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키운 30대 직장인의 현재
내가 기억하는 제일 어린 시절의 순간은 단 한 장면으로 보관되어 있다. 초 봄이었던 거 같다. 그때 자주 입던 빨간색 바바리를 입고 있었던 거 같다. 막 노을이 지기 전 늦은 오후였고 엄마 손을 잡고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었다. 엄마 손을 잡은 오른손은 거의 만세를 하고 있었다. 내 눈에 담긴 화면은 거의 시멘트 바닥과 더 가까웠다. 내 나이 네 살. 그 장면 하나가 내 기억 첫 시작이다.
엄마랑 출퇴근하는 다섯 살
내 첫 기억의 시작부터 부모님은 이미 맞벌이셨다. 그렇다. 나의 엄마는 아이 둘을 가진 커리어우먼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어려운 것을 그때의 엄마가 해내고 있었다. 무려 별이 세 개인 회사를 다니는 30대 여성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가 어떤 회사를 다니시는지 말해줘도 몰랐지만 꽤 오랜 세월 근무하셔서 나중에는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엄마랑 함께 출퇴근하는 다섯 살이 되었다. 회사를 다닌 건 아니고 엄마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을 가게 된 것.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직장인 엄마들을 위한 보육시설이 전혀 없었는데 다행히 회사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최초로 생겼고 나는 그곳을 다녔다. 겨울에는 해가 뜨지도 않은 아침에 잠이 덜 깬 상태로 엄마 품에서 선생님 품으로 옮겨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다시 해가 지고 7시가 넘어서야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그렇게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엄마랑 출퇴근을 했다.
나도 하교하고 집에 왔을 때 엄마가 반겨줬으면 좋겠지만 우리 엄마 멋있어
가끔은 부럽기도 했다. 초인종을 띵동 누르면 나오는 엄마. 그리고 간식을 만들어주는 엄마.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항상 열쇠를 가지고 다녔다. 가끔은 열쇠를 놓고 가서 엄마가 올 때까지 비상계단에 한참 앉아 있었던 적도 많았다. 나의 잘못이었지만 엄마한테 전화를 하면 항상 혼이 났다. 엄마는 갈 수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오빠는 항상 학원을 많이 다녀서 엄마만큼 늦게 왔었다. 아빠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럴 때마다 괜히 서러웠다. 그리고 그런 날은 엄마가 제일 일찍 오는 날이었다. 그게 6시쯤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집에서 혼자 늦은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내 방 책상에 앉아 또 무언가 끄적거리다 보니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잠깐 자야겠다 싶어 침대에 누웠다가 눈을 떴는데 온 집안이 고요하고 캄캄했다. 깜짝 놀라고 무서워서 후다닥 거실로 나가 불을 켜보니 8시쯤이었다. 집에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이다. 오빠도 엄마도 아빠도. 오빠는 엄마보다 늦게 오는 날이 있긴 했었지만 엄마도 안 왔다니..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소파에 앉아 TV를 틀고 아무거나 보고 있는데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온 것이다. 엄마는 저녁을 못 먹었는지 냉장고에서 대충 밥을 꺼내서 드셨다.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나는 그런 엄마를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지만 그때 내 감정은.. 우리 엄마 멋있다.
대한민국 60대 여성 왕개미 씨
그렇게 끊임없이 일하는 멋진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그러한 영향인지 주부의 삶도, 아이를 낳고 육아에만 전념하는 삶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는 내 일을 하고 싶다. 출산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가 그래 왔기 때문에 나에겐 가능한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멋있게 바라봤던 열 살이 지금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것뿐이다.
다른 점은 나는 아직 미혼이고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 나는 아직도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고 삼십 대가 넘어서야 비로소 어른이 되어 주체적인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고 그 재미에 빠졌는데 지금 나에게 아이 둘이 있다면? 상상조차 안되고 굳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엄마는 어땠을까? 내가 쓴 "왜?" 글처럼 사회적으로 다들 그랬던 코스대로 삶을 살아온 한 여성은 대한민국 30대 여성 왕개미 씨가 아닌 수연이 엄마의 삶을 너무 일찍 시작한 것은 아닐까. 아쉽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현실은, 건강상 꽤 오랜 시간 힘들었던 왕개미 씨는 그것마저 극복해버리고 여전히 일한다. 수연이 엄마로의 삶이 아쉽지 않았을까 하는 건 어쩌면 내 생각일 뿐. 엄마는 이제 대한민국 60대 여성 왕개미 씨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참 멋있다. 우리 엄마 왕개미 씨.
왕개미는 엄마의 어릴 적 별명이라고 한다. 허리가 개미허리 같아서. 그리고 왕 씨라서 왕개미. 열심히 일해서 왕개미가 아니다. 개미허리 왕개미 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