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수 그리고 할머니.

나는 15년 차 교도관이다. 9

by 효라빠

나는 15년 차 교도관이다.


그날은 외정문 근무였다.

외정문은 교도소 가장 외곽에 있는 초소다.

반대로 말하면 교도소에 들어오려면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곳이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조금은 한가한 시간이었다. 저 멀리서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외정문에 들어섰다. 가까이서 보니 더 초라해 보인다.

머리는 백발로 뒤덮여 있고 낡고 알록달록한 재킷과 빛바랜 바지는 할머니의 경제적 사정을 말해 주는 거 같았다. 보기만 해도 고생을 많이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의 교도소는 대부분이 외곽에 있다. 그만큼 대중교통으로 오기가 불편하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초라해 보이는 모습으로 교도소에 접견(면회)을 왔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안타까웠다.


할머니는 어두운 표정으로 내 앞으로 오셨다. 본인이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셨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어떻게 오셨어요?”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고자 내가 먼저 밝은 목소리로 친근하게 인사드렸다.

“아이고 선상님! 여기가 교도소인가요?” 그 말 한마디에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힘들게 오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네. 할머니 멀리서 오셨나 봐요. 누구 접견 오셨어요?"


할머니는 말보다 손을 먼저 내밀었다. 주름진 손으로 손때가 묻고 구겨진 종이쪽지를 나에게 건네 셨다.

받아서 펼쳐본 쪽지에는 삐뚤 삐뚤 한 글씨로 'oooo번 박 00'이란 수용번호와 이름이 적혀있었다.


“교도관 선상님 우리 손지가 고등학교 다니는데 교도소로 와불었어요...... 어릴 때부터 어미, 아비가 이혼하고 내가 키웠는디 친구들하고 어울려 사고쳐서 일로 왔다 는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손지 얼굴 이라도 한번 볼라고 이렇게 왔쏘야~” 전라도 사투리로 말씀을 하셨다. 소매로는 눈물을 훔치며 흐느끼셨다.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하고 전산에서 확인해 보니 손자는 친구들과 어울려 절도범죄를 저질러 특수절도죄로 재판을 받는 미결수 신분의 소년수였다.

할머니를 보면서 예상은 했지만 가슴이 답답해 왔다. 일단 흐느끼는 할머니를 진정시켜 드리고 민원실로 안내해 드렸다. 다리가 불편해서인지 절뚝거리며 민원실로 가는 할머니 뒷모습에 코끝이 찡하고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하면 도와드릴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했다. 보안과로 달려갔다. 집에 일이 있다고 조퇴 신청을 한 후 외정문에 차를 대고 할머니를 기다렸다. 4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가 면회를 마치고 외정문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할머니 면회 다 하셨어요? 손자는 잘 만나셨어요?”

“네. 말은 잘 있다고 하는디, 교도소에 잘 있어야봐야 얼마나 잘 있것쏘. 우리 손지 짠해서 어쩌까요~ 좋은 부모 만났으면 저렇게 죄도 짓지 않았을 텐디, 아이고 내 팔자야” 라며 울멱이며 손자 걱정과 본인의 신세를 한탄 하셨다.

“할머니 일단 제 차에 타세요. 제가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할머니는 괜찮다며 극구 사양을 하셨다. 그래도 타시라고 해서 버스터미널까지 함께 같다. 30분 정도 터미널까지 가는 동안 할머니는 본인이 살아온 얘기며 어쩌다 보니 손자까지 키우게 된 사정을 하나하나 말씀하셨다.

나는 얘기라도 들어주는 게 할머니를 도와 드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할머니 얘기를 들으며 터미널에 도착했다.

"할머니. 손주 걱정은 너무 하지 마세요. 제가 찾아가서 불편한 점 있으면 들어주고 잘 챙겨 줄게요."

"아이고~ 그러실랑게라. 고마워서 어쩐데요. 감사합니다. 선상님."

할머니에게 손자를 만나서 잘 타일러 보고 챙겨 줄 거 있으면 보살펴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집으로 가시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내손을 꼭 잡으셨다. 까칠한 할머니 손에서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더 아팠다.

할머니를 내려 드리고 차를 돌리려 핸들을 잡는데 할머니가 앉은자리에 종이쪽지가 떨어져 있었다.

쪽지를 펼쳐보니 할머니가 처음 나에게 보여주었던 수용번호와 이름이 적혀있던 쪽지였다.

이름이 적혀 있는 쪽을 뒤집어 보니 서툰 글씨로 뭐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그 글자를 보는데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한동안 운전을 못하고 핸들만 잡고 있었다.


그 소년수가 반성을 해 새로운 삶을 살고 할머니와 함께 행복한 길을 가길 기원해 본다.


나는 15년 차 교도관이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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