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말들13. 강아솔 - 섬
‘솔직히 말해서’로 시작하는 말을 유독 어색해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럼 평소에 말하는 건 안 솔직한 거야?” 친구의 물음에 “그러고 보니 진짜 이상하네” 큭큭대며 웃어넘겼다. 나중에서야, 그런 말들은 주문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너니까 하는 말인데’, ‘이거 진짜 비밀인데’라고 해야 비로소 용기를 낼 수 있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런 주문으로도 꺼낼 수 없는 말이 있다. 나에 관한 말이다. 나의 못난 모습, 사람들이 아는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다른 과거는 용기 내 말해봤자 상대를 당황시킬 뿐이다. 내가 보기에도 싫은 내 모습을 굳이 입 밖에 낼 필요는 없다.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에 ‘섬’을 만들었다. 나만 갈 수 있는 그곳에, 일기에도 쓰지 못한 내 흉측한 모습들을 숨겼다. 섬 안에 깊고 미로 같은 숲에, 튼튼한 상자를 마련해 그 안에 ‘나’를 넣고 자물쇠를 여러 개 채운다. 삐져나온 것이 없는지 상자를 여기저기 살펴보고, 혹시 본 사람이 없는지 섬을 한참 돌고 나서야 섬을 떠난다. 그 섬은 시간으로 덮는다. 두껍고 두껍게 나조차 발견하지 못하도록.
그러나 유유히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다가도 예상치 못한 태풍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떤 사람, 장소, 말 한마디가 태풍처럼 나를 휩쓸어 섬으로 날린다. 황급히 찾아낸 상자는 이미 박살 났고 그 안에 것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식은땀 흘리며 주워 담다가 힘이 풀린다. 아무리 단단하게 숨기고 멀리 떠난 들, 언젠가 속수무책으로 이 섬에 소환당하고 말 것 두렵고 문득 외로워진다.
나만 알아야 하는 내 모습, 정리하지 않고 회피한 감정들, 사랑받기 힘든 과거를 숨기는 대신 다른 방법을 택한 사람들과 함께한 적이 있다. ‘자전적 글쓰기 모임’에 모인 이들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속 얘기를 했다. 아픔에 대해, 후회에 대해, 두려움과 열등감에 대해 글을 쓰고 나눴다. 서로의 글을 읽으며 함께 운 것은 각자의 ‘섬’에 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랬듯 내 옆에 있는 이들도 ‘섬’에서 ‘나’를 꺼내 글로 드러내기까지 두렵고 외로웠을 테니까. 그러나 ‘나’를 드러냄으로써 경험하는 것은 손가락질과 불편한 눈초리 대신 경험하는 것은 조용한 경청과 따뜻한 시선이다. 모임이 끝나고 모두가 조금 더 용감해져 있었다. 용기 내 섬에서 나를 꺼내 보여줄수록 마음속 섬의 무게는 가벼워졌다.
둘러보면, 다들 섬이 있고 섬지기로서 산다. 사랑받기 위해 섬 깊은 곳에 숨긴 것은 사실 가장 사랑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 아닐까. 감추고 덮고 피해도 끊임없이 우리가 섬으로 소환되는 까닭은 그 안에 있는 것이 드러나 사랑 받길 갈망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숨겨진 것은 도무지 사랑받을 수 없기에.
섬 나는 섬에 있네
아무도 찾지 못하는 섬
차가운 바람 매섭게 불어와도
그 어디에도 피할 곳 없네
섬 나는 섬에 있네
아무도 닿지 못하는 섬
사나운 파도에 휩쓸려 온 이 곳엔
누구도 모르는 내가 있네
돌보지 못하는 저마다의 마음이 있는 걸까
들여다볼수록 더욱 외로워져만 가는
모든 게 다 내 탓이라 말하는 것만 같아
이런 나를 나는 앓고 살아가야 될까
돌보지 못하는 저마다의 마음이 있는 걸까
들여다볼수록 더욱 외로워져만 가는
모든 게 다 내 탓이라 말하는 것만 같아
이런 나를 나는 앓고 이런 나를 나는 앓고
돌보지 못하는 저마다의 마음이 있는 걸까
들여다볼수록 더욱 외로워져만 가는
모든 게 다 내 탓이라 말하는 것만 같아
이런 나를 나는 앓고 이런 나를 나는 앓고
살아가야 될까
가사 좋은 노래를 소개하는 라디오 '노래의말들' 이번 주는 강아솔 '섬', 도마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를 읽고 소개했습니다. 방송은 아래 링크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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