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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야 NAYA Mar 03. 2020

하루에 하나, 짧은 사유(思惟)

2020年 2月의 기록

二月 一日       

: 쉬운 일은 없지만, 나아갈 힘은 있으니


대단한 결과물이 손안에 가득 들어오길 바랐던 나날이 있었다. 그럴듯한 명함, 그리고 독보적인 수식어가 나의 이름 앞에 붙기를 바랐었다. 막상 부딪혀보니,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는 말이 몸서리치게 다가온다. 뚱가뚱- 쉽게만 연주하는 줄 알았던 기타도 손끝에 굳은살이 아리고, 얕은 줄 알았던 분야들도 막상 손가락을 담그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깊어 깜짝 놀라게 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좀 더 대단하게 도전해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듯해 보이는 경지에 오르기까지 쏟아야 하는 무수한 땀방울과 불안의 시간을 감내하며. [불안]에도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쌓일수록 더욱 큰 성취를 가져온다는 [마시멜로]라고 부르며. 누군가의 결과물에 경이가 생기는 만큼, 그만치에 다가가기 위해 ‘이름 없는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조용한 박수를 보낸 하루.       


나의 작은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 없지만, 나아갈 힘은 아직 충분하니     


二月 十日     

: 기회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4관왕을 했다. 생중계로 기생충의 수상 소식을 지켜보았는데, 각본상을 탈 때까지만 해도 그저 신명 나던 기분이 국제영화상을 넘어 감독상과 작품상으로 이어지자 뭉클함으로 뒤섞였다. 월드컵 4강, 아니, 월드컵 결승전에서 축구 강국-독일을 상대로 승리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사실 나의 시선은 봉준호 감독보다 통역사인 Sharon Choi에게 더욱 오래 머물렀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무대에 올라 상기된 목소리로 봉준호식 ‘고오급’ 유머를 맛깔나게 통역하던 최성재씨. 비록 통역으로 오른 무대였지만 영화감독 지망생으로서 최고의 영예의 순간에 당당하게 자리했다는 자부심이 그분의 인생에 반짝이며 남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 공부를 시작한 순간엔 알지 못했을 우연, 그리고 마음이 끌리는 도전을 하다가 발견했을 기회. 내가 발 디딘 곳에서 성실하게 노력하면 우연 같은 필연이 다가오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엄청난 운명을 만난 사람처럼 호재를 부르며 기회를 잡아채겠지. 그러다 보면 그 기회가, 다시 나의 필연이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二月 十三日     

: 삶의 이유

     

내가 왜 살아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끊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버텨야 할 연유는 무엇이며, 내일을 살아야 하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 살아있는 순간이 그저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그나마 괜찮은 날이었지만, 살아있음이 고통스러운 날들은 폭풍우가 지나간 바다처럼 고요히, 하지만 거대하게 마음을 잠식한다.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고자 상대의 좋은 점을 샅샅이 뒤져내는 사람처럼, 삶이 주는 장점을 부던히도 찾아낸다. 비가 온 후 초록빛이 가득한 곳에서 느껴지는 풀내음, 드넓은 바다 혹은 초원. 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이리저리 뒹구는 순간, 혹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순간. 콘서트나 뮤지컬, 음악 페스티벌을 만끽할 때,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 작은 도움을 건넬 때 -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만나기 꽤나 까다롭긴 하지만, 아주 만나지 못할 것들도 아니다.      


매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는 인생이라면 좋으련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포기하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행복을 찾아다니련다. 옷깃만 스쳐도 알아볼 수 있게, 불현듯 찾아온 손님을 무심결에 내보내지 않게. 최대한 오래, 꼭꼭 담아둘 수 있게.      


二月 十四日     

: 평범한 하루

사진 출처.채그로 공식 홈페이지


요즘처럼 한가로운 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 나름 치열했던 휴학 시절이 지나가고, 개강도 2주나 연기된 이 시점에서, 준비하는 자격증은 그냥 설레설레 취미 삼아 문제를 풀어보는 정도라 정말로 할 일이 없다. 결국 (교통편이 불편해) 그저 벼르고만 있었던 북카페에 왔다. 


그런데 이 곳, 너무나도 완벽하다! 조그마한 절과 펜션 모양의 건물, 옥탑방과 한강, 그리고 건너편의 한강공원까지 모두 내다보이는 하늘 위의 서점이라니. 일기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순간이다. 원하던 여행지에 가 바라던 풍경을 앞에 눈앞에 두고 벅차오르는 감성에 황급히 핸드폰 메모장을 켜는 감성으로 글을 적는다.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혹은 심적 여유가 필요할 때 종종 찾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곳의 사람들은 각자의 소일거리에 묻혀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그리곤 계속해서 묵묵히, 먼 곳을 바라본다. 쉴 틈 없이 흘러가는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제공하는 것은, 꼭 필요한, 좋은 공간의 자질이겠지 :)      


二月 十五日     

: 사람의 자국

     

많은 사람을 놓쳤다.     

