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16. (효라빠 장편소설)
곽태성의 죽음이 수습되고 성균과 주형은 회사 근처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불판 위의 삼겹살은 항상 그렇듯 지글지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또 한 번 마주 앉은 둘은 여전히 구워지는 고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주형이 집게를 들어 말없이 타들어가는 고기를 뒤집었다. 그전보다 평안해 보이는 모습이 이제는 이런 자리도 어느 정도 적응 돼 보였다. 바라만 보고 있던 성균은 테이블 위에 놓인 주형의 빈 잔에 소주를 따랐다.
'똘똘 또오올~'
투명한 잔에 소주가 잠기는 잠깐의 시간에도 무거운 침묵이 동반되고 있었다.
성균이 자신의 빈 잔에도 술을 채운 후 테이블 위에 병을 올려놓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한 잔 할까?"
"네."
적막한 분위기를 깨는 성균의 말과 주형의 짧은 대답이 끝나자 당연하다는 듯 둘은 조용히 잔을 부딪치고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캬~~ '
쓰디쓴 인생을 마시는 듯 성균의 입에서 진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주형은 표정만 조금 일 그러 질뿐 말없이 잔을 내려놓았다.
"기분은 어때?"
"기분이요?"
술이 들어가자 궁금하다는 듯 성균이 주형에게 물었다.
주형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 한지 말없이 고기를 뒤집었다. 지지직 거리며 타들어가는 고기에 맺혀있던 굵은 기름방울이 발갛게 불꽃을 피우는 숯 위에 떨어지자 하얀 연기가 봄날의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눈은 매웠지만 고소한 기름 냄새가 빈 속에 쓴 소주를 마신 성균의 입맛을 돋웠다. 어느 정도 정리되었는지 주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너무 놀랬습니다. 최태식이 곽태성을 그렇게 해버릴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지금도 철문을 열었을 때 나던 피 비린내가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아요. 그 순간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균이 주형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랬을 거야. 사망한 사람의 시체만 봐도 그럴 텐데 잔혹한 살해 현장을 목격했으니.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곽태성이었으니. 한편으론 최태식이 처리해 줘서 속은 시원할 거 같은데?"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형님이니까 말할게요. 제가 곽태성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교도관으로서 법에 의해 집행해야지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다짐이 무너 졌습니다. 곽태성을 죽이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참을 수 없었습니다. 교도관에서 수용자로 청색 수의를 입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교도소에서 곽태성이 편안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속이 뒤집히고 미쳐 버릴 것 같았습니다. 차디찬 비 내리는 밤 강간당하고 목 졸려 살해당한 우리 은혜가 떠오르고, 미친 듯이 괴로워하며 발버둥 치다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형이 불쌍해 이가 갈리고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제가 교도관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었다면 곽태성이 교도소에 들어간 것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죗값을 치르겠지 하며 살아갔겠지만, 이 안아서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 보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는 마음만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곽태성을 죽였다면 모든 것을 잃었을 거라는 것도 압니다. 오죽했으면 처음에는 와이프와 애들을 생각하며 참았겠습니까.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범죄 가해자가 죗값 이랍시고 교도소에서 자유를 박탈당하며 살아가는 게 제가 보기에는 죗값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곽태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형님 말씀처럼 곽태성이 죽어서 속 시원합니다. 최태식에게 말은 하지 못했지만 고맙기도 합니다."
주형이 가슴에 담겨있는 모든 걸 쏟아 내듯 이야기했다.
"자네 마음 충분히 이해해. 나도 곽태성이 죽여버리고 싶더라. 네가 겪는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고, 네 말처럼 그 새끼가 징역에서 생활하는 걸 볼 때마다 나도 속이 뒤집혔어, 지금 생각해 보면 예전에 내가 조직들한테 해코지당하기 전 정보를 흘려준 것도 너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이 교도소 안에서 편하게 살아가려고 그랬을 거야. 어떻게 해야 징역을 잘 풀어가는지 아는 전형적인 비열한 인간의 행태였어. 그때는 그 새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니까 고마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치가 떨린다."
"맞습니다. 그 일도 다 계획적이었을 겁니다."
취기가 올라서인지 둘의 대화가 거침없었다.
"최태식은 만나 봤어?"
"아직 못 만났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음 정리가 되면 한 번 만나 보려 하는데 최태식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외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입원했다고?"
"네."
"하하하. 역시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야. 교도소 안에서까지 살인을 저지를 살인자를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니까 말이야. 그놈 영치금 한 푼도 없잖아? 개털이지?"
