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진 찍게 만든 등 운동, 랫풀다운
내가 5살 터울의 오빠를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건 바로 본인의 몸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20대가 되고 나서 30kg을 단 3개월 만에 뺀 오빠는 주변 사람들과의 약속도 더 많이 잡고, 약속을 마치고 집에 오는 날이면 늘 웃통을 벗고 자신의 상체를 찍어달라고 했다. 귀찮을 정도로 거의 2시간 가까이를 찍곤 했는데 꽤 인생샷을 많이 건진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10여 년 전의 추억 이야기가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그때의 그 시절은 오빠의 영웅담으로 회자되곤 한다.
어릴 땐 그런 오빠가 별로 부럽지도 않았다. 난 절대 살 빼면 저렇게 허세 부리지 말아야겠단 다짐만 굳혀갈 뿐이었다. 아마 평생 저 행동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확신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내가 17kg를 감량하고 나서야 그런 오빠의 마음과 행동이 이해가 갔다. 수많은 역사에는 묻혀갈 일이라 하더라도, 내 인생에서는 매우 큰 역사적인 순간이니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최대한 많이 남기는 게 이득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하루도 안 빼고 꾸준히 1시간을 운동하는 것에 대해 감히 '행복한 강박'이라고 말하지만 이전엔 그렇지 않았다. 샐러드로 식단하고 운동하는 것만 신경 썼지, 새 옷을 사거나 인생 사진을 찍는 데엔 관심을 가질 새도 없었다. 그저 살 빼는 게 목적이었고, 다만 어떻게든 헤어지자는 예전 남자친구의 마음을 붙잡고자 하던 다이어트였기에 행복이 빠진 강박일 뿐이었다.
하지만 체중계에 -17kg가 적히고 나서 강박에 즐거움과 행복을 더한 게 있었으니, 그토록 오빠가 남기려 했던 '사진'이었다. 당시 받았던 PT선생님이 유독 상체 운동을 많이 가르쳐주셨었는데, 가장 좋아했던 동작이 랫풀다운이었다. 처음 랫풀다운을 접했을 땐 이게 팔 근력을 키워주는 건가 보다 생각했지만 크나 큰 착각이었다. 팔이 아닌 등운동이었고, 광배근을 이용해 아래로 머신을 당기는 운동이었던 거다.
PT시간 외에도 하체운동을 하기 너무 지칠 때면 곧바로 상체운동을 많이 해와서 그런지 어느새 가슴 옆에 있던 부유방은 물론, 등이 꽤 매끈해져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내게 등 근육이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워터파크에 간 지 너무도 오래되어서 그리운 마음에 갑자기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정말 의도치 않게 내 등 근육을 처음 마주한 때였다. 물론 다른 여성 분들에 비하면 내 근육은 아주 작고 조그맣고 귀여운 수준이지만, 쇄골조차 파묻혔던 과거에 나에겐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다이어트 그 자체에만 집착했던 내가 마침내 전신거울을 마주하고, 많이 달라졌단 걸 깨달았다. 죽도록 빠지지 않는 뱃살에만 집착하느라 보이지 않았던 몸의 근육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운동에 대한 성과가 몸으로도 세포로도 느껴졌다.
친구들은 장난으로 '등의 신, 등신'이라고 나를 부른다. 아마 내 작고 귀여운 근육을 보면 비웃겠지만 뿌듯한 마음이 더 커서 별로 부끄럽지도 않지만 사진은 일단 나만 간직하는 걸로 하겠다.
"어쨌든 올해엔 워터파크 갈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