딱히 삶에 변화가 있었던 것도, 이렇다 할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많은 사람이 떠나갔다. 소중한 이가 멀어진 자국을 지켜보는 일만큼 꾸준히-괴로운 것이 없다. 끙끙대며 2차 함수를 그려내던 학창시절부터 2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까지, 떠나는 이들은 늘 생채기를 남긴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 한 것일까, 그저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겼을 뿐인데, 무언가 잘못 생각한 걸까?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그 자체로 잘못이었던 건가. 나쁜 일은 늘 한 번에 밀려오고 사람은 늘 동시에 사라진다. 숨이 막힐 정도로 많은 사람이 곁에 바글거리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며 광활한 적막을 남긴다. 마음을 깊이 갈아 넓디넓게 개간해 놓았는데, 분수에 넘치는 여백이 쓸쓸하게만 느껴지는 날이다.     


二月 二十日

: 오늘이 오늘에게


해외여행을 취소했다는 친구들의 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그래, 이런 상황에서 외국에 나가는 건 부담스럽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해외봉사 활동이 생각났다. 아파트 단지를 뛰며 운동을 하다가 멈춰서서 봉사활동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역시나, 파견이 취소되었다는 공지가 떠 있다. 사람 인생, 정말 알 수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몇 달 전 나는 그 봉사 프로그램을 ‘운명’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해당 프로그램에 ‘참가해야만 하는 이유’와 '참여하고 싶은 이유'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때문에 ‘아쉽게도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부끄럽지만) 눈물이 비죽비죽 새어 나왔었다. ‘이번만큼은 느낌이 좋았는데’ 따위의 서러운 감상과 함께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도 갖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절망감이 한동안 곁을 맴돌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기에 일부 파견 자체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은 꽤나 묵직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생은 정말 완벽하게 계획할 수 없는 시스템이구나. 정말 내 마음대로 흐르지 않는 것이구나. 


인생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기생충의 기택처럼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극단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만, 오늘도 나의 생각은 하나의 귀퉁이로 흐른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에 투자하지 말고, 오늘의 희망을 내일로 전가하지 말아야지. 오롯이 현재를, 만끽하며 살아야지.           


二月 二十四日     

: 종이 한 장


아빠는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대해 종종 말씀하신다. 고등학생 때 비슷한 성적을 내던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종이 한 장 만큼의 차이가 발생했다고. 그런데 이 종이들이 계속해서 쌓이고 쌓여, 누군가는 뉴스에 나오는 정부 고위 관료가 되었고, 누군가는 제대로 된 일자리조차 갖지 못했다고. 직업의 귀천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딸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선택을 하며 더 좋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이 담겨있던 터라, 나도 내 삶의 두께에 대해 줄곧 성찰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종이 한 장의 차이’를 처음으로 실감한, 아프고 쓰린 하루였다.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무수히 만나 왔지만, 길에도 '층위'가 있다는 것을,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간다고 같은 높이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더욱 절망스러운 점은, 내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재단하고 비교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못난 모습을 연달아 마주하자, 초라함으로 얼굴이 뜨거워졌다.       

줄곧 생각에 잠겨있다가, 위로가 될 만한 모든 언어를 찾아내겠다는 필사적인 심정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문득 손에 문장 하나가 채였다. 며칠 전 엄마가 스치듯 건네주신 말이었다.      


지금 그 사람이 몇 도로 끓어오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누군가 99도까지 달아올랐다면, 1도만 더 견디면 되는 거니까
100가 되어서 끓고 있는 사람을 너무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비교는 끝이 없다. 시시각각 내 삶의 두께를 계산하는 것은, 건강한 하루를 망치는 주범인 것 같다. 아빠의 말씀에선 대충 '매일을 성실히' 정도의 가르침만 끄집어내고, 그저 나의 하루와 성장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적당히 뜨거운 온도를 유지하며, 언젠간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보글보글 날아오를 나의 내일을 위해. 


二月 二十六日     

: 심 봤다!

오늘은 처음으로 제목에 문장부호를 넣어 보았다 / 사진출처. 멜론


김화초 작가님의 브런치에서 ‘사이드 프로젝트의 정석’이라는 글과 마주쳤는데, 아주 흥미로웠기에 단숨에 읽어내렸다. [월간 윤종신]의 최고 히트곡 ‘좋니’는 [월간 윤종신]의 63번째 프로젝트였는데, 62번의 실패(따스한 노래들을 발표해냈다는 점에서 성공과 실패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가 있었기에 ‘좋니’라는 메가 히트곡이 발생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아니면 말고라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윤종신씨의 인터뷰가 눈길을 끌었는데, 정말이지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었다! 모든 작업물과 결과물은 완벽해야만 한다는 나의 신념과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을 내겠다고 생각할 뿐이지만, 그 최소한의 기준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완벽히 대치되는 사고였는데, 바로 거기서 숨 쉴 구멍을 찾았다. 즐겁게 도전을 거듭할 방법을 찾았다.      


늦저녁, 하루 종일 깊은 산 속을 헤맨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완벽주의로 꽤나 곤한 삶을 살던 방년 스물 셋의 내가 ‘아님 말고’ 정신을 발견해냈다. 그야말로 “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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