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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라빠 Feb 12. 2024

신과 인간 (2).

따뜻한 살인 (마지막 회). 효라빠 장편소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최태식의 입 쪽으로 가죽장갑 낀 손을 뻗었다. 굳어진 성균의 얼굴 표정이 무슨 일을 할 거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검은손이 입을 가렸다. 항암치료로 쇄약 해진 최태식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느끼지 못했다. 의식이 없는 저주받은 몸뚱이만 살아야겠다는 본능으로 꿈틀거렸다. 성균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급한 마음 때문인지 심장이 떠질 듯 뛰었다. 몇 분이면 인간쓰레기 최태식을 아무도 모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문 밖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요를 깨고 들리는 구두 발자국 소리였다. 수용자들은 운동화나 고무신을 신기 때문에 그 발자국 소리의 주인은 직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형님~ 성균이 형님!"

누군가 도착하기 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먼저 도착했다.

'젠장!'

최태식의 입을 막고 있던 성균이 손을 뗐다. 벌벌 떨며 꿈틀거리던 몸뚱이가 호흡이 돌아오자 진정되어 갔다.

"주형아~ 최태식이 쓰러졌어. 의식이 없다. 빨리 지원요청해"

성균이 다급한 척 소리 질렀다.

"최태식이 쓰러졌어요?"

뚜벅뚜벅 들려오던 발자국 소리의 주인은 주형이었다.

"비상상황이야. 상태가 안 좋다. 외부병원으로 나가야 할거 같아."

주형이 도착하자 성균은 최태식의 몸을 흔들며 깨우는 시늉을 했다. 최태식은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trs 소리를 듣고 출동한 직원들이 최태식을 외부병원으로 데리고 나갔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사동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들었다. 수십 명이 생활하는 사동이지만 어수선한 시장통 같이 바쁠 때가 있는가 하면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할 때도 있었다.

"형님, 최태식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직원들 철수하고 주형이 성균에게 말했다.

"맞아. 조만간 뒤질 거야. 힘들게 사느니 빨리 죽는 게 본인한테도 득이지. 어차피 죽을 거니까"

"그게 자신의 죗값도 최태한 덜어내는 일일 겁니다."

"그런데 네가 의료사동에 무슨 일이야?"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계획을 방해한 주형에게 성균이 쏘아대듯 물었다.

"시간 되시면 퇴근해서 밥 먹자고 팀 사무실에 연락했더니 다른 대원이 의료사동에 계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지나가는 길에 들렸습니다."

"삼겹살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저녁이야 저녁은!"

일이 틀어진 것에 대한 짜증으로 성균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이번에는 회 먹자고 그러려고 했습니다. 삼겹살 질리잖아요."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냥 술 한잔하고 싶어서요"

"그럼 이따 한잔 해"

"그런데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서 힘들 거 같습니다."

주형이 미안하다며 약속을 거절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야! 야! 장난해?"

성균의 외침에도 주형은 안 되겠다는 말만 남긴 채 자신의 사동으로 돌아갔다.


응급실에 도착한 최태식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의식은 미세하게 회복됐지만 정상적인 신체 활동은 할 수가 없었다. 말기 암은 주변 장기에 심각하게 전이되어 있었다.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의 필요성도 없다는 담당의사의 소견이었다. 이제 진정한 신의 심판만 기다리게 되었다.

최태식이 입원한 지 이주일이 지났다. 직원들은 돌아가면서 병원근무를 했다. 팀은 3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었다. 주간 1팀. 야간 2팀 해서 하루에 총 9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다. 입원기간이 길어지자 본연의 임무를 하는 직원들까지 병원 근무를 하게 됨으로 직원들 피로가 한층 증가했다. 하지만 형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근무자들은 피곤을 무릅쓰며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의 피로도 피로지만 수십 명이 시간 외 근무를 하면서 국가 예산도 적지 않게 낭비되고 있었다.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 때문에 말이다.

주형도 최태식이 장기 입원 중인걸 알고 보안과 외부병원 배치표를 확인했다. 자신의 이름도 올라가 있었다. 사동근무를 끝내고 외부병원으로 가기 위해 직원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다른 팀원들과 병원으로 향했다.

최태식이 입원 중인 중환자실 앞에서 주간 근무자에게 근무 사항을 인계받았다. 위급한 상황은 지났고 의식은 돌아와 있는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위암뿐만 아니라 심장까지 좋지 않아 언제 심정지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다. 지금은 전이된 암보다 심장 쪽이 더 문제라고 했다.

