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말들4 잘 가, 봄 - 시와 / 봄눈 - 박지윤
가사가 좋은 노래를 소개하는 '노래의말들' 이번 주는 ‘봄과 여름 사이’를 주제로 <잘 가, 봄>_시와, <봄눈>_박지윤 을 읽었습니다.
-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5927?e=23541465
- 네이버오디오클립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4406/clips/4
‘잘 가, 봄’은 2010년 나온 시와의 정규 1집 ‘소요’에 수록되었다. 앨범 제목 ‘소요’는 逍(노닐 소)에 遙(거닐 요)를 써서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시와는 어느 날 도서관에서 데이비드 소로의 책을 보았고, 이렇게 메모했다고 한다. '걷다 보면 전혀 예기치 못한 낯선 땅에 이르는 데 이런 식의 걷기를 데이비드 소로는 '소요'라고 명명했다.' 이 메모가 첫 앨범 제목이 될지 도서관을 소요하던 그녀는 알았을까?
시와의 목소리를 따뜻하다고 할까, 맑다고 할까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다 앨범 제목 ‘소요’와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힘과 긴장을 빼고 편하게 거니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듣는 이를 전혀 예기치 못한 낯선 곳으로 인도한다. 낯선 곳이지만 무섭지 않고, 머물고 싶고, 사진을 찍어두고 싶은 그런 곳이다.
시와라는 이름을 지은 계기, 그리고 앨범 ‘소요’ 전곡에 대한 사연이 시와 홈페이지에 업로드되어있다. (http://www.withsiwa.com/) 유튜브 채널에는 다양한 공연 영상이 있지만 홈페이지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요즘엔 찾기 힘든 감성, 마치 싸이월드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안녕 지는 꽃들아
네가 있는 동안에
가려진 방 안 어딘가 숨어서
너의 얼굴 몰래 보며 지냈지
안녕 피는 잎들아
네가 없는 동안에
모든 게 변해가고
나만 늘 그 자리에서 맴돈다 여겼지
봄이 오니 사람들이 웃네
봄이라고 온 세상이 웃네
하지만 난 우울한 날을 보내네.
매해 봄 이 맘 때쯤이면
안녕 피는 잎들아
네가 없는 동안에
돌아선 마음을 잡으려 애써도
생각대로 되지는 않더라
봄이 오니 사람들이 웃네
봄이라고 온 세상이 웃네
웅크려 지낸 날 어서 나오라고 손짓하네
매해 봄 이맘때
숨죽여 지낸 날 어서 나오라고 손짓하네
손짓하네 잘 가라 봄
안녕
우리는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안녕’ 인사한다. 다만 어른이 될수록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는, 전형적이지만 가장 따뜻한 ‘안녕’을 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밥이나 한번 먹자”, “나중에 한번 보자”, 혹은 ‘ㅋㅋㅋㅋㅋㅋ’ 나, “수고하셨습니다”가 “안녕” 두 글자를 대신하기 위해 쓰인다.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은 어린이와 비슷해진다고 하니 건강히 살아남아 언젠가 다시 순수한 안녕을 회복하길 기대해본다.
화자는, 봄이어서 우울한 화자는, 숨죽이고 웅크려 봄의 손짓을 애써 외면하는 화자는 지는 꽃들과 피는 잎들에게 “안녕” 인사한다. 봄과 여름 사이에, 나는 무엇에, 누구에게, “안녕” 인사할 수 있을까. 봄의 사람, 봄의 밤, 봄의 공기와 냄새, 종종 내렸던 봄비에게 따뜻한 “안녕”을 보낸다.
잡지와 CF 모델, 배우, 가수, ‘성인식’의 히트, JYP 계약 종료와 소송, 그리고 6년간의 공백을 박지윤은 보냈다. ‘봄눈’이 수록된 앨범 ‘꽃, 다시 첫 번째’(2009.4.23)는 박지윤의 7번째 앨범이지만 싱어송라이터로서 첫 발걸음을 내디딘 앨범이기도 하다. 긴 공백 동안 그녀가 맞았을 봄을 상상해본다. (박지윤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user/parkjiyooncreative)
자 내 얘기를 들어보렴
따뜻한 차 한잔 두고서
오늘은 참 맑은 하루지
몇 년 전의 그날도 그랬듯이
유난히 덥던 그 여름날
유난히 춥던 그 해 가을, 겨울
계절을 견디고 이렇게 마주 앉은 그대여
벚꽃은 봄눈 되어
하얗게 덮인 거리
겨우내 움을 틔우듯 돋아난 사랑
처음으로 말을 놓았던
어색했던 그날의 우리 모습 돌아보면 쑥스럽지만
손끝에 닿을 듯이 닿지 않던 그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데
하루에도 몇 번을 내게 물어봐도 나는 믿고 있어
떨어지지 않는 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처음으로 말을 놓았던
어색했던 그날의 우리 모습 돌아보면 쑥스럽지만
손끝에 닿을 듯이 닿지 않던 그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데
하루에도 몇 번을 내게 물어봐도 나는 믿고 있어
떨어지지 않는 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그대라는 꽃잎
떨어지지 않는 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사랑의 대상임을 알 수 있을 뿐, 이 노래에서 ‘그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나오지는 않는다. 정확히 나오지 않기에 상상할 수 있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그대’는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사랑했던 시간 일수도, 간절한 꿈일 수도, 마음의 평화일 수도 있겠다. '그대'는 ‘이렇게 마주 앉아’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마주 앉아있을까 상상해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화자는 ‘그대’를 결국 만나지 못했고 그렇지만 너무나 만나고 싶었고 그래서 ‘그대’와의 만남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노래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상상 속에서조차 보고 싶었다는 말 대신 처음 말을 놓았을 때의 쑥스러움이나 오늘의 참 맑은 날씨만 이야기하고 애꿎은 차만 호호 불었나 보다.
그러한 ‘그대’는 화자에게 '떨어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꽃잎'이다. 꽃잎이지만 떨어지지도 시들지도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대'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화자가 마음에 타임캡슐처럼 '그대'를 저장했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나도 그렇게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이유 역시 매년 봄이면 잠깐씩만 타임캡슐을 열어 '그대'를 보고 다시 넣어두었던 화자 때문이다. 그 반복은, 화자에게 떨어지는 벚꽃을 보는 것처럼 슬픈 일이 었을까, 봄을 기다리는 일처럼 떨리는 일이었을까 조심스레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