성균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소주를 마셨다.
"아마 그럴 겁니다. 제가 데리고 있을 때도 사회복귀과에서 불우 수용자에게 지급하는 몇 만 원으로 살아갔으니까요. 그 많은 병원비가 국민 세금으로 나가겠죠"
"신문사나 방송사에 제보하고 싶다. 죄짓고 들어온 범죄자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는 교도소에 상 좀 주라고."
성균이 비꼬듯 말하며 또 한 잔 털어 넣었다.
"퇴원 후 만나면 뭐라고 할 거야? 고맙다고 할 건가?"
"글쎄요. 고마운 마음이 있긴 한데 사람 죽인 걸 대놓고 고맙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네요.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복잡합니다."
"기다려봐. 그놈도 조만간 뒤질지 모르니까. 하하하. 죽은 놈이나 죽인 놈이나 다 똑같은 새끼들이야. 안 그래?"
술기운이 올랐는지 얼굴이 불콰해진 성균이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렇긴 하죠. 그놈이 그놈이죠"
"나는 요즘 신이 있다고 생각해. 너는 신을 믿어?"
"저는 종교가 없어 신을 믿지 않습니다."
"나도 무교라 신이 없다고 살아왔는데, 이번 일 겪으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로 했어. 꼭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 아니라도 말이야. 킥킥"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데요?"
"왜긴, 마땅히 죽어야 할 인간쓰레기들이 교도소에서 편하게 살아갈 것 같으니 신이 정리하잖아. 최태식이 곽태성을 죽이고 최태식은 하늘에 계신 신께서 암으로 죽여주시잖아. 이게 신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 쓰레기 새끼들! 그 놈들 때문에 내 입만 더러워지네"
웃으며 말하던 성균의 흥분한 목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형님 말씀 들으니 신이 있는 거 같기도 하네요. 어쨌든 이번 일이 끝나 큰 짐 하나 덜었습니다. 아직도 정리할 일들이 산더미 같이 남아 있지만요."
"조급해 말고 하나씩 천천히 정리해 나가.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얼마 전 황석영 작가님 '철도원 삼대'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렇게 쓰여 있더라 '맑은 날, 폭풍우의 날도 다 지나간다' 책 한 권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보다 그 한 줄에서 더 많은 걸 느꼈어. 분명히 시간이 해결해 준다."
"알겠습니다. 형님 아니었으면 저도 못 버텼을 거예요. 복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어찌 보면 형님 덕분이고 그 독기가 없었으면 진작에 무너 졌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고기 먹어라 탄다. 앞으로 가족들 잘 챙겨. 인생 별거 없어. 소소한 거에 만족하며 사는 게 제일이야. 끝난 거 같지만 네 속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잘 알아. 힘내고 다시 시작하자"
말없이 눈물 글썽이는 주형을 바라보며 성균은 따스한 말을 건넸다.
둘만의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성균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신을 반기는 것은 어두운 암흑과 차가운 공기뿐이었다. 주형에겐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준다고 했지만 반기는 이 없는 빈 공간에 들어서는 건 시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았다.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술 한 잔 걸치고 오면 더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헤어진 여자 친구가 미치게 그리웠다. 그녀의 향기와 육체까지 모든 것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졌다.
묵직한 침묵을 깨기 위해 습관적으로 티브이를 켜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주형아 신이 있다고 했잖아? 그래도 사람이 저지른 일은 사람이 수습해야 되지 않겠냐? 그래야 공정하겠지. 여기는 인간세상이니까.'
말을 맸으며 눈을 감자 지쳐있던 몸이 자신도 모르게 푹신한 소파에 빠져들었다. 빈 집에 성균의 코 고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최태식은 미결수 신분으로 의료 수용동에 수용됐다. 살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최태식의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직접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길어야 6개월이라고 했다. 법원의 선고가 내려지기 전 이미 의학적 사형 선고가 내려진 셈이었다. 때문에 검찰에서도 적극적인 수사와 기소 의지가 없었다. 살인범이든 더 추악한 범죄자든 피고인이 사망해 버리면 공소기각결정이 되고 법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교도소 의료 수용동은 암울한 교도소 안에서도 더 암울한 곳이었다. 의료 수용동 수용자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심각한 환자들이라 하루 종일 누워 지냈고 말수도 거의 없었다. 이들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미 건조한 표정을 한채 벽에 붙어있는 티브이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미래와 희망이 없는 인간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최태식도 그곳에서 독방을 배정받았다. 이제는 누구를 해칠 정도의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서류상의 화려한 전력들이 그를 다른 사람과 같이 생활하게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혼자 해결하기 불편한 일이 있으면 간병 수용자가 도와주기 위해 간혹 방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성균은 사동 순찰을 돌면서 팀원들과 의료수용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사동에 비해 자주 가지는 않지만 혹시 모를 사고 예방을 위해 점검차 들렸다. 최태식이 의료 수용동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의 상태가 궁금하기도 했다. 팀원들과 각 방의 문을 열고 임의 부착물과 부정 물품 등을 지적하며 거실 검사를 했다.