중환자실 문 앞에서 안으로 들어 가려 하자 주형은 긴장이 됐다. 최태식이 곽태성을 살해한 후 첫 대면이었다. 일반 병실의 경우 외부병원 팀원 3인이 병실에서 계속 상주하지만 중환자실은 병원 규정으로 인해 직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다른 두 명은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해야 했다. 팀원 중 막내가 있었지만 주형이 먼저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중환자 실이라 일반 병실과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 대부분 의식이 없었다. 팔뚝에 꽂혀 있는 바늘에는 여러 개의 수액이 매달려있었다. 곳곳에서 '삐삐삐삐' 거리며 울리는 기기 소리가 들렸다. 어떤 환자는 팔과 다리를 침대에 묶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통로를 지나자 구석진 곳 침대 위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최태식이었다. 의식이 돌아왔다고 했지만 잠이 들었는지 눈이 감겨 있었다. 입에는 산소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금방 죽더라도 누구 하나 의심할 것 같지 않았다. 침대 옆 책상 위에 놓인 근무일지에 이름을 적고 장비와 서류를 확인했다. 인계사항과 일치했다.

주변 정리를 마친 주형은 잠들어 있는 최태식을 바라봤다. 핏기 없고 가죽만 보이는 얼굴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 있었다. 그걸 보는 주형의 얼굴에 이상한 평온이 찾아왔다. 그동안 모든 더럽고 추악했던 일련의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힘들고 기나긴 시간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깊은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수액이 꽂힌 최태식의 팔이 꿈틀거렸다. 입에서는 미세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몇 분 지나자 최태식의 눈커플이 힘들게 위로 올라갔다. 잠에서 깬 건지 아니면 고통스러워 눈을 뜬 건지 모르겠지만 그의 정신이 돌아왔다.  

주형은 아무 말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최태식은 옆에 앉아있는 직원이 주형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갈증이 몰려오는지 잠겨있던 입을 열면서 고개를 돌렸다.

"무... 물 좀 주세요. 아~ 부... 이 부장님 아니십니까."

최태식이 주형을 알아보고 힘겹게 말을 건넸다.

"네. 최태식 씨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요?"

대답하는 최태식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자신을 사람으로 대해준 주형에 대한 반가움의 표현이었다.

"태식 씨한테 할 말이 있어요"

"네."

최태식이 주형 쪽으로 고개를 더 돌렸다.

"누가 그러더군요. 인간사이의 문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구요. 이제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그동안 고생했고 편하게 쉬세요.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는 신께서 정하겠죠"

주형이 말을 끝내고 손을 들어 최태식의 입에 있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 그리곤 두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흡... 왜.... 도대체 왜... 이렇게 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죽을 건데..."

최태식은 반항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듯 짧은 말만 반복했다. 그렁그렁 거리며 가래 끓으며 나오는 소리도 주형의 손아귀에 갇혀 멀리 퍼지지 못하고 이내 사그라들었다.

"맞아요.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아도 당신은 어차피 죽겠죠. 하지만 어떻게, 누가 하느냐도 중요한 것 같아요. 당신은 큰 잘못을 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무표정 한 채 최태식의 입을 막고 있는 주형이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최태식의 대답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흠... 흠... 흡..."

최태식은 미세한 신음소리만 계속 내뱉었다.

"곽태성을 죽인 것... 곽태성은 내가 정리했어야 하는데 당신이 죽여버렸어요. 그 책임은 지고 가세요. 그리고 지금까지 저지른 범죄에 대한 피해자들에 대한 죗값까지 포함해서. 이제 진정 모든 일이 끝났어요.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아도 당신은 죽을 목숨이지만 내 손에 죽지 않는 건 나한테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의료수용동에서 김성균 주임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어요. 이 일은 성균 형님한테도 양보할 수 없는 내 일이에요. 왠 줄 알아요? 우리 은혜와 형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하니까요. 지금 당장 죽을 사람을 죽이는 것도 법으로 따지면 살인이겠죠. 알아요 내가 지금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요. 하지만 이런 살인은 왠지 따뜻하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요."

최태식의 미세한 호흡이 멈췄다. 벌벌 떨던 팔과 다리는 축 늘여졌다. 그래도 주형은 입을 막은 채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는 최태식이 듣길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가슴속에 담겨있던 멍울을 뱉어 내고 있었다. 마지막 말이 끝나자 미동 없는 최태식의 입을 막고 있던 주형의 손이 떨어졌다.

'진짜 끝났구나. 아~~~ 아~'

깊은 한숨이 주형의 가슴속에서 새어 나왔다.

벗겨 놓았던 산소마스크를 다시 씌우고 말아져 있던 이불을 정리했다. 그리곤 중환자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정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교대 좀 부탁하자'

후배 근무자가 들어오자 주형은 환자들이 누워있는 침대를 통과해 중환자실 밖으로 향했다.

'삑삑 삑삑' 거리는 기계음만 멀찍이 사라져 가는 주형의 등뒤에서 울려 퍼졌다.  

창밖에서 비추는 따뜻한 햇살이 주형을 포근하게 감싸 앉았다.

주형의 발걸음은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았다.

<끝>


[많은 사람이 읽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읽었을 겁니다. 끝까지 읽어준 그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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