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31.(효라빠 장편 소설)
둘의 눈이 부딪쳤다.
"뭘 봐요! 안 그래도 열받아 죽겠는데. 성질 건드리지 말고 지나가세요."
"옆방에서 시부렁거리는 새끼가 어떤 새낀가 했더니 어린놈이었네"
"새끼? 언제 봤다고 욕이야"
최태식의 비꼬는 말에 곽태성이 발끈했다. 모든 것이 밝혀진 상황에서 곽태성은 더 이상 숨길 게 없었다. 주형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좋게 말할 때 꺼지는 게 좋을 거야. 병신이라고 봐주는 거 없으니까."
불편한 다리로 병실의 환자처럼 위태롭게 서있는 최태식이 만만해 보였는지 곽태성이 소리 질렀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있어라 어린놈의 새끼야"
최태식은 가소롭다는 듯 조용히 몇 마디 던지고 절둑거리는 발을 이끌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뭐라고? 너 뭐야? 덤벼 개새끼야!"
곽태성은 문에 달린 쇠창살을 붙잡고 외쳤다. 복도가 떠나갈 듯 소리 질렀지만 최태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상대가 안된다고 여겼는지 무시하는듯한 태도였다.
팀사무실로 돌아온 성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감정 조절 못하는 주형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고 서랍 속에 넣어둔 그의 칼은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라고 조언했지만 주형이 그러지 못할 거라는 건 당연해 보였다. 곽태성에게 다시 복수하지 않을 거란 보장도 할 수 없었다.
답답하고 초조했다. 주형이 사고를 칠 것만 같았다. 주형의 담당실로 전화를 걸었다.
[이 부장! 저녁때 잠깐 보자]
[오늘이요?]
[그래]
[다음에 보면 안 될까요. 제가 피곤해서 그러는데]
[안돼, 오늘 봐야 해. 저번에 만났던 식당에서 퇴근하고 만나]
[......]
[왜 대답이 없어? 기다릴 테니 바로 와]
[알겠습니다.]
주형은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하지만 성균은 강제로 약속을 잡았다.
둘은 며칠 전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날의 충격이 다시 떠오르는지 주형의 얼굴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보자고 하셨습니까?"
주형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할 말이 있으니 불렀겠지"
"말 많이 하셨잖아요. 저는 형님이 보자고 하면 두렵습니다. 이번에는 얼마나 끔찍한 말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그러게"
자신이 잘못한 게 뭐가 있냐고 따질 수도 있지만 성균은 그러지 못했다. 주형의 심정을 알기에 묵묵히 대답만 했다.
"많이 힘들지?"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형님이 생각해도 힘들 거 같죠? 진짜 힘듭니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 새끼를 죽일 방법이 없는지 그 생각만 하고 지냅니다. 머리가 폭발해 버리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목소리는 매서웠지만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나도 네 마음 이해해"
"형님이 어떻게 아세요. 직접 겪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
성균은 대답이 없었다. 조용히 유리잔의 쓰디쓴 소주를 삼켰다.
"말 다했어?"
"할 말이야 끝이 없죠. 그런데 더 해서 뭐 하겠습니까. 형님이 죄인도 아닌데"
가슴속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풀어냈는지 주형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내 말 들어볼래?"
"말씀하세요"
"직접 겪어 보지 못했다고 했지? 그 말은 틀렸어."
"네?"
"이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수백 번 고민했어. 잘못하면 내 인생이 끝날수 있으니까"
"뭔데 그러세요"
인생이 끝날수도 있다는 말에 주형이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불판 위 고기가 이글 거리며 타들어 가지만 둘은 알지 못했다.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차가운 기운만 맴돌았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이 식당을 나가는 순간 잊어버려야 해. 절대 기억해면 안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가만히 안 놔둘 거니까."
성균이 비장한 표정으로 주형을 바라봤다. 형같이 따뜻하게 대하던 성균의 모습이 갑자기 무서워 보였다.
"...... 알겠습니다."
주형이 더듬거리며 답했다.
"얼마 전 사동에서 수용자 자살 사건 발생 한 거 알고 있지?"
"네. 앉아서 자살한 거라 특이한 케이스로 소문이 다 퍼졌죠."
"그게 자살이었을까?"
"그럼... 자살이 아닌가요?"
