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자라난 나의 일상
피렌체에서 보낸 여름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침 햇빛에 비치는 골목, 시장에서 스치던 과일 향,
집으로 돌아와 과일을 씻어 먹던 순간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조용히 쌓이며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처음 이 도시에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자주 흔들리곤 했지만,
매일 반복되는 작은 루틴들이 나를 조금씩 안정시켜 주었다.
이번 글은 그 여름의 일상과,
그리고 그 일상을 가능하게 해 준 따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피렌체의 여름을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좋은 기회로 스냅 촬영을 하게 되었다.
작가님께서 피렌체에 플리마켓이 있다며 알려주셨다.
지도로 찾아보니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아침에 천천히 걸어가도 좋을 거리였다.
매주 화요일 열리는 이 플리마켓은
아르노 강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었다.
위쪽에는 옷과 잡화를 파는 상인들이 자리하고,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과일과 채소 가판대가 늘어서 있었다.
처음 갔을 때는 정말 신기했다.
사람들로 북적였고, 과일들은 햇빛을 잔뜩 머금은 듯 탐스러웠다.
복숭아, 멜론, 사과, 자두, 레몬, 토마토...
빨갛고 노랗고 동그란 것들이 한데 모여 여름의 색을 만들었다.
그 과일 향을 아는가.
시장 한복판을 지나기만 해도
복숭아와 자두의 달콤함이 '슥' 하고 코끝을 스쳤다.
여기저기 상인들이 "과일 사세요!"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이탈리아어로 힘 있게 울려 퍼졌다.
나는 그 향기에 이끌리듯 과일을 샀다.
자주 가는 단골 가게가 생겼는데,
처음엔 나를 중국인이냐고 물으셨다가
"Sono coreana (저는 한국인이에요)"라고 말하자
"Ah! coreana ragazza! Ho visto molto la Corea su TikTok."
(아! 한국인 소녀! 나는 틱톡으로 한국을 많이 봤다.)
하며 웃으셨다.
그 뒤로는 나를 볼 때마다 "Ciao, coreana ragazza" (안녕, 한국인 소녀) 하고
반겨주셨다.
복숭아 2kg, 멜론 2개, 토마토 1kg...
양손이 무거울 정도로 사도 5유로가 안 넘는 가격이 늘 놀라웠다.
시장 중간쯤 내려가면 커피 트럭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 꽤 잘생겼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1유로에 마시며
시장 풍경도 보고, 사람들의 말소리도 듣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장을 보고 돌아오면 가장 먼저 과일을 씻었다.
그 시절, 나는 '마체도니아'라는 이탈리아식 화채를 자주 해 먹었다.
잘 익은 과일들을 한입 크기로 자르고
설탕과 레몬즙을 조금 더하면
그걸 먹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행복을 한가득 먹는 기분이 들었다.
채소도 사 와서 여러 가지 요리를 해 먹었다.
직접 만들어 먹는 일이
피렌체 생활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루틴이었다.
거창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를 살게 하는 작은 기쁨들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도시에서 이렇게 일상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된 건
사실 이전의 어떤 따뜻함 덕분이 아닐까?'
그때 떠오른 사람들은
페루자에서 만난 '내 이탈리아 가족'이었다.
페루자에서 집을 구하느라 부동산을 찾아보던 날,
좋은 조건의 쉐어 아파트를 소개해 준 이탈리아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며
나에게 소개를 시켜주었다.
그 친구는 아티스트였고,
한국에서도 여러 번 전시를 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인스타그램 DM으로 연락하며 만날 약속을 잡았다.
약속한 날, 멀리서 "안녕하세요~!" 하고
우렁찬 한국어 인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학생인 나를 여러 번 챙겨 밥을 사주었고
덕분에 페루자의 맛있는 음식점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내가 와인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는
자신의 친구가 운영하는 와인 농장 파티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날 마신 유기농 와인의 맛은
아직도 혀끝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이탈리아어가 서툴렀음에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다 같이 춤을 추고, 바베큐를 먹고, 밤새 와인을 마셨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심한 감기에 걸렸을 때는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보호자 역할을 해주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는데도
직접 픽업해 주었고 잘 먹어야 한다며 밥도 사주었다.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아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들고 찾아갔던 날도 기억난다.
어머니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한국어를 독학 중이라며
손글씨로 빼곡히 적힌 한국어 노트를 보여주셨다.
거실에서는 한국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국적인 공간에서 모국어가 들리자
가슴이 묘하게 따듯해졌다.
한국어를 배우는 그들의 모습이
이탈리아어를 배워가는 나와 닮아 있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이탈리아 음식을 나누어 먹고 짠을 했다.
그 순간,
타지에서 느껴본 적 없는 부드러운 소속감이 마음에 들어왔다.
피렌체에서 살게 된 후에도 우리는 종종 연락했다.
어느 날, 불꽃놀이를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방이 크니 마음껏 머물러도 된다며 반겨주었다.
나도 그의 어머니가 보고 싶어
곧장 가겠다고 했다.
불꽃놀이 전에는 야외 푸드트럭에서
고기와 와인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테라스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의자를 끌어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짙은 어둠 속에서 화약 냄새가 희미하게 일더니
곧이어 화려한 불빛이 터져 나왔다.
"팡- 파방- 파바방"
커다란 소리와 함께 빛들이 퍼지고 모이기를 반복했다.
순간적으로 "와, 너무 멋있다..."
하는 말이 한국어로 툭 튀어나왔다.
둘째 날에는 장을 보고 간단한 음식을 해 먹었다.
그 당시에 한국에서 유행하던 넷플릭스를 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불꽃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떠나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최고야, 완전 가족 같아. 이탈리아 가족."
나를 만나준 마음이 고마워서 잊히지가 않았다.
피렌체로 돌아와
다시 플리마켓을 걷던 어느 날,
복숭아 향이 스치는 순간
그들이 떠올랐다.
'내가 이 도시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일상을 만들 수 있었던 건
결국 그 따뜻함 덕분이었구나.'
과일을 고르고,
마체도니아를 해 먹고,
커피 트럭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던 그 시간들이
타지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매일 새롭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렇게 받은 따뜻함이 있었기에
피렌체의 일상도 훨씬 더 부드럽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
시장 한쪽을 지날 때 맡았던 과일 향이 느껴지면
그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두 도시에서 이어진 마음들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여운은 지금도 조용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