끝방은 최태식의 방이었다. 의료수용동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성균은 그 방이 최태식의 방인지는 몰랐다. 최태식과 성균의 눈이 마주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기 가득 찼던 눈은 어디 가고 병마로 인해 눈의 초점도 흐릿해 보였다. 최태식이 힘든 몸을 일으키며 말을 꺼냈다.
"김성균 주임님 아니십니까? 안 그래도 주임님께 할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할 말이 있어요?"
성균은 묵은 감정이 풀리지 않는 듯 쏘아붙였다.
"......"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최태식이 말을 멈췄다.
"많이 안 좋다고 하더구먼 사실이었네, 하긴 벌 받을 일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성균이 비아냥 거렸다.
"주임님 잠깐 시간 좀 내주십시오. 저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부탁입니다."
성균의 시비에도 참을성 있게 말하는 최태식의 예전과 다른 태도에 성균이 머뭇거렸다.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을 숙이며 부탁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가 진지하게 말하는 이유가 성균은 궁금하기도 했다.
"한 번 들어 봅시다. 무슨 말인지."
성균이 후배들에게 철수 지시를 하고 자신은 최태식의 방 문턱에 걸터앉았다.
"주임님은 저에게 감정이 안 풀렸나 봅니다?"
"우리가 감정 풀릴 일이 있었나요? 그런 당신은 풀렸어요?"
"......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주임님이 한 번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주임님은 저보다 공부도 많이 하셨고 저 같은 인간쓰레기는 아니잖습니까. 저는 배운 것도 없고 인생을 막살았지만 주임님은 아니잖아요. 저 같은 부류 하고는 다르잖습니까."
최태식이 숨 차오르는 듯 걸걸한 소리로 힘들게 말을 이어 나갔다. 살이 빠져 수척해진 얼굴에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깃들어 있었다. 자신의 마지막 진심을 얘기해야겠다는 의지가 아니라면 앉아 있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
성균은 말없이 최태식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최태식이 자신에게 봐달라는 말을 할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시발새끼 죽기 전까지 거짓말이네. 네가 인간쓰레기에서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기 치지 마 개새끼야. 나는 너희 같은 것들이 어떤 부류인지 잘 알고 있어. 죽기 전이라고 무슨 천사가 된 마냥 말하지만 가식 떨지 마 이 쓰레기야'
성균은 무표정한 얼굴을 한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면전에 대고 싸납게 뱉어 버리고 싶었지만 죽을 날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하는 마지막 배려였다.
'으윽윽~~~ 털썩'
앉아있던 최태식이 갑자기 의식을 잃으며 쓰러졌다.
'이봐~ 최태식!'
성균이 그의 어깨를 흔들며 깨웠다.
몇 번을 불러도 의식이 없었다. 매뉴얼 대로면 통제실에 상황전파 후 지원요청을 해야 했다. 하지만 성균은 주머니에 꽂혀있는 검정 가죽장갑을 꺼내 손에 꼈다. 그리곤 사동 복도를 한번 훓터 보더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최태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인간의 죄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마무리하는 게 맞겠지.'
중얼거리며 최태식의 입 쪽으로 가죽장갑 낀 손을 뻗었다. 굳어진 성균의 얼굴 표정이 무슨 일을 할 거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 회가 대단원의 마지막이 될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최태식의 입 쪽으로 가죽장갑 낀 손을 뻗었다. 굳어진 성균의 얼굴 표정이 무슨 일을 할 거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검은손이 입을 가렸다. 항암치료로 쇄약 해진 최태식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느끼지 못했다. 의식이 없는 저주받은 몸뚱이만 살아야겠다는 본능으로 꿈틀거렸다.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급한 마음 때문인지 호흡이 급해지고 손이 떨렸다. 몇 분이면 인간쓰레기 최태식을 아무도 모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문 밖에서 고요를 깨고 '뚜벅뚜벅' 거리는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수용자들은 운동화나 고무신을 신기 때문에 발자국 소리의 주인은 직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형님~ 성균이 형님!"