"자살이었어. 공식적으론. 그리고 그 자살은 내가 만들었어"
"형님이 자살을 만들었다구요?"
주형은 성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내가 자살을 시켜줬어"
"무슨 말씀이세요? 쉽게 말해 보세요?"
"내가 처리했다고"
주형이 그제야 성균의 말뜻을 이해했다.
"왜... 왜... 그러셨어요?"
주형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며 이유를 물었다.
성균은 대답이 없었다. 검은 연기를 내며 타들어가는 고기만 뒤집었다.
"복수하려고. 너처럼"
"복수요?"
"그래. 복수"
"피해자가 형님의 가족이었습니까? 저처럼? 그 사건은 어린아이가 감금과 성폭행을 당할 걸로 아는데......"
"이 일은 무덤까지 안고 가려고 했는데, 아니 자네에게 말은 했지만 무덤까지 안고 가야겠지. 다만 나뿐만 아니라 자네까지.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주형은 내막도 모르면서 알았다고 대답했다.
"네가 물었지. '형님 같으면 저와 같은 상황에서 참을 수 있냐구' 내가 바로 대답해 줬던 거 같아. 참을 수 없을 거라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지? 꽤 오래 사귀었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헤어지자고 하더라. 특별한 이유도 없이. 연애하다 보면 각자 사랑이 식어 헤어질 거 같은 그런 느낌이 있잖아. 그런데 그런 낌새도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막무가내 헤어지자고 하더라. 이유를 물어도 끝내 말해주지 않았어. 그땐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어 정신과 약을 먹고 있었지. 야간 근무를 할 때라 그녀를 잘 챙겨주지도 못했고. 나는 단순히 내가 교도관이고 정신적으로 예민하게 군 게 그녀가 싫어서 그러나 보다 생각하고 말았지. 혼자 삭히면서 말이야. 그렇게 헤어진 후 우연히 그녀의 친구에게서 알지 말아야 할 사실을 알아 버렸어. 그녀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었어. 그 말을 듣는데 돌아 버리겠더라. 한 동안 미쳐서 살았지. 그녀가 너무나 불쌍했어. 가해자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리고 싶었지. 머릿속은 온통 그 사건으로 가득 차 있었어. 교도소에 출근해 매일 범죄자들을 대하려니 더 미쳐버리겠더군. 죽고 싶었지만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버텼어. 그녀가 헤어지자고 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어. 결국 지금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 나는 그녀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그녀는 그게 아니었나 봐. 몸이 더럽혀졌다고 여겨 나를 만날 수 없었던 거 같아. 그때부터 범인이 잡히면 복수할 거라고 다짐을 하고 살았어. 다행이라면 범죄지가 우리 관할이라 이곳으로 들어올 확률이 높았지. 그래서 매일 들어오는 신입 수용자들의 죄명을 확인하고 사건개요를 읽었지. 그놈이 잡혀 들어오길 기다렸으니까. 어느 날이었어. 죄명이 아동 감금 및 성폭행인데 추가로 다른 강간 사건이 있는 놈이 있었어. 사건 장소와 일시가 같았지. 벼르고 벼르던 범인이 들어온 거야. 몇 날 며칠 어떻게 죽일까 고민했어. 비참하게 죽여주고 싶었어. 성기도 잘라 버리고 싶었지. 어쩔 땐 죽이지 않고 죽는 거보다 고통스럽게 살게 해주고 싶었어. 매일 밤마다 꿈을 꾸었지 외딴 창고에서 그놈을 매달아 날카로운 칼로 살점을 한포 한포씩 떼어내고, 한쪽 눈알을 파내 남아 있는 눈에 보여주는 그리고 혀를 잘라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도 못 지르게 말이야. 영화보다 더 잔혹하고 비참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어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다르더라. 그놈을 죽인다면 죄갑을 치러야 했지. 그런 쓰레기를 죽이면서까지 교도소에서 평생을 살기 싫었어.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그놈을 자살시키는 거였어. 말이 좀 안 맞지만. 그놈을 자살처럼 죽이는 거지."
성균은 겨드랑이에 끼워져 있던 양팔을 풀었다. 조용히 소주를 마셨다. 텁텁한 소주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친한 형이 말하던 '소주가 달다'라는 말이 떠오르자 '픽~' 웃음이 나왔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있겠어?"
