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워홀 에세이 3-1

집 구하기, 계약하기, 동네 탐방하기

by 킴소피


페루자에서 피렌체로 넘어오던 날은 정말 힘들었다.

짐이 너무 많아서 캐리어 하나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

가방이며 짐을 담은 봉지며 바리바리 들고 기차에 올랐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덥고 사람도 많았다.


땀에 흠뻑 젖은 채 피렌체 역에 도착했을 때,

‘이 많은 짐을 들고 새로운 도시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리 집을 구해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새삼 느꼈다.


페루자에서 기차를 탈 땐 친구들이 도와줬다.


페루자에서 피렌체로 넘어오기 한 달 전쯤,

미리 집을 가계약했다.

보통 학생들이 쓰는 사이트가 따로 있는데

매물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온라인으로 집을 보고 바로 결정하는 방식을 알게 됐다. (조금 못 미더웠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두 군데 정도 살펴봤는데, 내가 원한 조건은 세 가지였다.

- 피렌체 시내는 아닐 것,

- 집 앞에 편의시설이 있고 교통이 편할 것,

- 화장실이 공용이 아닐 것.


나는 5월부터 9월 30일까지 머물 집을 찾고 있었다.

그 시기에 나온 매물은 많지 않았고,

있더라도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곳은 없었다.

결국 화장실은 포기해야 했다.


페루자에서도 공용 화장실을 썼지만, 아무래도 불편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엔 개인 화장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월세가 1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결국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방에 햇살이 들면 너무 예쁘고 따스하다.


내가 계약한 집은 방이 다섯 개인 쉐어하우스였다.

주방과 화장실은 공용이었고, 내 방은 ‘1번 방’.

다른 방들보다 작았지만 혼자 지내기엔 충분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주방이었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큰 창과 따뜻한 부엌 분위기가 좋았다.


페루자에서 온라인으로 계약금을 송금했다.

꽤 큰돈이 들었고, 일을 하지 않던 시기라 부담이 됐다.


월세 650유로(약 107만 원), 보증금 650유로,

청소 및 관리비 520유로(87만 원, 한 번만 납부),

그리고 온라인 계약 수수료 200유로(약 33만 원).

정말 돈이 많이 나갔다.


그래도 이 집이 아니면 다른 매물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집 근처엔 걸어서 3분, 8분 거리에 슈퍼마켓이 있었고

작은 커피바와 버스 정류장도 가까웠다.

특히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까지 가는 버스가 세 개나 있었다는 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한 번은 그냥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온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써보려 한다.



집 앞에는 쓰레기장이 있고, 바로 앞이 큰 도로라 약간 시끄러웠다.

요일마다 소음이 달랐는데, 이상하게 그 소리마저도 금세 익숙해졌다.

조금만 더 걸으면 사거리가 나오고, 그 뒤편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 공원에 산책을 갔다가, 유난히 덩치가 큰 까마귀를 만났다.

이탈리아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와

“Lui si chiama “Ugo”. (얘 이름은 우고(Ugo)야)”라고 알려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그 공원을 ‘우고 공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말 자주 출몰했다. 몸집도 크고, 목청도 컸다.

가끔 우고를 만날 때면 나 혼자 다가가

“Ciao, come stai?” (안녕, 잘 지냈어?) 하고 물어봤다.


우고 공원에는 오후 2-3시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후 시간대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가끔 술에 취해 얼굴이 새빨개진 채 벤치에 누워 있는 사람도 보였다.

오후 5-6시가 되면 놀이터 근처에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따뜻했다.


어느 날은 맨몸 운동을 하는 사람,

어딘가로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도 보였다.

가끔 우고 공원에서는 플리마켓이 열리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유기농 채소나 비건 제품을 많이 팔았는데

이탈리아는 확실히 비건에게 훨씬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고 공원을 지나면 내가 정말 좋아하던 빵집이 두 곳 나온다.

그 동네 이름은 산토 스피리토(Santo Spirito).

이 지역 가게들은 대부분 작고 예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빵집은 아침 7시쯤이면 골목을 가득 채우는 빵 냄새가 났다.

일찍 가서 카푸치노 한 잔과 코르네토를 한입 베어 물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내 생일 케이크도 이곳에서 주문했는데,

젤라토로 만든 아이스크림 케이크였다 (세미프레도라고 부른다.)

처음 먹어본 거라 더 인상 깊었다. 젤라또의 나라답게 한국에 있는 아이스크림 케이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생일 케이크
아침 빵은 기본 두 개부터 먹는다.


두 번째 빵집은 시나몬 롤로 유명했다.

각 나라 스타일을 섞은 퓨전 베이커리였는데,

아침 8시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정도로 인기였다.

늦게 가면 빵이 다 팔려버릴 때도 있었다.

덕분에 원래는 별로 좋아하지 않던 시나몬 롤을,

이 집 덕분에 좋아하게 됐다.




피렌체의 첫 한 달은 그렇게 흘러갔다.

새 도시, 새로운 방, 그리고 새 공원의 풍경들 속에서

조금씩 ‘여기서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직은 모든 게 낯설었지만,

햇살 좋은 부엌과 우고가 있는 공원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곳의 오후 햇살은 늘 내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주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