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말들 2. 엄마 / 그대에게 - 강아솔
낯설다.
라는 단어가 강하게 느껴지는 건 낯설만한 것을 표현할 때가 아니라, 익숙하던 것에서 낯섦을 발견할 때다. 가족이 낯설 때가 있다. 내가 아기 때 어항에 볼펜을 실컷 집어넣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 아빠가 소개팅에서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타를 쳤다는 얘기를 들을 때, 나는 어렴풋하게만 기억하는 옛 집을 회상하며 어른들끼리 웃을 때 그렇다. 5월이면 가족이 떠오르고 떠올리면 낯설어진다.
강아솔 님은 말하듯 노래한다. 심장에 말을 차곡차곡 얹듯 노래한다.
그럴 수없이 사랑하는 나의 벗 그대여
오늘 이 노래로 나 그대를 위로하려 하오
하루하루 세상에 짓눌려 얼굴 마주 보지 못해도 나 항상 그대 마음 마주 보고 있다오
겨를 없이 여기까지 오느라 손 한 뼘의 곁도 내어주지 못해 불안한 그대여
나 그대 대단치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오
그럴 수없이 사랑하는 나의 벗 그대여
오늘 이 노래로 나 그대를 위로하려 하오
하루하루 세상에 짓눌려 더뎌져가는 우리지만 나 그대 허다한 마음 다 받아줄 수 있다오
기다려주는 이는 없다며 그 어디에도 머물지 못한 채 지쳐버린 그대여
나 그대 대단치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오
이 노래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오
그대
‘그대’는 낯선 단어다. 일상에선 거의 쓸 일이 없고 노래에서도 많이 사라진 단어다. 사라질수록 특별해진다. 노래를 들으면 그대가 부모님 같기도, 자녀 같기도 했다. 오래 망가진 어깨와 무릎으로 삶을 무게를 지어온, 이젠 흰머리를 셀 수도 없게 된 부모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은 자녀가 하는 말, 혹은 이제 막 사회에 나와 정신없이 힘들어하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가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고백하는 듯하다.
나 그대 대단치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오
대단치 않아도 사랑하는 것만큼 큰 위로는 없다. 우리는 사랑받을 이유를 만들려 노력하면서도 노력 없이 사랑받고 싶어 한다. 평범하고 자랑할 데 없는 가족이 위로가 되는 순간도 그렇다. 내 상황이 잘 풀리고 걱정거리가 없을 때보다 내가 대단치 못할 때, 어깨가 축 늘어진 나를 평소처럼 대하고 밥을 먹이는 이들이 가족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을 말하기란 어렵다. 왠지 오그라들고 지금이 아니어도 기회가 있을 것 같아. 굳이 말을 해야 아는 존재임을 알면서도 ‘굳이 말로 해야 하나’란 핑계를 댄다. 그래서
이 노래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오
말로 전하지 못한 말은, 입 밖이 아니라 목까지만 올라왔다 도로 삼켜진 말은 노래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언젠가 ‘작은 위로’가 필요한 자들을 만난다.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는 늘 염려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날씨가 추워 겨울이불을 보낸다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는 늘 염려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귤을 보내니 맛있게 먹거라
엄마는 늘 말씀하셨지 내게 엄마니까 모든 것 다 할 수 있다고
그런 엄마께 나는 말했지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말이라고
남들이 뛰라고 할 때 멈추지 말라고 할 때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잠시 쉬라 하셨지
남들이 참으라 할 때 견디라고 말할 때에 엄마는 안아주시며 잠시 울라 하셨지
다 갚지도 못 할 빚만 쌓여가는구나
겨울 이불, 귤
보드랍고 따뜻한 겨울 이불, 노랗고 신 귤이 그려진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 집안일의 방대함에 놀란다. 설거지는 왜 이렇게 자주 해야 하고 빨래는 왜 이렇게 빨리 쌓이는지, 매일 청소하기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밥을 차려 먹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퇴근을 하고 나니 내 시간이 없고 주말엔 지친 몸을 눕히느라 신나게 놀지도 못한다. 겨울이 되어 보일러도 실컷 틀지 못하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을 때 귤이 온다. 겨울 이불이 온다.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잠시 쉴 수 있는 곳, 잠시 울 수 있는 곳’이다.
엄마
노래를 들으면서 어머니도 떠올렸지만 어머니 같은 분들이나 어머니의 따뜻함을 느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를 기른 수많은 존재들, 내가 기댄 수많은 존재들. 나를 숨겨주고 쉬게 해 준 사람들.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들. 엄마처럼 변했다가 금방 낯설어진 사람들. 나도 어쩌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나를 길러준 사람들이, 내게 엄마였던 사람들이 보고 싶어 지는 하루다.
- 노래의 말들/ 김숲
가사를 읽고 소개하는 방송(노래의 말들)을 합니다. 아래 링크에서 들어주세요. ^^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5927?e=23512427
네이버오디오클립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4406/clip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