"걱정 마세요. 지옥까지라도 가지고 가겠습니다."
"다행이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
"이제 속이 후련하세요?"
"말하려고 했는데. 질문을 먼저 해주는군. 속이 후련할 것 같아?"
"네."
"처음에는 속이 후련하더라. 내가 그토록 원하던 복수를 했으니까. 그놈의 목을 조르며 고통스러워하는 눈빛을 보며 희열을 느꼈지. 사람을 죽인 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그놈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에겐 변한 게 없더라. 그놈을 죽였다고 그녀가 돌아온 것도 아니었고, 그녀나 내 마음이 치유되지도 않았어. 깨끗하게 정리가 되면 그녀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렇지 않았어 시간을 과거로 돌이킬 수 없듯 내가 복수했다고 바뀌는 건 없었어. 시간이 흐를수록 살인을 했지만 생각만 들었지. 웃긴 건 뭔 줄 알아?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야. 나도 악마가 되어 가는 걸까? 하하"
진지 했던 성균의 표정이 마지막엔 웃음으로 끝났다.
"그럼 형님은 제가 복수하는 걸 이해해 주시겠네요?"
"아니, 이제는 이해 못 해. "
"왜요? 형님은 하셨잖아요?"
"내가 복수를 실행하기 전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지금은 그 후야. 방금 말했잖아. 나에게 변한 게 없었다고"
"그럼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그래. 네 손에 더러운 피 묻힐 필요 없어. 그냥 그놈은 법의 심판을 받고 교도소에서 징역 살라고 그래. 어쩌면 그게 더 힘들 수 있어. 죽는 건 순간이고 징역은 몇십 년 갇혀서 살아야 하잖아. 정말 고통스럽게 죽이지 않는 한 죽음이 교도소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평생 사는 것보다 괴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형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겠지. 겪어봐야 아는 거니까. 아까 가방의 칼을 보니 네가 어떤 심경인 줄 알겠더라. 다시 말하지만 멍청하게 사고 치지 마. 하려면 나같이 남들 모르게 하던가. 나도 운이 좋았던 거지. 미쳤어? 사람 같지도 않은 인간쓰레기를 죽여놓고 가족들 내 팽개치고 징역 살게. 그건 너 하나의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야. 제수씨와 아이들, 가족 모두의 인생이 끝나는 거야. 교도소 들어가면 애들 뒷바라지는 누가 하겠어. 절대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마. "
"형님 말씀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주형은 성균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복잡한 머리는 시원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성균처럼 할 용기와 힘은 없다는 거였다. 거울 앞에 선 자신은 평생 운동 한번 해보지 않은 동네 아저씨였다. 마음은 독하지도 못했다. 위안이라곤 사적인 복수를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차라리 법에 맞기는 게 났다는 성균의 말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데로 하는 성균이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끔찍한 일을 당했고 그 일로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니 불쌍하기도 했다.
성균은 어두워진 골목을 혼자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처럼 텅 비어 있는 그곳으로 취한 채 들어가기 무서웠다. 한 잔 더 하고 싶었지만 주형을 잡을 수 없었다. 마음속에 담아두웠던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아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공허했다. 어설프게 취한 술이 차라리 깨어 버렸으면 싶었다.
민희와 헤어진 후 그녀 친구에게 그 사실을 들었을 때 모든 범죄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교도소의 수용자들도 전부 그 범죄자 같았다. 한동안 그 생각과 싸우느라 너무 힘들었다. 어렵게라도 정신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범인 때문이었다. 복수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술을 줄이며 정신과 약을 끊고 다시 운동을 하게 만들었다. 매일 확인하던 신입 수용자 중 범인을 찾았을 때 손이 떨리고 심장이 터질 듯했다. 주형에게 복수를 하더라도 미련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성균은 범인을 목 졸라 살해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더 비참하게 죽였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게 아쉽기도 했다. 만약 주형에게 복수 후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말했다면 뒷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주형은 자기 팔뚝의 피를 빨고 있는 모기를 잡으면서도 안쓰러워할 위인이었으니까. 그렇게 마음 여리고 힘 없는 주형이 어설프게 일을 벌여 봐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했다. 자신의 거짓말을 믿고 속 마음이라도 편해졌으면 하는 생각에 사실이 아닌 말로 위로를 했다.
[맑은 날, 폭풍우의 날도 다 지나간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