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워홀 에세이 2-5

페루자에서의 마지막 추억, 페루자에서 만난 친구들.

by 킴소피


페루자에서의 시간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1월에 처음 만난 친구들, Matelda(마텔다)와 Alma(알마) 그리고 Aeryn(에린)과는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수업이 없는 날이면 에린과 함께 여행을 다녔고,

학교 행사인 합창단 (il coro)을 보러 갔다.

나도 얼떨결에 마텔다와 같이 합창단에 가입할 뻔했지만,

하루 체험을 해보고 나와는 맞지 않다는 걸 느껴 그만두었다.


합창단 체험


우리 반에는 성악을 전공한 친구가 두 명 있었다.

몽골에서 온 Tengis(텐지스)와 일본에서 온 Yuri(유리)였다.

유리의 노래는 직접 들어본 적이 없지만, 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텐지스와는 내가 먼저 말을 걸면서 가까워졌고,

함께 밥을 먹고, 저녁엔 친구들과 모여 가끔 술을 마시기도 했다.

참 푸근하고 귀여운 친구였다.


기숙사에서 나와 짐을 옮기고 나서 처음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한식을 만들었다.

Matelda(마텔다)와 Alma(알마), 그리고 Aeryn(에린)이 와서 다 함께 떡볶이를 만들었다.

매콤한 향이 주방을 가득 채우자 친구들은 신기하다는 듯 냄비를 들여다봤다.

"정말 매콤하고 맛있어!"라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었고,

매운맛에 놀라 음료수를 찾으면서도 포크를 내려놓지 않았다.


잡채랑 떡볶이 소개하기
한국 술게임도 알려주고 같이 시간 보낸 날


그 후엔 일본인 친구 Aya(아야), Yuri(유리), 그리고 Aeryn(에린)을 초대해 한국식 만두를 함께 빚었다.

나는 전날 미리 반죽을 만들어 숙성시켜 두었다.

다들 처음 만두를 빚어본다며 어색해했지만 금세 능숙해졌다.

정말 고맙게도 아야는 초콜릿 과자를,

유리는 병아리 모양의 케이크를 사 왔다.

우리는 만두를 빚고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늦은 저녁까지 수다를 떨었다.

외국에서 친구들과 이런 '걸스나잇'을 보내는 게 처음이라,

조금 들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아직도 그날의 웃음소리와 대화, 그리고 따뜻한 공기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이면 그날이 그리워지고,

친구들이 보고 싶어진다.

언어를 배우러 왔던 도시였지만,

언젠가부터 이곳은 친구들과의 기억이 담긴 장소가 되었다.


한 번은 학교가 3일간 쉬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짧지만 1박 2일 일정으로 피렌체 여행을 다녀왔다.

Aeryn(에린)과 Althul(알툴), 셋이서였다.

기차 안에서 우리는 신나게 떠들며 한식 이야기를 나눴다.

아침에 출발한 기차는 점심 무렵 피렌체에 도착해서,

우리는 기차 안에서 메뉴를 정해야 했다.


피렌체는 나에겐 조금 익숙한 도시였다.

전에 혼자 와보기도 했고, 에린과 다녀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알툴은 한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한식당으로 갔다. (피렌체에는 두 곳이 있다.)

알툴은 라면을, 우리는 밥을 시켰다.

알툴은 젓가락 질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방법을 알려줬더니 곧잘 따라 했다.

뜨거운 라면을 호호 불어가며 서툰 젓가락질로 면을 집어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어려우면 포크로 바꾸라고 했지만 끝까지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괜히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식사 후엔 빙수집으로 갔다.

달콤한 과일 빙수를 한입 먹고는 "맛있어!" 하며 웃었다.

그때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저녁엔 Aperitivo(식전주)를 마시기로 했다.

아이리시 펍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다음엔 "다른 칵테일도 마셔야 한다"며 2차로 향했다.

사실 그날은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는데, 결국 잔을 들었다.

우리는 한국식 게임인 '참참참'을 했다.

지는 사람이 칵테일 한입씩 마시기로 했는데,

내가 대부분 이겨서 알툴이 많이 마셨다.

그날 밤 우리는 늦게까지 웃고 이야기하며 뛰었다.

너무 즐거워서 사진 찍을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더 오래 남는 기억이 되었다.



학교가 끝나고 골목을 걸으며 친구들이랑 먹었던 피자 조각,

점심시간이 되면 "Pranziamo?" (우리 점심 먹을래?) 하며 샌드위치를 들고 풍경이 잘 보이는 곳으로 향하던 순간,

젤라또를 먹으며 웃던 오후들, 골목을 탐방하며 서로가 좋아하는 걸 나누던 순간들,

시험 기간엔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했던 날,

작은 푸니쿨라를 타고 페루자 시내를 둘러봤던 날들,

그리고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며 공감했던 시간들.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나를 이 도시와 단단히 엮어 놓았다.



시간이 흘러 각자 다른 도시로 흩어졌지만, 가끔은 메시지가 오간다.

서로의 일정이 다르고 연락의 간격은 길지만 (시차 때문에)

"Come stai? (잘 지내?)"

그 짧은 안부 속에서 그 시절의 공기가 되살아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나, 너희들이 너무 보고 싶어."


이탈리아에서 지내며 나는 말을 배우는 법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대부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었지만,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였다.

그 점이 참 좋았다.

한국에서는 나이가 다르면 자연스레 선이 그어지지만,

이곳에서는 모두가 '친구'였다.

그런 문화가 나를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4월이 지나고, 나는 5월에 피렌체로 이동하기로 했다.

친구들과의 추억이 끝나는 게 아쉬워

"롤링페이퍼를 써줄래?" 하고 부탁했다.

오랜 숙제 같던 이탈리아어로 쓰인

각자의 손글씨 편지는 그 자체로 큰 선물이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롤링 페이퍼에 "안녕"을 크게 쓰거나

"Piacere di conoscerti" (만나서 반가웠어)

라는 인사를 남겼다.

힘들 때마다 그 공책을 꺼내 보면,

그 시절의 얼굴들이 아직 내 곁에 있는 것 같다.

특히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도 말하고 싶다.

"나의 문화를, 그리고 나를 따뜻하게 맞아줘서 고마워."


친구들이 써준 롤링페이퍼


친구들은 한국에 대해 묻기도 했다.

"한국은 어때?" , "이탈리아와는 뭐가 달라?" ,

"이거는 한국어로 뭐라고 해?"

오스트리아에서 온 알툴은 한국어 '안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메모장에 '안녕'을 적어 보여주며 이렇게 읽는다고 했다.

며칠 뒤, 왓츠앱(Whatapp)에 "안녕! 소피아"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짧은 인사 한 마디에 마음이 울컥했다.

기억해 준다는 게 참 고마운 일이었다.


알툴이 보낸 메시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곳에서 왔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눴다.

그 시간들은 분명히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일상에 머무른다는 게,

얼마나 다정한 일인지.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Aeryn, Althul, Alma, Aya, Matelda, Tengis, Yuri, Hitomi, Lola, Giovanni.

덕분에 페루자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따뜻했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사용해도 되냐고 허락받았습니다)


그렇게 페루자에서의 계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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