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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야 NAYA Jan 27. 2022

'초여름'의 의미가 바뀐 것, 알고 계신가요?

초여름의 정의를 다시 쓴 드라마, <그 해 우리는> 리뷰


마지막 여름인 것처럼, 그렇게 푸르르기 시작한 우리의 하루. 이 드라마를 만난 이상, 우리는 초여름의 정의를 다시 써내려 갈 수 밖에 없다. 


초여름은 어쩌면, 계절이 아닌 감정일 지도 모른다. 서투르고 조심스럽지만 설레는 아침. 솔솔 불어오는 바람 한 점에 마음이 들뜨는 점심. 내리쬐는 태양에 빨갛게 달아오르는 볼을 맡기는 오후. 그리고 지긋이 눈을 감고 밤 하늘의 별을 가늠하는 밤까지. 어쩌면 여름은, 계절이 아닌 청춘일 지도 모른다. 이러한 초여름의 감성을 그대로 담아낸 드라마가 탄생했다. 바로, 얼마전에 종영한 <그 해 우리는>이다. 



처음 <그 해 우리는>을 보게 된 것은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을 주제로 하는 다큐멘터리라는 소재가 흥미로워서였다. 게다가, 배속도 안 하고 건너뛰기도 안 하고 몰입해서 보게 되는 작품이라고 입에 마르게 찬양을 하던 지인의 추천사가 드라마를 보겠다는 결심을 부추겼다. 요즘같은 시대에(?) 배속을 안 하고 볼 드라마라니. 조그마한 기대를 품은 채 1화를 재생했고, 이틀만에 밤을 새서 (당시 방영되었던) 12부까지 모조리 정주행해버렸다. 당연히 배속이나 건너뛰기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 해 우리는>은 최웅(최우식 분)와 국연수(김다미 분)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제 로맨스를 곁들인) 작품 속에는 크게 세 가지 청춘의 모습이 담기는데, 첫 번째는 고등학생 시절 웅연수(최웅+국연수)의 모습이고, 두 번째는 대학생 시절 웅연수의 모습이고, 마지막으로는 29살 사회인이 된 웅연수의 모습이다. 


고등학생 시절 웅과 연수의 모습


1화의 내용만 간단히 소개하자면, 


19살,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내달리던 전교 1등 국연수는 10년 후 작은 기업에서 마케팅 PR 업무를 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직급은 팀장이지만,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서는 클라이언트 앞에서 굴욕적인 언사도 웃음으로 받아쳐야 하는 그저 그런 사회인이 되었다. 경쟁 PT에서 요즘 핫한 일러스트 작가 ‘고오’를 섭외해 ‘런칭 기념 드로잉쇼’를 진행하겠다는 공약이 좋은 평가를 받은 만큼, 고오를 섭외해 대형 프로젝트를 따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수업시간에 그림을 끄적이던 19살의 전교 꼴등 최웅은, 10년 후 대한민국을 들썩이는 일러스트 작가 고오가 되었다. (역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비록 매니저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그의 정체를 모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끔찍하게 사랑한만큼 지독하게 헤어졌던 국연수 따위 잊고 하루하루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29살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초인종이 울린다. ‘띵동’ 


문을 열자 보이는 구여친의 얼굴


비몽사몽 현관문을 연 최웅 앞에는, 5년 전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은 채 자신을 떠나간 국연수가 보인다. 헛것을 본 건가, 눈을 감았다 다시 떠도, 분명히 국연수다. 최웅은 당황하지 않은 척 그대-로 문을 닫고, 집 안을 황급히 뛰어다니면서 무언가를 찾는다. 곧 찾던 물건을 손에 쥐고 다시 현관문을 연 최웅. 평온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국연수를 향해, 분무기를 들이대고, 물을 뿌린다. ‘치이이이익’ 이것이 1화의 엔딩이다. (다음 화에서 국연수가 현관문을 나설 때는, 준비해둔 소금도 뿌린다. 촥촥) 


5년만에 만난 구애인에게 물을 뿌리는 1화 엔딩은 정말 신선했다 


19살의 최웅과 국연수가 서로에게 스며들고, 대학 시절의 최웅과 국연수가 서로의 같음과 다름에 울고 웃고, 또 29살의 최웅과 국연수가 서로의 삶을 보듬고 함께 나아가기까지, <그 해 우리는>은 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기(起)를 위해 존재하는 승(承), 전(轉)을 위해 존재하는 결(結)이 아닌, 그저 그 계절인대로 의미있는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드라마틱한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봄이었다가 여름이 되고, 가을이었다가 겨울이 되는 모습이 바로 진정한 우리네 삶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의 김지웅(좌)과 전지적 짝사랑 시점의 엔제이(우)


그런 의미에서, <그 해 우리는>이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내는 수많은 인물을 담아낸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웅과 연수가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지웅(김성철 분)은, 이들의 스물 아홉을 카메라에 담아내겠다는 결심을 하는 PD가 된다. 고등학생 때 웅과 연수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PD 동일(조복래 분)은 그러한 지웅의 든든한 사수로 역할하고, 지웅의 후배 채란(정혜원 분)이 어느새 지웅의 눈빛을 닮아가는 과정은 청춘의 내음새를 물씬 풍긴다. 


‘사랑으로 키운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웅의 부모 호(박원상 분)와 연옥(서정연 분)의 식당 소식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고, 금사빠 국민여신 엔제이(노정의 분)와 연수네 회사 식구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도 놓칠 수 없다. 무엇보다, 등장하는 모든 순간 자동으로 웃음 버튼이 눌리는 연수 친구 솔이(박진주 분)와 웅이 매니저 은호(안동구 분)는 분량과 관계 없이 주연 같은 명품 존재감을 내보인다. 


<그 해 우리는>의 화려한 OST 라인업


‘우리가 헤어져야 했던 이유’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우리가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마무리되는 OST 역시 <그 해 우리는>의 여름빛 분위기를 만들어낸 주역이다. 방탄소년단의 V가 부른 ‘Christmas Tree’는 1절은 영어, 2절은 한국어로 진행되는데, 이는 마치 전혀 다른 두 노래를 듣는 듯한 울림을 준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그 해 우리는>의 최고 아웃풋(?)은 싱어게인 출신으로 유명한 이승윤의 ‘언덕나무’라는 곡인데, 드라마 시청 여부와 상관없이 짙은 감성을 즐기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픈 노래이다.   


<그 해 우리는> 메이킹 필름 中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메이킹 필름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비하인드 영상에서, 국연수를 연기한 김다미 배우와 최웅을 연기한 최우식 배우가 끊임없이 감독과 의견을 공유하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걸어가며 대사를 하는 게 좋을지, 이 장면에서 감정선을 어떻게 잡는 게 좋을지, 이 장면에서 이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적합한지, 그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듯 보였다. 공손하지만 적극적으로, 차분하지만 치열하게 연수와 웅이의 입장을 전하고 받아들였다. 


개인적으로 시청하는 모든 드라마의 메이킹 필름을 꼭 찾아보는 편인데, 배우와 감독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생각을 공유하는 촬영장 비하인드는 정말 처음 보았던 것 같다. 물론 극 후반부에 살짝 설정이 과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깊고 풍부한 이야기가 너무 성급하게 닫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작가와 배우, 감독과 음악, 배경과 장소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는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만난 이상, 우리는 초여름의 정의를 다시 써내려 갈 수밖에 없다. 마지막 여름인 것처럼, 그렇게 푸르르기 시작한 우리의 하루. 점점 무르익어 기어코 단단해지게 될 우리의 모든 시간.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될, 그 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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