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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May 11. 2020

우리를 행인이 아닌 순례자로 만드는 것은

노래의말들1 순례자 - 이적

퇴사 이후 넘치는 시간은 많은 용기를 준다. 가사가 좋은 노래를 리뷰하고 싶다고 생각한 지 오래, 얼마 전 <노래의 말들>이라는 채널을 팟빵과 네이버오디오 클립에 오픈했다. 소개할 첫 곡과 주제도 한참을 고민하던 중 이적님이 부른 ‘순례자’를 들었다. 좋은 목소리와 멜로디에도 묻히지 않고 빛나는 가사. 짧은 동화를 읽는 듯 그려지는 가사. 내 얘기 같은 가사. 이거다!


순례자 - 이적 작사, 작곡

길은 또 여기서 갈라지고 다시금 선택은 놓여있고 

내가 가는 길 내가 버린 길 나 기억할 수나 있을까

어느 하늘 어느 대지 어느 바다 어느 길 끝에 나조차 모르고 좇는 그 무엇이 있을까


해는 또 언덕을 넘어가고 바람은 구름을 불러오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며 나 그저 걸을 수 있을까

어느 하늘 어느 대지 어느 바다 어느 길 끝에 나조차 모르고 좇는 그 무엇이 있을까


돌아가고 파 고개 돌려도 흩어진 발자국 하나 찾을 길 없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길의 시작은 여긴가


별은 또 갈 길을 일러주고 이슬은 눈물을 덮어주고

아주 먼 훗날 힘이 다할 때 나 웃고 잠들 수 있을까


나조차 모르고 좇는

선택은 왜 힘들까. 선택의 이유를 모를 때 힘들다. 선택의 이유를 모른다는 말은 선택의 기준이 모호하는 말과 비슷하다. 모호한 기준을 놓고 선택을 하니 선택을 하고도 확신이 없다. ‘내가 한 선택이 맞는 걸까?’ 의심 하지만 배제된 선택의 결과는 알 수 없기에 둘을 비교할 수 없다. 설령 내가 한 선택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하더라도 다른 선택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택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묻는 사람은 불안 위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질문을 바꾸면 어떨까. ‘선택에 최선을 다했는가’, ‘선택을 하고 충분히 즐거웠는가’, ‘선택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배려했는가’. 질문을 바꾸면 대답할 수 있다. 

선택을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시간제한’이 아닐까. 아직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째깍째깍 카운트 다운을 하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은 바이다. 그래서 인생에서도 빨리 답을 찾으려 발버둥 친다. 그러나 인생의 문제는 답을 ‘고르기’ 보다는 ‘만들기’에 가깝다. 만들기는 고르기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유일한 것을 탄생시킨다. 선택을 앞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닌 자신만의 답이다. 


순례자

‘성지’의 예배가 아니라 순례길 걸음마다 드린 기도가 순례자를 만든다. 노래의 화자가 ‘이 길의 시작은 여긴가’하는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선택의 결과, 길의 끝, 질문의 답이 아니라 선택의 과정, 길의 위, 질문이 낳은 고민이 우리를 인생이란 긴 길 위의 행인이 아닌 순례자로 만든다. 

어려운 선택 앞에서 노래는 얼마나 무용한가. 그러나 노래는 선택을 할 용기를 준다. 주어진 선택지가 아닌 오랫동안 잊었던 길을 떠오르게 한다. 선택의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게 한다. <노래의 말들>을 듣는 사람들이 그런 시간을 만났으면 좋겠다. 


노래의말들 첫 화는 아래 링크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1 순례자 – 이적 / 우리를 행인이 아닌 순례자로 만드는 것은

네이버 오디오 클립 :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4406/clips/1

팟빵 : http://www.podbbang.com/ch/1775927?e=23498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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