게 정리되면 그녀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렇지 않았어. 시간을 과거로 돌이킬 수 없듯 내가 복수했다고 바뀌 건 없었어. 시간이 흐를수록 살인을 했다는 생각만 들었지. 웃긴 건 뭔 줄 알아?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야. 나도 악마가 되어 가는 걸까? 하하"

진지 했던 성균의 표정이 마지막엔 웃음으로 끝났다.

"그럼 형님은 제가 복수하는 걸 이해해 주시겠네요?"

"아니, 이제는 이해 못 해. "

"왜요? 형님은 하셨잖아요?"

"내가 복수를 실행하기 전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지금은 그 후야. 방금 말했잖아. 나에게 변한 게 없었다고"

"그럼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그래. 네 손에 더러운 피 묻힐 필요 없어. 그놈은 법의 심판을 받고 교도소에서 징역 살라고 해. 어쩌면 그게 더 힘들 수 있어. 죽는 건 순간이고 징역은 몇십 년 갇혀서 살아야 하잖아. 정말 고통스럽게 죽이지 않는 한 죽음이 교도소에서 자유를 박탈 당한채 평생을 사는 것보다 괴롭다고 말할 수 없을 수도 있어."

"형님 말씀을 이해 못 하겠습니다."

"그렇겠지. 겪어봐야 아는 거니까. 아까 가방의 칼을 보니 네가 어떤 심경인 줄 알겠더라. 다시 말하지만 멍청하게 사고 치지 마. 하려면 나같이 남들 모르게 하던가. 나도 운이 좋았던 거지. 미쳤어? 사람 같지도 않은 인간쓰레기를 죽여놓고 가족들 내 팽개치고 징역 살게. 그건 너 하나의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야. 제수씨와 아이들, 가족 모두의 인생이 끝나는 거야. 교도소 들어가면 애들 뒷바라지는 누가 하고. 절대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마. "

"이 말은 알겠지만......"

주형은 성균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복잡한 머리는 정리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성균처럼 할 용기와 힘은 없다는 거였다. 거울 앞에 선 자신은 평생 운동 한번 해보지 않은 동네 아저씨였다. 마음은 독하지도 못했다. 성균을 만난 후 위안이라곤 사적 복수를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고, 차라리 법에 맞기는 게 났다는 말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데로 하는 성균이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끔찍한 일을 당했고 그 일로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했다.


성균은 어두워진 골목을 혼자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처럼 텅 비어 있는 그곳으로 취한 채 들어가기 무서웠다. 한 잔 더 하고 싶었지만 주형을 잡을 수 없었다. 마음속에 담아두웠던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아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허전했다. 어설프게 취한 술이 차라리 깨어 버렸으면 싶었다.

윤하와 헤어진 후 그녀 친구에게 그 사실을 들었을 때 모든 범죄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교도소의 수용자들이 모두 그 범죄자 같았다. 한동안 그 생각과 싸우느라 너무 힘들었다. 어렵게라도 정신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범인 때문이었다. 복수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술을 줄이며 정신과 약을 끊고 다시 운동을 하게 만들었다. 매일 확인하던 신입 수용자 중 그토록 기다리던 범인을 찾았을 때 손이 떨리고 터질듯한 심장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주형에게 복수를 하더라도 미련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성균은 범인을 목 졸라 살해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더 비참하게 죽였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게 아쉽기도 했다. 주형에게 복수 후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만약 솔직하게 말했다면 주형을 뒷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주형은 자기 팔뚝의 피를 빨고 있는 모기를 잡으면서도 안쓰러워할 위인이었으니까. 그렇게 마음 여리고 약한 주형이 어설프게 일을 벌여 봐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했다. 자신의 거짓말을 믿고 속 마음이라도 편해졌으면 하는 생각에 사실이 아닌 말로 위로를 했다.


[맑은 날, 폭풍우의 날도 다 지나간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주형은 꽉 막힌 닭장 같은 담당실에 출근해 앉아있었다. 전날 성균과 많은 이야기로 가슴속에 담겨있던 응어리를 조금 이나마 풀었다고 생각했지만 하루가 지나고 제 자리로 돌아오자 다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발생했던 끔찍했던 일들이 영화 필름 지나가듯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미친 듯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이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깊은 한숨 만이 담당실에 앉아 있는 주형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바탕화면에 깔린 법무샘에 로그인하고 업무 준비를 했다.