누군가 도착하기 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먼저 도착했다.
'젠장!'
낯익은 주형의 목소리였다.
최태식의 입을 막고 있던 성균이 손을 뗐다. 벌벌 떨며 꿈틀거리던 몸뚱이가 호흡이 돌아오자 서서히 진정되어 갔다.
"주형아~ 최태식이 쓰러졌어. 의식이 없다. 빨리 지원요청해"
성균이 다급한 척 소리 질렀다.
"최태식이 쓰러졌어요?"
"비상상황이야. 상태가 안 좋다. 외부병원 나가야겠어!"
주형이 도착하자 성균은 최태식의 몸을 흔들며 깨우는 시늉을 했다. 최태식은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trs 소리 듣고 출동한 직원들이 최태식을 외부병원으로 데리고 나갔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사동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들었다. 수십 명이 생활하는 사동이지만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같이 정신없을 때가 있는가 하면 잔잔한 겨울 바다처럼 사람 한 명 없는 듯 고요할 때도 있었다.
"형님, 최태식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맞아. 조만간 뒤질 거야. 힘들게 사느니 빨리 죽는 게 본인한테도 득이지. 어차피 죽을 거"
"그게 자신의 죗값도 최태한 덜어내는 일일 겁니다."
"그런데 네가 의료사동에 무슨 일이야?"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계획을 방해한 주형에게 성균이 쏘아댔다.
"시간 되시면 퇴근하고 밥 먹자고 팀 사무실에 연락했더니 다른 대원이 의료사동에 계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지나가는 길에 들렸습니다."
"삼겹살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저녁이야 저녁은!"
일이 틀어진 것에 대한 짜증으로 성균이 툴툴거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회 먹자고 그러려고 했습니다. 삼겹살 질리잖아요."
"무슨 일 있어?"
"그냥 술 한잔하고 싶어서요"
"그럼 이따 한잔 해"
"그런데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 힘들겠습니다."
주형이 미안하다며 약속을 거절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야! 야! 장난해?"
성균의 외침에도 주형은 안 되겠다는 말만 남긴 채 자신의 사동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응급실에 도착한 최태식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의식은 미세하게 회복됐지만 정상적인 신체 활동은 할 수 없었다. 암세포는 주변 장기에 심각하게 전이되어 있었다.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의 필요성도 없다는 담당의사의 소견이었다. 이제 진정한 신의 심판만 기다리게 되었다.
최태식이 입원한 지 이주일이 지났다. 직원들은 돌아가며 병원근무를 했다. 팀은 3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었다. 주간 1팀 야간 2팀, 하루에 총 9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다. 입원기간이 길어지자 본연의 임무를 하는 직원들까지 병원 근무를 하게 됨으로 직원들 피로가 한층 증가했다. 하지만 형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근무자들은 피곤을 무릅쓰며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의 피로도 피로지만 수십 명의 시간 외 근무 수당 인건비와 교도소 특성상 1인실에 입원해 있으며 들어가는 병원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 때문에 말이다.
주형도 최태식이 장기 입원 중인걸 알고 보안과 외부병원 배치표를 확인했다. 자신의 이름도 올라가 있었다. 사동근무 끝내고 외부병원으로 가기 위해 직원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팀원들과 병원으로 향했다.
최태식이 입원 중인 중환자실 앞에서 주간 근무자에게 근무 사항을 인계받았다. 위급한 상황은 지났고 의식은 돌아와 있는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위암뿐만 아니라 심장까지 좋지 않아 언제 심정지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다. 지금은 전이된 암보다 심장 쪽이 더 문제라고 했다.
중환자실 앞에서 안으로 들어 가려 하자 주형은 긴장이 됐다. 최태식이 곽태성을 살해한 후 첫 대면이었다. 일반 병실의 경우 외부병원 팀원 3인이 병실에서 계속 상주하지만 중환자실은 병원 규정으로 인해 직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다른 두 명은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해야 했다. 팀원 중 막내가 있었지만 주형이 먼저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중환자 실이라 일반 병실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 대부분 의식이 없었다. 팔뚝에 꽂혀 있는 바늘에는 여러 개의 수액이 매달려있었다. 곳곳에서 '삑~ 삐 삑~ 삐' 거리며 울리는 기기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환자는 팔과 다리를 침대에 묶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통로를 지나자 구석진 곳 침대 위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최태식이었다. 의식이 돌아왔다고 했지만 잠이 들었는지 눈이 감겨 있었다. 입에는 산소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금방 죽더라도 누구 하나 의심할 것 같지 않았다. 침대 옆 책상에 놓인 근무일지에 이름을 적고 장비와 서류를 확인했다. 인수인계 사항과 일치했다.
