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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Jun 12. 2020

오래 듣고 픈, 오래된 가수 조규찬

노래의말들7 순간들, 오래된 가수 - 조규찬

가사가 좋은 노래를 소개하는 '노래의말들' 이번 주는 가수 조규찬님의 ‘순간들’, ‘오래된 가수’를 읽었습니다. (앞으로 종종 한 가수를 조명해 소개하려 합니다.) 

- 네이버오디오클립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4406/clips/7

-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5927?e=23563967


순간들 - 조규찬

작곡가 아버지와 가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3형제는 모두 음악가가 되었다. 그중에 막내가 조규찬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부엌에선 어머니가 칼국수를 끓이고 계시고요, 저는 거실에서 아버지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를 하고 있었어요. 잠깐 그러고 사라진 과거인데 각인이 됐나 봐요. 힘들 때면 항상 연어가 회귀하듯이 제 기억이 그 순간으로 회귀해요.  – 대전 MBC 토크앤조이

칼국수 끓는 소리와 오후의 온기, 아버지의 피아노 소리, 노래하는 소년 이 노래는 어쩌면 그 순간에 시작되었다. 

아빠와 나란히 앉아 피아노 치던 날

텅 빈 운동장에 남은 만국기들

잠 못 이루며 기다린 소풍날의 폭우

정전된 밤 켜 두었던 촛불의 빛

목욕탕까지 따라온 

강아지 쟈니가 사라지던 날

넌 화가가 돼야 할 것 같구나 

나의 그림 보며 

토닥여주시던 그 선생님

시간 그 속으로 사라진 순간 

내 손에 닿지 않는 것들 

꿈이 된 그 오늘들

별에 새겨진 날들


문득 본 새들의 무리 

그 너머 황혼 빛

글자 읽기 연습하던 아들의 목소리

시간 그 속으로 사라진 순간 

내 손에 닿지 않는 것들 

꿈이 된 그 오늘들 

별에 새겨진 걸까

가지 마라 붙잡을 틈도 없이 

계절은 덧없이 흐르고

하나 둘 떠나가는 이들 

벌써 그리운 오늘

지금 시간 그 속으로 사라질 

벌써 그리운 오늘 지금


순간들

‘순간들’을 들으면 몇몇 기억이 사진처럼 떠오른다. 엄마와 눈사람 만들던 때, 달력으로 숫자를 가르쳐주던 할아버지, 친구와 계단에서 쏟아지는 비를 한참 본 일, 첫 연극 무대에 서기 전 다리의 후들거림,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에 남은 순간들이 문득 소중하다. 마치 신이 “이런 건 좀 기억하면서 살렴” 내 뇌에 저장해준 것 같다. 세상이 끊임없이 나를 분류하고 줄 세우고 시시한 단어로 정의할 때 ‘나’를 특별한 존재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이 ‘순간들’에 있는 게 아닐까?


오래된 가수 – 조규찬

고등학생 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이후 정규앨범만 9장을 내며 천재 뮤지션으로 불리다가 이제는 데뷔 30년이 된, 한 가수가 있다. 세상은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변해가고, 자신의 노래에 환호하던 팬들은 중년이 되고, 가정이 생기고, 불러주는 방송도, 대중의 관심도 적어지고, 순위와 평점으로 평가받은 신곡의 성적표 앞에 선 한 뮤지션. 그는 여태까지 음악을 해온 세월이 허무할까. 자신에게 더 이상 환호하지 않는 세상에 화가 날까. 음악을 앞으로 계속할 수 있을지 두려울까.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그에겐 그것마저 음악이 되었다.  

이제는 꿈의 시효도 끝난 

이제는 현실에 맹종하는 

잊힘에 익숙한 생활인이 된 

나는 오래된 가수

한 때는 새 노래를 내놓으면 

한 때는 인터뷰 제의도 

들어오곤 했던 나였지

그땐 그게 당연한 일이라 여겼어 

이젠 모두 다 지난 일 

이제는 어쩌다 고작 별 네 개짜리의

가수가 됐느냐는 동정 어린 댓글을 받는 난 

지워져 사라져 가

내 새 노랜 품평받는 

흔하디 흔한 기호품일 뿐이라는 

그 엄연한 현실에 고갤 떨구는 일만이

어렵사리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일임을 꾹 삼키는 일 

요새 난 자주 고민에 빠져

이제 그만 멈출 때가 된 것 아니냐고 자문하곤 해

가수 생명은 이제 끝나지 않았냐고 

더 버티면 버틸수록 더 초라할 뿐

사랑받기엔 너무 말라버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꽃잎도 잎사귀도 없는 

난 지워져 사라져 가 

내 새 노랜 품평받는 

흔하디 흔한 기호품일 뿐이라는 

그 엄연한 현실에 고갤 떨구는 일만이 

어렵사리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일임을 꾹 삼키는 일

그럼에도 이런 내 노래를 들어주는 그대여

고마워요 고마워요

꾹 삼키는 일

꾸준함을 촌스럽게 생각하곤 했다. 노력을 조금 하고도 멋진 결과를 만들어 내는 천재를 동경했다. 글을 꾸준히 쓰고,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려 하면서 꾸준함이 단순히 시간을 오래 보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랜 꾸준함은 오랜 의문과 오랜 두려움, 오랜 불안을 동반한다. 꾸준한 사람은 '잘할 수 있을까', '아 정말 모르겠는데',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까' 내면의 소리와 "넌 못할 거야",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해?",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어?" 타인의 말을 묵묵히 들으며 걸어온 사람이다. 그 삶을 노래로 만든 한 오래된 가수의 마지막 가사가 “그럼에도 이런 내 노래를 들어주는 그대여 고마워요. 고마워요.” 여서 감사하다. 


* 멜론 검색창에 “노래의말들”을 [플레이리스트]로 검색하시면 '노래의말들'에서 소개한 가사가 좋은 노래들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플레이리스트 링크 : http://bitly.kr/hze1uAye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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