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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Jul 21. 2020

[노래의말들12] 바다 같은 위로를 주는 노랫말

노래의말들12 앞바다 - 9(9와숫자들)

그럼 바다 맨날 보겠네?

바닷마을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탄성 섞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언젠가 그런 데서 일해보는게 꿈이라는 고백도 이어진다. 이해한다. 나도 낭만을 기대했으니까. 파란 바다에서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일하고, 바다에 길게 늘어진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 하는 삶. “끼룩끼룩 갈매기야 여기 새우깡을 먹으렴 내걸 나눠줄게!” 모래사장을 뛰놀며 행복을 만끽하는 삶.

물론 그럴 수 있지만, 그렇지 만은 않다. 고향에서 관광지를 잘 안 가는 것처럼, 동네 바다는 여행에서의 바다와 사뭇 다르고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에게 바다는 즐길 대상이라기보다 동반자에 가깝다. 내가 바다에 갈 때는 자취 원룸을 보며 ‘이게 내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자린가’ 한숨을 쉬거나, 전화할 사람을 고르다 결국 핸드폰을 집어 넣었을 때였다. 

밤바다가 좋았다. 고요한 바다엔 정박된 어선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고 가로등과 가게 불빛들이 잔잔한 파도에 출렁였다. 흔들리는 그것들을 나인양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어폰이 꼽고 노래를 튼다. 이어폰에선 달팽이처럼 작은 노래들이 엉금엉금 기어나왔다. 

그렇게 밤바다 산책을 마치고 오면, 스케줄러에 나름의 계획을 쓰곤 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몇줄에 걸쳐 적으면,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스케줄러는 덮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소설 몇쪽을 겨우 읽는다.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몇백만 유튜버의 채널을 본다. 몇시간 후에 해가 뜨고 일상이 시작되면 안개처럼 사라질 계획과 상상들이 뭉게뭉게 나를 뭉게면 잠이 든다. 

밤바다도, 노래도, 뭉게뭉게 피어난 상상들도 일상과 외로움의 파도 앞에 흔적도 없이 부서졌다. 그러나 밤이 오면 그 모래성을 쌓는 것 같은 시간들을 나는 반복했다. 밤바다를 가고, 노래를 듣고, 이어폰에선 달팽이가, 스케줄러엔 몇줄이 적히고, 소설을, 뭉게뭉게, 잠이 든다.  


퇴사를 하고 바다에서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매일 같이 파도에 쓸려갔던 나의 모래성 같은 날들이, 노래가, 계획과 상상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안다. 어떤 것들은 쓸려갈수록 선명해짐을. 


이번 주 <노래의말들>에서는 밴드 9와 숫자들의 보컬 9님의 ‘앞바다’를 읽었다. 오랜만에 밤바다 같은 위로를 받았다. 


앞바다 - 9(9와 숫자들)


앞바다 얼기설기 사연 

휩쓸려 여기까지 왔네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 밝다하더니 

내어머니 눈빛만 못하더라 

뒷동산 계절을 잊은 바람 

내몰려 발길을 옮기네 

인적이 없는 밤거리의 지독한 고요도

내 아버지 침묵만 같지 않다 

꼬리를 문 저기 사람들의 행렬 

내 설 곳도 있을지

저마다의 차례를 기다려보지만 

끝을 안다는 이 없는 

손바닥만큼 내가 차지한 자리 

누구에게도 양보못한다고 

밀물에 젖은 검은 흙으로 

궁전을 짓고 조개방벽을 쌓네 

수평선 멀리 도망쳐버린 해는 

그 누구라도 잡을수 없다고 

평생토록을 동여 매어둔 

꿈들을 풀어 파도결에 놓아주었어 


줄지어 선 닫힌 문들의 풍경 

두드릴 엄두 없이 떠나오던 다짐 

되새겨 보지만 돌아갈 곳을 잊어

손바닥 만큼 내가 차지한 자리 

누구에게도 양보 못한다고 

밀물에 젖은 검은 흙으로 

궁전을 짓고 조개방벽을 쌓네 

수평선 멀리 도망쳐버린 해는 

그누구라도 잡을 수 없다고 

평생토록을 동여매어둔

꿈들을 풀어 파도결에 놓아주었어 

앞바다 얼기설기 사연 

휩쓸려 여기까지 왔네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 밝다하더니 

내어머니 눈빛만 못하더라



가사 좋은 노래를 소개하는 라디오 '노래의말들' 이번 주는 김목인 '비치코밍', 9(9와숫자들) '앞바다'를 읽고 소개했습니다. 방송은 아래 링크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


네이버 오디오클립 

팟빵 : http://www.podbbang.com/ch/1775927?e=23606342


아래 멜론 플레이리스트에서는 노래의말들에서 소개한 가사 좋은 노래들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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