주변 정리를 마친 주형은 잠들어 있는 최태식을 바라봤다. 핏기 없고 가죽만 보이는 얼굴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 있었다. 그걸 보는 주형의 얼굴에 이상한 평온이 찾아왔다. 이 모든 더럽고 추악했던 일련의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힘들고 기나긴 시간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깊은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수액이 꽂힌 최태식의 팔이 꿈틀거렸다. 입에서는 미세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몇 분 지나자 최태식의 눈커플이 힘들게 위로 올라갔다. 잠에서 깬 건지 아니면 고통스러워 눈을 뜬 건지 모르겠지만 정신이 돌아왔다.
주형은 아무 말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최태식은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봤다. 옆에 앉아있는 직원이 주형인지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갈증이 몰려오는지 닫혀 있던 입을 열면서 고개를 돌렸다.
"무... 물 좀 주세요. 아~ 부... 이 부장님 아니십니까."
최태식이 주형을 알아보고 힘겹게 말을 건넸다.
"최태식 씨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요?"
최태식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자신을 사람으로 대해준 주형에 대한 반가움의 표현이었다.
"태식 씨한테 할 말이 있어요"
"네."
최태식이 주형 쪽으로 고개를 더 돌렸다.
"누가 그러더군요. 인간사이의 문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구요. 이제 모든 걸 마무리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그동안 고생했고 편하게 쉬세요.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는 신께서 정하겠죠"
주형이 말을 끝내고 손을 들어 최태식의 입에 있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 그리곤 두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흐... 흡... 왜.... 도대체 왜... 이렇게 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죽을 건데..."
최태식은 반항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듯 짧은 말만 반복했다. 그렁그렁 거리며 가래 끓으며 나오는 소리도 주형의 손아귀에 갇혀 멀리 퍼지지 못하고 이내 사그라들었다.
"맞아요.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아도 당신은 어차피 죽겠죠. 하지만 어떻게, 누가 하느냐도 중요해요. 당신은 큰 잘못을 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무표정 한 채 최태식의 입을 막고 있는 주형이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최태식의 대답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흠... 흠... 흡..."
최태식은 미세한 신음소리만 계속 내뱉었다.
"곽태성을 죽인 것... 곽태성은 내가 정리했어야 하는데 당신이 죽여버렸어. 그 책임은 지고 가세요. 그리고 지금까지 저지른 범죄에 대한 피해자들에 대한 죗값까지 포함해서. 이제 진정 모든 일이 끝났어요. 내가 이렇게 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죽겠지만 내 손에 죽지 않는 건 나한테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의료수용동에서 김성균 주임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어요. 이 일은 성균 형님한테도 양보할 수 없는 내 일이에요. 왠 줄 알아요? 우리 은혜와 형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하니까요. 지금 당장 죽을 사람을 죽이는 것도 법으로 따지면 살인이겠죠. 알아요 내가 지금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요. 하지만 이런 살인은 왠지 따뜻하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요."
최태식의 미세한 호흡이 멈췄다. 벌벌 떨던 팔과 다리는 축 늘여졌다. 그래도 주형은 입을 막은 채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는 최태식이 듣길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가슴속에 담겨있던 멍울을 뱉어 내고 있었다. 마지막 말이 끝나자 미동 없는 최태식의 입을 막고 있던 주형의 손이 떨어졌다.
'진정 끝났구나. 아~~~'
주형의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벗겨 놓았던 산소마스크를 다시 씌우고 말아져 있던 이불을 정리했다. 그리곤 중환자실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형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교대 좀 부탁하자'
후배 근무자가 들어오자 주형은 환자들이 누워있는 침대를 통과해 중환자실 밖으로 향했다.
'삐~~~~' 거리는 기계음만 멀찍이 사라져 가는 주형의 등뒤에서 울려 퍼졌다.
창밖에서 비추는 따뜻한 햇살이 주형의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 주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주형의 발걸음은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았다.
<끝>
[많은 사람이 읽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읽었을 겁니다. 끝까지 읽어준 그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