컴퓨터 옆 나란히 붙어 있는 CCTV 모니터에 영상거실 수용자들의 모습이 비쳤다. [1800번 곽태성]이라고 적힌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화면 속 곽태성은 아무 일 없다는 듯 TV를 시청하며 영치금으로 구입한 구매물인 과자와 오렌지를 먹으며 희희낙락 거리고 있었다.

사람을 잔인하게 강간살해한 살인자의 교도소에서 실제 모습이었다. 주형이 교도관이 아닌 일반인이어서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죗값을 치른다고 생각했을 텐데, 편하게 앉아 웃고 있는 것을 보자 그동안 곽태성을 불쌍하게 여겨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었던 자신이 우스웠고, 그걸 보고 있어야 하는 현실에 미칠 것 같았다.

'너는 아무리 봐도 그냥 살려 둘 수 없을 것 같다.'

주형이 굳은 다짐이라도 하듯 곽태성이 나오는 화면을 부들부들 치를 떨며 쳐다봤다. 부릅뜬 두 눈은 실핏줄이 터져 흰자위가 붉게 물들어 갔다.

[딩동~ 딩동~]

사동과 연결된 담당실의 인터폰이 울렸다. 최태식의 방이었다.

[인터폰 눌렀어요?]

[부장님! 배가 아파요~ 으~~ 너무 아파요. 살려주세요]

[최태식 씨! 왜 그래! 또 배 아파요?]

요즘 들어 자주 복통을 호소하는 최태식이었다. 인터폰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까무러칠 정도로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에 가까웠다.

근무 경력이 많지 않은 주형이지만 문제가 생겼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최태식의 방으로 뛰어갔다. 방문을 열자 최태식이 배를 움켜쥐고 차디찬 마루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의료과가 됐든, 외부 병원이 됐든 당장 진료를 해야 할 상황처럼 보였다. 허리에 차고 있는 TRS를 들어 통제실에 비상호출을 했다.

[통제실 3동 하 18방에서 응급환자 발생했습니다. 직원 출동 바랍니다.]

[확인했습니다. 통제실에서 알려 드립니다. 현재 3 동하 18방 응급환자 발생. 직원 출동 바랍니다.]

무전 날리고 몇 분 지나자 직원들이 스트레쳐카를 밀고 방 입구에 도착했다.

"최태식 씨 정신 차려봐요. 의료과 갑시다."

"아... 아..."

최태식이 배를 움켜잡고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얼굴에서 흐르는 식은땀이 윗옷을 적셨다. 복통으로 고생해서인지 움푹 파인 볼이 심각한 환자처럼 보였다.

출동한 직원들과 주형은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최태식을 스트레쳐카에 옮겨 실었다. 악독하게 행동하는 그의 존재가 커 보였는데 들었을 때 몸이 보기보다 가벼워 주형은 놀랬다.

"최태식 씨 의료과 진료해 보고 상태가 좋지 않으면 외부병원으로 나갈 테니 조금만 참아 보세요"

주형이 움직이는 스트레쳐카에 누워있는 최태식의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곽태성을 보며 흥분해 있던 그였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최태식을 보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 부장님. 고맙습니다."

최태식의 입에서 신음 소리와 함께 고맙다는 짧은 말이 새어 나왔다.

의료과 진료에서 외부병원으로 나가라는 의료과장의 소견이 나왔다. 응급환자이송팀을 꾸려 구급차로 외부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어김없이 폐방시간이 되었다. 외부병원 진료를 나갔던 최태식이 휠체어를 타고 사동으로 돌아왔다. 고통은 없어 보였지만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부장님 진료 다녀왔습니다."

평소 독기 서려있던 최태식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진료 잘 받고 왔어요?"

"진료는 잘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하하"

최태식이 허탈한 듯 웃었다.

"결과가 좋지 않다니, 무슨 말이에요?"

"암이랍니다. 위암"

"암이라구요?"

"네. 그것도 말기라고 하네요"

"아..."

예상 밖의 결과에 주형이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벌 받았나 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 그래요"

최태식의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위암 말기라는 말에 주형은 당황스러웠다. 단순히 최태식이 불쌍해서만은 아니었다. 배가 아프다고 고통스러워할 때는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가 저지른 범죄를 생각하면 다행이었다.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죄를 지었고, 교도소 안에서도 자해를 하는 등 인간 이하의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정의가 사라졌고, 신은 죽었다고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악인이 위암 판정을 받아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결과에 신은 아직 살아 있구나라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교도관이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잊어버리고 따듯하게 손을 잡아 줄 때, 주형도 그 순간은 자신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럴 땐 업무니까 하고 흘려 넘겨 버렸다. 그래야 온전한 정신으로 그들을 대할 수 있었다.

순간 사동의 곽태성이 떠올랐다. 곽태성도 최태식과 같은 신의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최태식보다 더

비참하게 죽어가길 바랐다. 하지만 cctv 모니터에 보이는 곽태성은 희희낙락 거리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꿈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사동을 벗어나기 전까지 매 시간 시간이 지옥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어떻게 근무했는지 모르게 퇴근 시간이 되었다.

주형과 인수인계를 끝낸 야간 근무자가 담당실의 모니터로 수용자의 동태 관찰을 했다.

13실 곽태성이 좁은 독거실에서 푸셥을 하는 등 운동을 하고 있었다. 교도소 수용자는 매일 1시간 이내의 운동이 보장되지만 그 운동은 직원이 허락하는 시간에 교도소 내 운동장에서 하게 되어있다. 사동 안에서는 개인적인 운동이 금지되어 있다. 곽태성은 규율을 위반한 체 옷을 벗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근무자가 방 앞으로 갔다.

"1300번 곽태성 씨 방에서 개별 운동 금지 되어 있는 거 몰라요? 운동하지 마세요!"

"쳇, 깐깐하게 구네. 알았습니다."

곽태성은 근무자의 계급장을 쳐다봤다. 어깨에 이파리 두 개가 올려져 있었다. 9급, 교도라는 뜻이었다. 바로 퉁명스럽게 말대꾸했다.

"옷도 입으세요. 취침시간 전까지 복장을 단정히 하고 있어야 합니다. 빨리 입으세요"

야간 담당도 곽태성의 기에 눌리지 않고 바로 지시했다.

"더워서 그러는데 좀 봐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빨리 입으세요"

"수용자는 인권도 없습니까. 더우면 벗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본인이 운동하다 더워서 벗은 걸 가지고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그리고 인권이라고 했어요?"

"네. 인권이요 인권. 죄짓고 교도소 들어오면 사람도 아닙니까?"

"와......"

근무자는 어이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죄 없는 여고생을 강간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살인범이 교도소에서 인권을 찾고 있었다. 그것도 옷을 입으라는 교도관의 정당한 지시를 거부하면서 말이다.

사회에서 묻지 마 칼부림 사건이나 잔혹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가해자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재발 방지 위해 신경을 쓴다. 언론과 대중은 살인자를 인간이 아닌 괴물로 취급한다. 그리고 검거되어 교도소에 들어가면 고통스럽게 죗값을 치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잔혹한 살인마에 미치광이 일지라도 교도소에 들어간 순간 인권을 보호해 주어야 할 사회적 약자가 되어 버린다.

한마디로 국가 공권력에 의해 보호되어, 교정교화 한 후 사회에 다시 보내줘야 할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가 어떤 범죄로 들어왔다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 식, 주부터 감기가 걸려 먹는 작은 감기약 한 알까지 국가가 챙겨줘야 하는 약자가 된다. 만약 그러지 못해 수용자가 소송이라도 하면 국가는 국가배상을 해줘야 할 확률이 높다.

그뿐만이 아니다. 담당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사소하게 반말이라도 해 수용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다면 인권위로부터 권고를 받을 수 있다.

요즘의 수용자들은 정해진 운동시간에서 1분만 부족하고, 정해진 부식에서 1g만 부족해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거나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다. 차라리 이 정도면 귀엽다.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무기수나 사형수가 소란을 피워 제압하는 과정에서 강제력을 행사해 팔이 부러졌거나 어디 한 곳이라도 다쳤다면 바로 과도한 강제력 행사로 경찰에 고소를 한다. 이렇게 다치기라도 했다면 그나마 이해라도 된다.

간사한 수용자들은 수용생활의 편의를 위해 자신들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정보공개 청구 해 근무자를 힘들게 한다.

3년 치 수용자 복지 예산 책정과 집행 내역, 수용자 부식물 사용내역과 폐기내역, 본인의 이송내역과 정보공개 청구 내역 등 을 요구한다.

건전지나 칫솔을 먹거나 흉기로 배를 그어 자해를 함으로써 교도관들을 괴롭히는 것은 옛날 방식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고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수용자들은 교도관을 괴롭히거나 길들여 자신들이 편하게 수용생활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처럼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 악마처럼 여겨지는 사람이, 교도소 안에서 법의 테두리에서 사회적 약자가 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어 범죄를 저질렀다는 기사를 종종 접하게 될 때 현재 대한민국의 교도소가 얼마나 편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곽태성도 조금씩 그 발톱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끝까지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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